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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올해 꿀 생산량 평년의 10%…기후위기로 밥상이 달라진다

등록 2020-07-30 04:59수정 2022-01-13 16:32

[최우리의 별 헤는 지구]
비가 오면 벌이 꿀을 모으러 비행을 하지 못 한다. 올해 5월은 3일에 한 번꼴로 비가 내려 예년보다 꿀 생산량이 10%에 불과하다.
비가 오면 벌이 꿀을 모으러 비행을 하지 못 한다. 올해 5월은 3일에 한 번꼴로 비가 내려 예년보다 꿀 생산량이 10%에 불과하다.

언론에서 ‘기후변화’ 문제가 문제라고 합니다. 아직은 알 듯 모를 듯합니다.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지금 당장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겠다면,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들에 주목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족과 또는 동료와 정을 나누고 맛을 즐기는 음식부터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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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꽃 향기가 사라졌던 5월

올해 봄철 날씨를 돌아볼까요. 저는 아카시꽃을 좋아하는데, 5월 말이면 서울 곳곳에서 은은하게 퍼지던 아카시꽃 향기를 맡은 기억이 올해는 드뭅니다. 기상청이 지난 6월 초 올해 봄철 날씨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올해 봄은 브라질·파키스탄·케냐·미국에서는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한국에서도 추위(4월)와 잦은 강수(5월) 등 ‘이상 기후’가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5월은 3일에 한 번씩 비가 왔는데 평년 강수일이 8.6일이었다면 올해는 9.6일로 늘었습니다. 싱그러운 5월에 비가 자주 내리면서 5월 이후 개화하는 아카시꽃이 제대로 피지 못했고 저는 꽃향기를 예년보다 덜 맡았던 거죠.

5월에 비가 자주 와서 올해 양봉농가의 꿀 수확량은 역대 최저 수준입니다. 한국양봉협회 자료를 보면 아카시아·야생화·밤꿀 등을 합친 전체 벌꿀 생산량이 올해 8천톤에 불과했습니다. 2017년 7만3천톤, 2019년 7만9천톤이었으니 평년의 10%에 불과합니다. 2018년에도 5월 비가 많이, 자주 내렸는데 꿀 생산량이 3만3천톤에 불과했습니다. 올해는 그보다도 훨씬 더 적었던 거죠. 한국에서 생산하는 꿀의 75% 이상이 아카시꿀인 만큼 5월에 비가 내리면 벌들이 꿀을 따러 꽃으로 비행하지 못해 양봉농가는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꿀벌 역시 스스로의 식량인 꿀을 생산하지 못하면 양봉가가 인위적으로 설탕이나 화분을 추가해주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2013년 미국의 유기농 마켓 체인인 홀푸드의 로드 아일랜드와 유니버시티 하이츠 매장에서 작업한 프로젝트. 꿀벌이 사라졌을 때 매장이 어떻게 바뀔지를 보여준 사진. 수분 매개 활동으로 생산된 매장 내 식품은 453개에 달했고, 이를 치우자 237개의 선반이 비었다. 훌푸드사 제공
2013년 미국의 유기농 마켓 체인인 홀푸드의 로드 아일랜드와 유니버시티 하이츠 매장에서 작업한 프로젝트. 꿀벌이 사라졌을 때 매장이 어떻게 바뀔지를 보여준 사진. 수분 매개 활동으로 생산된 매장 내 식품은 453개에 달했고, 이를 치우자 237개의 선반이 비었다. 훌푸드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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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절반’…과일나무, 냉해 피해

