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과 한국이 거의 동시에 2050년 탄소중립을 향한 대장정의 출발을 공표했습니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10월26일 국회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틀 뒤 문재인 대통령도 국회에서 한 시정연설 중 같은 목표를 선언했습니다.
선언은 늦었지만 이행 전략 발표는 한국이 빨랐습니다. 한국에서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7일 관계 부처 합동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일본은 18일 뒤인 25일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성 장관이 관계 부처와 협의해 만든 ‘2050년 탄소중립에 따른 녹색성장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치 한일전이 시작된 듯합니다. 두 나라가 많은 난관이 예상되는 이 목표 지점에 약속한 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을지, 만약 도달하지 못한다면 목표에 가장 근접한 나라는 어디가 될 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탄소중립 한일전에 나선 두 나라의 전력을 보면 일본이 다소 앞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2013년 배출정점에 도달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9년 현재 정점 대비 15.8% 줄어든 상태입니다.
반면 한국은 2018년 배출정점에 도달했다는 것이 정부의 진단입니다. 배출정점에서부터 탄소중립에 도달할 때까지 주어진 시간은 일본은 37년, 한국은 32년입니다. 배출정점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5년 늦게 출발한 셈입니다. 그만큼 더 빠른 속도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지난해 10월26일 일본 국회에서 소신표명 연설을 하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 스가 총리는 이날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GCP)가 최근 공개한 국가별 이산화탄소 배출량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일본의 배출량은 11억700만t으로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에 이어 세계 5위입니다. 6억1100만t으로 세계 9위를 기록한 한국보다 두 배 가까이 많습니다. 하지만 국민 1인당 배출량으로는 한국이 11.821t으로 일본(8.765t)보다 35% 가량 많습니다. 2050년까지 감축해야 될 총량은 일본이 많지만, 국민들이 각기 줄여야 하는 양을 놓고 보면 한국이 더 힘들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한국의 국민 1인당 배출량이 일본보다 35% 많은 것을 ‘한국 사람 1명이 일본 사람 1명보다 지구 온난화를 35% 가중시킨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내 소비가 아니라 국외 소비자들을 위한 수출 상품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배출량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물론 국외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이뤄진 상품을 수입해 쓰는 것을 통해 상쇄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한국은 수입 상품에 내재된 배출량보다 수출 상품에 내재된 배출량이 더 많은 ‘이산화탄소 순수출국’입니다. 일본은 그 반대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기준 분석 자료를 보면, 수출입을 통해 한국은 이산화탄소를 국내 최종 소비에 내재된 것보다 4800만t 초과 배출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국내 최종 소비에 내재된 것보다 1억5900만t 덜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중 수출 비중이 지난해 32.94%로 일본(13.89%)의 두 배가 넘는 데다, 철강과 석유화학·자동차·반도체 등 에너지 집약적 제조업이 중심을 이룬 산업구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GDP 1000달러 당 1차 에너지 소비량으로 나타내는 에너지원단위도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이 0.159TOE(석유환산톤)으로 일본(0.089TOE)보다 79%나 높습니다. 이런 데이터는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하는데 일본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 발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경쟁에서는 전력 못지 않게 전략도 중요합니다. 한국은 지난달 7일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에서 탄소중립과 경제성장,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비전 아래 △경제구조의 저탄소화 △저탄소산업 생태계조성 △탄소중립사회로의 공정전환을 3대 정책방향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정책 방향에 따라 중점을 둘 10대 과제로는 △에너지전환 가속화 △고탄소 산업구조 혁신 △미래 모빌리티 전환 △도시·국토 저탄소화 △신유망산업 육성 △혁신 생태계 저변 구축 △순환경제 활성화 △취약 산업·계층 보호 △지역중심의 탄소중립 실현 △탄소중립 사회에 대한 국민인식 제고를 설정했습니다.
지난해 10월 28일 국회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날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에너지전환 가속화 과제의 세부 내용에는 △에너지의 주공급원을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송배전 전력망과 분산형 전원체계 확대 △재생에너지·수소·에너지 정보기술 등 3대 에너지신산업 육성 등이 포함됐습니다.
고탄소 산업구조 혁신 과제의 세부 내용에는 △수소환원 제철, 에너지 효율 개선, 그린수소 활용을 통한 철강·석유화학 등 이산화탄소 다배출업종의 저탄소 전환 촉진 △탄소함유 원료의 저·무탄소 연료 대체 △탈탄소 지능형 설비 공정 전환 △산업 가치사슬 전반의 혁신 가속화를 통한 전 과정 탄소중립 실현 등이 담겼습니다.
미래 모빌리티 전환 과제의 세부 내용은 △수소·전기차 생산·보급 확대와 기술 개발·인프라 확충 등을 통한 친환경차 전환 가속화 △자가용 중심 기존 교통체계를 보행자와 친환경 교통수단 중심 체계로 전환 △무인자율주행 셔틀 등 창의적 모빌리티 서비스 도입·확산 △주요 거점 고속철도망 연결과 초고속철도망·광역도시철도 등 철도 인프라 확충 △선박 연료를 수소·암모니아 등 무탄소 연료로 전환하기 위한 친환경선박 개발 및 항만 인프라 구축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일본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2050년 탄소 중립에 따른 녹색 성장 전략’에서 △해상풍력 △암모니아 연료 발전 △수소 △자동차·축전지 △선박 △이산화탄소를 회수·자원화하는 탄소재활용 △주택·건축물 △자원순환 등 14개 중점 분야를 적시했습니다. 각 중점 분야별로 작성된 실행계획은 시한을 명확히 한 목표와 2050년까지의 추진일정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2050년 전력 수요가 현재보다 30~50% 늘어날 것으로 보고, 총 발전량의 50~60%를 태양광과 풍력, 수력 등을 포함한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나머지 30~40%는 이산화탄소 회수를 전제로 한 화력과 원자력 발전, 10%는 수소와 암모니아 발전으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특히 해상풍력에 특히 집중한다는 전략입니다. 2030년까지 10GW, 2040년까지는 부유식 풍력발전기를 포함해 30~45GW의 해상풍력 발전시설 설치를 목표로 잡았습니다. 2030년까지 발전용 석탄의 20%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암모니아 연료로 대체한다는 단기목표도 제시했습니다.
승용차에 대해서는 2030년대 중반 이전까지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조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선박 분야에서는 2028년까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선박의 상업 운항을 실현하고, 2050년까지 모든 선박 연료를 수소·암모니아·탄소재활용 메탄 등 가스연료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지난달 내놓은 탄소중립 전략을 보면, 한국의 전략에는 탄소중립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빠뜨리지 않고 역량을 쏟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포괄적인 만큼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줍니다. 반면 일본의 전략에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높은 부분을 선택해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납니다. 두 방향의 전략 가운데 어느 것이 탄소중립까지 더 잘 데려다 줄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양국의 탄소중립 전략은 앞으로 계속 다듬어질 예정입니다. 일본은 전략을 발표하면서 오는 봄까지 실행계획을 더 검토해 전략을 개정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한국도 이번에 발표된 10대 과제 추진을 위한 세부전략을 늦어도 4분기까지 마련하겠다는 일정표를 제시했습니다. 지난달 발표된 탄소중립 추진 전략에 빠진 구체적인 목표가 세부전략에 담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