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은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단식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했다. 녹색당 제공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문제가 누군가에게는 일상을 던질 만큼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기후운동가들에게 석탄화력발전은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이기도 한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은 고민 끝에 17일 오전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국내 7기, 해외 3기 등 총 10기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운영 중인 한국이 탈석탄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오는 30~31일 피포지(P4G) 서울 정상회의가 열리는 현장인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단식을 하고 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서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번 출구 근처 아이서울유(I-Seoul-You) 조형물 앞에 가면 이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 단식 첫 날이던 17일 밤 그와 인터뷰했다.
― 몸은 좀 어떠신가요.
“이제 하루가 지나서 그런지 멀쩡합니다. 맛있는 것들이 먹고 싶긴 하지만요.”
― 잠은 어디서 주무시나요?
“잠은 숙소에서 자려고 합니다.”
― 주변에서 단식 시위를 많이 염려했을텐데, 왜 단식을 하기로 결정하셨나요?
“녹색당의 가치와 단식이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었고, 건강을 해친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안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동안 석탄화력발전 반대를 위해 피케팅, 서한 전달, 질의서 발송, 기자회견, 퍼포먼스, 조형물에 수성 스프레이 뿌리기까지 안 해본 게 없었는데, 정부와 기업들은 바뀌는 게 없이 요지부동이고, 코로나19로 여럿이 모이기도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절박함을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최근
경기도 분당 두산중공업 본사 앞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려 벌금 200만원 약식명령을 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상황이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되자 더불어민주당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시위를 하다 연행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난 한 해 청년기후긴급행동 마스코트 ‘김공룡’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기후운동을 했다.
― 단식 저항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일단 신규 석탄발전소 10기의 빠른 퇴장이요. 지금 있는 것도 최대한 빨리 없애야 할 판인데 새로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10기나 짓는다는 게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10기이다. 현재 국내에서 건설 중인 신규
발전소는 신서천(한국중부발전), 고성하이 1·2호기(고성그린파워), 강릉안인 1·2호기(강릉에코파워), 삼척 1·2호기(삼척블루파워)로 규모는 7.26GW이다. 고성하이 1·2호기 건설은 공정률 98%로 이달 중순과 11월께 준공 예정이다. 올해부터 2024년까지 차례로 완공돼 가동 예정이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기후운동가들은 공정률이 30% 수준으로 알려진 삼척블루파워의 건설 중단부터 요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바 9·10호기와 베트남 붕앙2 석탄화력발전 등 해외에서도 3기의 석탄화력발전에 한국전력, 한국수출입은행, 두산중공업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 역시 초기 건설이 진행 중이어서 기후운동가들은 건설 중단을 요구했으나 정부와 기업은 응답하지 않았다.
― 기후변화 문제가 그렇게 절박한 걸까요.
“절박합니다. 제가 특별히 절박한 게 아니라 절박해요. 지난해 제가 정부 주관 토론회 단상에 올라가서, ‘중국도 일본도 장마로 홍수가 나서 수천 명의 이재민과 큰 재산피해가 났는데, 우리나라는 올해 비껴가는 것 같지만 안심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바로 그 다음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54일 동안 왔습니다.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라는 말도 유행했고요.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장마로) 한우 1161마리, 돼지 3759마리, 가금류 51만9532마리가 폐사했습니다. 50명의 사람들도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어요. 기후위기가 비인간동물만의 문제가 아니고, 내일의 문제도 아닌 거죠. 오늘 우리의 문제이고요.
더 큰 문제는 기후위기의 원인이 온실가스 배출인데. 이게 배출되면 30~50년 동안 공기 중에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지금 전 세계가 모든 석탄발전소를 문 닫는다고 해도, 오늘 지금 이 순간의 기후위기를 멈출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건 수십 년 전에 배출한 탄소가 만든 결과물이니까요. 그래서 30~50년 뒤의 막을 수 있는 죽음과 고통을 멈추고 싶어요. 거기다가 기후위기가 정말 악화되기까지 남은 탄소예산(파국적 상황이 오기 전까지 각 국가가 발생시켜도 되는 탄소의 양)이 7년도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상황도 절박하고, 저도 절박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오늘날 지금이 기후위기도 조금은 더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가요.
“시급하기로 따지면, 당장 내가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시급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가 시급하다는 건 두 가지 때문인데요. 어느 선을 넘으면 돌이키기가 어렵다는 것과 이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 만약에 엄청난 기후재난이 일어나서 당장 기후 난민이 많이 늘면 경제와 안보 문제가 되겠죠. 여기까지 안 가더라도 의료, 주거, 노동, 등등 일상 속 모든 문제에 기후위기가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얼마큼 심각한 상황이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닥쳐올지 모르는데, 시한은 정해져 있다. 거기서 시급함이 오는 거죠.”
― 석탄화력발전은 경제성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라고 하던데.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퇴출되겠지만, 그 전에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해서 기후위기를 악화시키겠죠. 해당 지역 생태계와 공동체도 파괴하는 건 물론이고요. 이걸 생태학살이라고 하던데. 빨리 퇴출시키면 시킬수록 모두의 행복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석탄화력발전 노동자분들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이 동반돼야겠지만요.”
― 점점 운동의 강도가 세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인 행동을 하는 것 같아요. 그때는 가덕도특별법이 무리하게 통과되고 나서 민주당사가 적당하다고 봤던 거고, 지금은 한-미 정상회담과 피포지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어떻게 분노와 절박함을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단식을 택한 거였어요.”
이은호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은 17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단식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했다. 녹색당 제공
― 정부는 상반기까지 로드맵을 다 따져봐야 향후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하는데.
“바로 그 로드맵 세우는 데 일단 석탄발전소 퇴출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정부 하는 대로라면 석탄발전소는 새로 일단 짓고, 그러면 1~2년 만에 없앨 수는 없을 거고요. 이런 마인드로 접근하면 로드맵 자체도 엄청 형식적이거나 길게 늘어지겠죠.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이상하고 어설픈 로드맵 나올 게 뻔한데, 그런 거 나온 다음에 바꾸는 것보다 지금 못박아두고 제대로 된 로드맵 짜라고 하는 게 편하지 않겠어요?”
― 피포지 정상회의 때 어떤 내용을 발표하길 바라나요.
“당연히 신규 석탄발전소 10기 모두 퇴출하겠다는 발표를 바랍니다. 그럼 박수치고 큰절도 할 수 있을 듯 하네요. 아니면 최소한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현재 24.4% 감축에서 50% 이상으로 상향 발표라도 하든지 말이죠. 50%로 안 올릴 거면, 신규 석탄발전소 10기 백지화합시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