봄철 이상 기후는 여러 과일나무도 힘들게 했습니다. 저온인 날이 많고 비바람이 부는 날이 많으면 꽃도 제대로 피지 못하는 데다 벌도 날아오지 못합니다. 벌이 안 온다면 수정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지요. 29일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실을 통해 받은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전국적으로 저온 피해를 입었다고 집계된 과일나무 재배 면적은 3만7111ha였습니다. 서울시 면적이 6만ha 가량이니 서울 면적의 절반이 넘습니다. 사과 재배 면적 1만9570ha, 배 7398ha, 복숭아 3917ha, 자두 2376ha, 매실 1451ha, 단감 등 다른 과일나무가 2399ha의 냉해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때문에 농림부는 과일나무 복구비로만 739억원이 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심화되면 봄이 일찍 시작돼 개화시기가 지금보다 더 빨라질 것이 확실한데, 그럴 경우 냉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기후변화가 지속되면 한국인의 주식인 쌀밥과 김치도 귀해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28일 기상청과 환경부가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보면 밥과 김치, 생선과 김 등 기본적으로 밥상 위에 오를 밥과 반찬이 달라질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기후변화 상황을 고려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된 전체 1900여편의 각종 보고서의 연구결과를 분석·평가한 것입니다. 분야별 전문가 120명이 머리를 맞대고 기후 변화의 과학적 근거와 영향, 대책 등을 집대성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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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기 어려워지는 ‘구황작물’

한국인의 주식인 쌀(벼)은 보통 27~32도에서 잘 자랍니다. 그런데 보고서를 보면, 이상 고온이 지속되면 꽃 수정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감자는 가뭄이 들면 생육이 잘 이뤄지지 않았고요. 가을에 파종하는 보리도 겨울이 따뜻하면 생장기인 봄으로 오해해 빨리 성장하면서 냉해 위험이 증가해 생산율이 떨어졌습니다. 옥수수는 지난 20년 동안 여름철 고온 현상과 가뭄, 강수량 부족으로 과거보다 취약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연구됐습니다.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이번 세기말 쌀 생산량은 25%, 옥수수는 10~20%, 감자는 10~30% 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구황작물인 이들 식량작물이 줄어든다는 것은, 인간 신체의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백질을 먹으면 되지 않냐고요? 소나 돼지를 먹일 사료 역시 이런 곡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축산업도 영향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밥이랑 궁합이 잘 맞는 김치 주재료인 고추와 배추는 고온에서 생산량이 감소했습니다. 고추는 세기말 89%가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을 배추는 파종 뒤 결구기(속이 동그랗게 차는 때)까지 최고 기온이 높아져 생육에 영향을 받을 전망입니다. 다만 양파는 고온에서도 생산이 가능해 세기말 127~157%가 늘어납니다. 올 봄 냉해 피해를 입어 재배 면적이 줄어든 사과, 배, 포도, 복숭아 등은 이번 세기 말이면 아예 재배할 수 없거나(사과) 재배 면적이 전체의 0.2~2.4% 수준에 그치게 됩니다.

수산물은 전갱이·정어리·살오징어·삼치·방어가 한국 해안을 타고 북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어종의 어획량은 늘 것으로 예상됩니다. 해수온도 상승을 고려하면 돔류, 방어 등 아열대성 품종의 양식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미 진행 중입니다. 반대로 서해안의 김과 미역 등 해조류 양식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기후변화가 지속되면 현재의 밥상 위 음식들을 먹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기후변화가 지속되면 현재의 밥상 위 음식들을 먹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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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식재료를 구할 수 없다면…

보고서대로라면 앞으로 수십년 동안은 한국인들의 밥상 위 음식들이 서서히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더 비관적인 상황이 곧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음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해 8월, 2050년 주요 곡물 가격이 최대 23% 상승할 것이라며 미래에는 ‘식량 안보’ 문제가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천호 경희사이버대 미래인간과학스쿨 특임교수는 “2030년까지는 식량 생산율 증가 지역과 감소 지역이 거의 비슷하게 유지되지만 이후로는 본격적인 기후변화에 따라 생산량이 감소할 것”이라며 “중국과 인도 등 인구가 많은 나라의 식량 요구가 커지는 상황에서 공급량이 줄면 이제 마트에 가도 먹을 것이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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