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간 한반도 식물의 ‘생태시계’가 빨라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잎이 나고 꽃이 피는 시기가 빨라지고, 단풍이 드는 시기는 늦어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봄이 빨리 시작되고 겨울이 짧아지는 기후변화가 식물에게서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28일 <한겨레>는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의 ‘기후변화와 한국 산림의 식물계절 지난 10년간의 기록’ 보고서를 입수했다. 도시 중심이 아닌 국토 면적 64%를 차지하는 산림의 변화를 분석한 최초의 자료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을 포함한 국·공립 수목원 10곳(강원도립화목원·국립수목원·물향기수목원·미동산수목원·금강수목원·대아수목원·대구수목원·경상남도수목원·완도수목원·한라수목원)이 참여하는 ‘한국생물계절관측네트워크’는 2009~2018년 전국 38개 지역 50개 관측지점에서 총 256종 1266개체의 잎과 꽃, 열매의 시작과 종결 시점 8만2천여건을 기록했다. 이중 5년 이상·10개 지역 이상에서 관측한 낙엽활엽수 20종·상록침엽수 7종·초본류 12종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잎눈 파열, 개엽(잎이 다 남), 꽃눈 파열, 개화 시작, 개화(꽃이 다 남), 비산(꽃가루 날림), 낙화, 열매생성 시기 등 봄·여름철 변화는 빨라졌고, 가을에 찾아오는 단풍·낙엽 시기는 늦춰진 것으로 분석됐다. 식물의 생장 시점이 달라지면 생태계 질서가 유지되기 어려워 그 후유증이 적지 않다.
특히 진달래·생강나무·산철쭉 등 낙엽활엽수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개엽일은 10년에 걸쳐 전국 평균 13.4일, 개화 9.4일, 낙화 10.3일 빨라졌다. 단풍은 4.2일 늦어졌다. 식물이 생장을 시작하는 개엽은 빨라지고 낙엽이 늦어지면서, 관측 지역 중 83%에서 식물의 생장기간도 18일가량 늘었다. 특히 3~5월 평균기온이 1도 오를 때 개엽은 약 4.13일 빨라졌다.
한반도 식물, ‘생태시계’ 빨라졌다
<한겨레>는 국립수목원으로부터 생장 시점의 변화가 뚜렷했던 낙엽활엽수 20종에 대한 자료를 추가로 받아 종별로 분석했다. 국립수목원 식물자원연구과 손성원 박사와 서울대 환경대학원 기후융합과학연구실 김종호 연구원의 도움을 받았다. 전국에 분포된 나무 수백 그루의 생장 시점을 매년 조사한 결과값을 묶어 10년간의 ‘추세’(회귀곡선 기울기)를 확인한 결과, 변화의 방향은 선명했다.
‘봄의 전령’인 진달래는 10년에 걸쳐 잎눈이 조직을 뚫고 나오는(잎눈 파열) 날이 15.7일 앞당겨졌다. 온전한 잎이 열리는 건(개엽) 13.5일 빨라졌다. 예를 들어 10년 중 진달래의 개엽일이 가장 늦었던 날짜는 2010년 4월30일 무렵이었다. 그러나 2014년에는 이보다 보름이 당겨진 4월16일께 벌써 잎이 났다. 꽃눈이 나는 시기도 17.3일 앞당겨졌고 꽃이 만개하는 개화기도 15.1일 먼저 찾아왔다. 열매 맺고, 그 열매가 익는 시간도 각각 18.7일, 6.4일 일러졌다. 2010년엔 5월3일 열매가 열렸지만 2014년에는 4월15일에 이미 열매가 열렸다. 반면 단풍은 2일 늦어졌고 낙엽도 1.5일 늦어졌다.
진달래처럼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개나리도 10년 동안 꽃눈이 달린(꽃눈 파열) 시기와 꽃이 만개한(개화) 시기가 각각 16.4일, 12.7일 빨라졌다. 2009년에는 4월7일께 꽃이 피었지만, 2014년에는 열흘 빠른 3월27일에 꽃이 피었다. 평균 10.9일 빨리 잎눈을 틔웠고 12.3일 빨리 잎이 완성됐다. 잎이 가장 늦게 난 해는 2012년 4월19일이었는데, 가장 빨랐던 2014년에는 4월7일에 잎이 다 피었다. 열매 맺는 날짜는 22.2일 당겨졌는데 2009년 5월17일이었던 날짜가 2015년엔 4월21일이 됐다. 반면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은 14.2일 늦어졌고 잎이 떨어지는 시기도 9.3일 늦어졌다.
