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기습적으로 발달한 폭우가 내린 강원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에서 주민들이 물 속을 헤치며 가재도구를 챙기고 있다. 철원지역은 닷새 동안 최대 670㎜ 이상 폭우가 쏟아졌다. 연합뉴스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하는 국지성 집중호우는 작은 돌기에서 갑자기 발달하는 ‘당근형’ 구름 탓으로 분석된다. 또 8월 들어 태풍 영향을 자주 받는 것은, 장마가 길어지는 원인과 마찬가지로 ‘봉인’이 풀린 북극 한기가 북태평양고기압의 북상을 억누르면서 빚어지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9일 오후 7시 현재 서해상에서 발달한 ‘당근형 구름’이 이동하면서 좁은 지역에 집중호우를 내리고 있다. 사진은 기상청 레이더 영상. 기상청 누리집 갈무리
7월말~8월초의 정체전선(장마전선)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고 건조한 공기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남서쪽에서 유입되는 따뜻한 수증기가 만나 형성되는 것으로, 6~7월 장마철의 정체전선과는 달리 국지성 집중호우를 자주 발생시키고 있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남서쪽에서 고온다습한 공기가 모여드는 수렴대에서 상승기류가 발생하고, 이 기류가 상층에서 발산하는데 아래쪽의 수렴력보다 상층의 발산력이 큰 상태가 된다”며 “여기에 작은 돌기가 생겨 상층 15㎞ 대류권계면까지 발달하는 큰 구름이 짧은 시간에 형성돼 집중호우를 쏟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구름은 2~3시간 동안 시간당 수십㎜의 강한 비를 뿌린 뒤 점차 해소되면서 구름이 넓게 퍼진다. 그 형태가 당근을 닮아 ‘당근형 구름’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 돌기가 어떻게, 왜 생겨나는지 명확한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발생 시기와 장소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북극서 온 차고 건조한 공기와
남서쪽서 온 고온 수증기 만나
상승기류 발생 뒤 상층서 발산
돌기에서 큰 구름 생기며 폭우
이달 태풍 영향 자주 받는 이유는
북극 한기가 고기압 북상 누른 탓
또 최근 들어 새벽에 강한 비가 자주 내리는 것은 7월말~8월초 대기 상층이 햇빛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여서 햇빛이 없어지는 밤에는 구름의 응결 속도가 빨라지는데다 서해의 바닷물 온도가 높아져 고온다습한 수증기가 많이 유입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제5호 태풍 ‘장미’의 예상경로와 우리나라 주변 예상 기압계 모식도. 기상청 제공
북극에 갇혀 있던 찬 공기가 기후변화로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우리나라가 있는 남쪽까지 내려온 탓에, 북태평양고기압이 예년처럼 북상하지 못하고 옆 방향으로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면서 태풍 발생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임용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사무관은 “7월 한달 동안 태풍이 한차례도 발생하지 않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은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권이 남쪽으로 확대되면서 태풍 발생 수역에 고기압이 위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8월에 발생한 제4호 태풍 ‘하구핏’은 북태평양고기압이 중국 동안까지 뻗어 있는 상태에서 그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해 중국 내륙으로 상륙한 바 있다. 반면, 수축했던 북태평양고기압이 다시 일본 규슈 서쪽까지 확장한 상태에서 9일 새벽 발생한 제5호 태풍 ‘장미’는 그 가장자리를 따라 우리나라 남해안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여느 해처럼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나 중국 내륙까지 덮고 있다면 우리나라에 접근하지 못했을 태풍들이다.
올해 장마가 유독 길어지고 있는 것은 이 북태평양고기압이 힘을 쓰면 정체전선이 북상했다 다시 북쪽에서 내려오는 한기가 강해지면 남하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를 덮어 정체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갔다 사라지는 7월말~8월초 서쪽에서 유입되는 저기압에 의한 집중호우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올해는 저기압과 정체전선이 겹치면서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