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북특별대표 임명과 미사일지침 종료, 백신 지원, 원전 협력 등 여러 이슈에 묻혔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 주요 안건 중에는 기후위기 대응도 포함돼 있었다. 올해 말까지 국제 사회에 상향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국가결정기여·NDC)’를 제출하겠다고 수차례 약속한 정부는 미국과의 기후위기 대응 협력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2030년 잠정 NDC를 올해 10월 초순께 발표하고, 최종 NDC는 오는 11월1~12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때 발표한다는 계획을 ‘슬쩍’ 공개했다. 앞으로 5개월 뒤인 셈인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년 내내 계획만 세우다 끝나는 셈이다.
2030년까지 불과 8년 밖에 남지 않았다. 기후운동가들은 주요국처럼 50% 안팎의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해서는 당장 오늘 하루가 급하다고 지적한다. 2020년부터 상향된 감축 목표를 적용했다면 10년에 걸쳐 줄일 탄소배출량을, 이제는 8년 만에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하루, 한달, 일년이 늦어질 수록 2030년까지 감축해야 할 탄소배출량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한국 사회와 경제가 떠안아야할 충격은 몇 곱절 커진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포괄적 협력’을 약속하며 기후위기 대응 협력을 재확인했다. 청와대가 공개한 공동설명서를 보면 3번째 주제로 ‘기후 및 청정에너지 공동 목표 진전’이 소개돼 있다. 지난달 22일 기후정상회의때 화상으로 마주한 두 정상이어서인지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모든 형태의 신규 공적 금융지원을 중단”하기 위한 국제 논의에 협력한다는 것은 지난달 기후정상회의 때 한국이 내놓은 카드였다. 기존 에너지 정책 대화를 장관급으로 격상·확대하고, 경제 전반의 탈탄소화를 위한 기술·혁신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조하는 정도였다.
동시에 정부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 1.5도 제한을 위한 노력과 글로벌 2050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달성 목표에도 부합하는 상향된 잠정 2030 엔디시를 10월 초순께 발표하고 상향된 최종 엔디시를 COP26까지 발표한다”고 알렸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난 2월 올해 업무보고에서 상반기 중 2050년 탄소중립 감축 시나리오를 마무리짓고 연말 안에 2030년 엔디시를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는데, 이 일정을 청와대가 그대로 확정하는 발표였다. 11월 국제사회에 엔디시를 공개하기 전 국무회의 의결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10월쯤에는 공개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돼왔다.
NDC를 조속히 상향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실천하라는 기후운동가들과 정부가 느끼는 기후위기 체감 속도는 다르다. 애초 지난해 열릴 예정이던 26차 당사국총회는 코로나19로 한 해 미뤄졌다. 기후운동가들은 미뤄진 일정에 맞춰 NDC를 정하는 것은 결국 정부의 감축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해왔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에 의해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피해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때문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30년까지 전세계가 2010년 대비 45%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파국적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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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미국 등 최다 온실가스 배출국과 비교하면 한국이 억울할 수 있지만 한국 역시 세계 8~9위 수준의 주요 배출국가다. 한국만 따져보면 현재 2030년 배출량 목표 5억3600만t은 2010년 배출량 대비 18.5%를 줄이는 것에 불과하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은 “지금 상황에선 (1.5도 목표를 맞추려면 한국은) 약 10년 동안 1억5천t 넘게 줄여야 한다는 건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없다”며 정부의 ‘여유로움’에 고개를 내저었다.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잠정)은 7억280만t으로 2018년 배출량 7억2760만t보다 3.4%(2490만t)를 줄였을 뿐이다. 2019년은 매년 오르기만 하던 온실가스 배출량을 역대 최초로 감축한 해였다.
정부 셈법이 늦어지며 2021년 한 해도 사실상 그냥 허비하게 된 상황은 그만큼 탄소배출량 감축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코로나19로 줄어들었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올해 급반등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2018년 탄소배출량 정점(7억2760만t)을 찍은 뒤 이후로 줄어들고 있다는 한국 정부의 ‘정점 기준’이 2021년이나 2022년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이러면 2030년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 역시 낮아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2030년 NDC 목표를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에서 정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목표는 2017년 배출량 대비 24.4% 감축인데, 이를 30% 후반 정도로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은 2017년 배출량 대비 최소 50%는 감축해야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하는데 한국이 역할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17년 배출량은 7억910만t이다. 그 절반인 3억t대로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청소년기후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23일 청와대 앞에서 정부의 온실가스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도해 화상으로 개최한 기후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은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추가 상향해 올해 안에 유엔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환경단체들은 이번 한·미 공동선언문에서 기후위기 대응 협력이 주요 안건이었음에도 청와대에서 특별히 강조하지 않은 이유는 ‘별다른 내용이 없어서’였다고 말한다. 한 기후운동가는 “NDC 상향 일정이 10월 초라는 것을 미국 정상과의 선언문을 읽고야 확인할 수 있다니 기운이 빠졌다. 정부는 원전 수출을 강조하고 싶었던 듯 보인다. 기후위기 안건은 강조하지 않았다. 청와대도 아직 이와 관련해서는 새로 발표할 게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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