국내 꿀 생산의 약 75%를 차지하는 아까시나무는 13.6일 일찍 잎눈이 달렸고 7.7일 일찍 잎이 났다. 22.9일 일찍 꽃망울이 맺혔고 19.3일 일찍 꽃이 피기 시작했다. 잎눈이 처음 난 날짜는 2009년 4월23일, 2014년 4월7일로 보름 가까이 차이가 났다. 꽃눈이 처음 나온 날짜도 2009년 5월24일, 2017년 5월4일로 20일쯤 차이가 났다.
산수유와 꽃이 비슷해 지나치기 쉬운 생강나무는 꽃이 활짝 피는 시점이 17.8일 앞당겨졌고 열매가 익는 시기도 16.8일 일찍 진행됐다. 진달래와 꽃 모양이 비슷하나 진달래와 달리 잎이 꽃보다 먼저 나는 산철쭉은 이르면 4월18일(2018년), 늦으면 5월4일(2010년)에 잎이 다 났다. 꽃눈이 막 터져나온 건 4월8일 무렵(2018년)과 4월19일 무렵(2010년)으로 열흘 넘게 차이가 났다. 제주와 남부지역에만 자라는 단풍나무와 달리 국내 전역에 자생하는 ‘토종’ 당단풍나무의 개엽일은 4월25일(2016년)과 5월8일(2010년)로 변화 폭을 보였고, 개화는 4월25일(2009년)부터 5월11일(2011년)로 달랐다.
이런 변화를 확인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는 “기후변화는 식물의 생장 기간을 늘려 우리가 푸른 숲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늘었지만, 식물의 휴면기가 줄기 때문에 (그만큼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취약해져) 폭염과 가뭄 같은 이상기후에 피해를 볼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낙엽활엽수뿐 아니라 침엽수(구상나무·소나무·잣나무·전나무 등 7종)도 잎눈 파열, 개엽, 비산(꽃가루 날림) 등 봄철 변화가 모든 지역에서 점점 빨리 진행됐다. 초본류(깽깽이풀·꽃창포·원추리·노랑무늬붓꽃 등 풀 12종)는 나무보다 일사량, 온습도, 강수량 같은 다른 조건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의미한 결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특히 도시 지역의 열섬 현상이 식물 생장에 기후변화 효과와 유사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심 지역에 있는 경기도 오산의 물향기수목원 전시원에서 관측된 개나리·미선나무는 다른 지역보다 낙엽이 늦게 시작돼 식물 생장 기간이 길었다. 손성원 박사는 “산림 지역에 있는 다른 수목원과는 다른 결과”라며 “위도보다는 주변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식물의 ‘생태시계’가 빨라진 것이 최근 한반도의 기온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기상청 기후정보 포털을 보면 남한 6개 도시(서울·강릉·인천·대구·부산·목포)의 2011~2019년 기준 평균기온 변화 경향은 최근 10년 동안 1.19도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봄철 기온은 10년당 1.96도가량 크게 오르는 경향을 보여 연평균기온을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100년 전인 1910년대보다 연평균기온이 1.8도 높아진 결과다. 특히 3~5월 기온은 100년 전보다 2~3도나 올랐다. 이번 연구는 10개 수목원에서 직접 식물 생장이 달라지는 날짜를 기록한 뒤, 관측지점에서 가까운 곳에 설치된 기상청 자동기상관측망의 일평균기온을 적용해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기온이 지금보다 더 오를 경우 이런 변화는 가속화될 수 있다. 관측 결과 낙엽활엽수 20종은 봄철 평균기온이 1도가 오르면 잎눈 파열 3.65일, 개엽 3.86일, 꽃눈 파열 4.67일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잎이 나는 시기의 변화가 가장 잘 나타나는데, 1도가 오르면 노각나무 6.82일, 진달래는 5.34일 빨라졌다. 개화일도 진달래 6.19일, 철쭉 6.16일, 생강나무와 졸참나무는 2~3일씩 빨라졌다. 침엽수인 소나무도 잎눈이 처음 나는 시기가 3.33일 빨라졌고, 전나무는 3.16일 빨라졌다. 꽃가루 날림(비산) 시기도 빨라졌는데, 잣나무는 4.66일·소나무는 3.71일 빨라졌다. 낙엽은 진달래와 개나리가 3일씩 늦어졌다. 기온 변화에 따른 개엽·개화일의 변화가 컸던 진달래는 전체 식물 38종 중 가장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 박사는 “식물 계절 변화를 바탕으로 기후변화를 진단하기에 10년의 기록은 매우 짧을 수 있다. 그러나 10년 동안 우리나라 산림의 봄은 일찍 시작하는 경향을 보여줬는데, 한반도의 기온 상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변화가 생태계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기적·지속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