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키가 작은 꼬마 나무인 돌매화나무 군락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라산 고지대 절벽에 살고 있 다. 지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세계적 희귀종인 이 식물은 국내에선 유일하게 한라산 정상 부근 암벽에서만 자란다. 제주도/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도시 빈민이 옥탑에 살듯, 기후변화로 멸종 위기에 놓인 극지고산식물은 하늘과 가까운 절벽 아래 숨어 있었다. 지난 4일 <한겨레> 취재진은 국내에선 유일하게 한라산에서만 자라는 극지고산식물, 돌매화나무를 찾아 둘러봤다.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돌매화나무를 직접 보려면 산 정상 부근 암벽까지 힘겹게 올라야 했다. 태양과 인간을 피해 꽃을 피운 돌매화나무는 기후변화가 진행되면 국내 유일의 피난처인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도 더는 살 수 없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심화되면 도망칠 곳 없는 식물부터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공룡 이후 여섯번째 멸종이 식물, 그중에서도 극지와 고산지대에 사는 식물(빙하기 식물)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실제로 중국 티베트 고원은 지난 50년 동안 2000m 이하 지역보다 40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기온 상승 속도가 7.5% 빨랐다.
식물의 변화는 일종의 ‘신호탄’이다. 식물을 시작으로 곤충·조류 등 먹이사슬을 기반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생태계 질서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28일 <한겨레>가 입수한 산림청 국립수목원의 ‘기후변화와 한국 산림의 식물계절 지난 10년간의 기록’ 보고서를 보면, 지난 10년간 한반도 식물의 생태시계가 얼마나 빨라졌는지 알 수 있다. 잎눈 파열, 개엽(잎이 다 남), 개화(꽃이 다 남), 비산(꽃가루 날림) 시기 등 봄철 변화는 빨라졌고, 가을에 찾아오는 단풍·낙엽 시기는 늦춰진 것으로 분석됐다. 식물의 생장 시점이 달라지면 생태계 질서가 유지되기 어려워 그 후유증이 적지 않다.
특히 진달래·생강나무·산철쭉 등 낙엽활엽수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개엽일은 10년에 걸쳐 전국 평균 13.4일, 개화 9.4일, 낙화 10.3일 빨라졌다. 단풍은 4.2일 늦어졌다. 식물이 생장을 시작하는 개엽은 빨라지고 낙엽이 늦어지면서, 관측 지역 중 83%에서 식물의 생장기간도 18일가량 늘었다. 특히 3~5월 평균기온이 1도 오를 때 개엽은 약 4.13일 빨라졌다.
이번 보고서는 국토 면적의 64%를 차지하는 산림의 변화를 분석한 최초의 자료다. 국공립 수목원 10곳이 참여한 ‘한국생물계절관측네트워크’는 2009~2018년 전국 38개 지역 50개 관측지점에서 총 256종 1266개체의 잎과 꽃, 열매의 시작과 종결 시점 8만2천여건을 기록했다. 이 중 5년 이상 10개 지역 이상에서 관측한 낙엽활엽수 20종, 상록침엽수 7종, 초본류 12종을 분석했다.
<한겨레>는 한라산을 시작으로 설악산·지리산·강원도 홍천 등의 극지식물을 찾아 현황과 보존 대책을 짚어볼 계획이다. 생물지리학을 전공한 공우석 경희대 교수와 국립수목원 산하 디엠제트(DMZ)자생식물원이 함께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빙하기 식물이란? <한겨레>는 ‘극지고산식물’ ‘고산식물’을 일컫는 열쇳말로 ‘빙하기 식물’이라는 용어를 썼다. 빙하기 때 한반도에 자리 잡았으나 다시 기온이 오르는 간빙기 때 북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한반도에 남았다. 육지에 떠 있는 섬처럼 우리나라 고산대와 아고산대의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격리되어 분포한다. 한반도 숲의 역사와 자연사를 이해하는 열쇠이며, 기후변화가 심화되면 멸종할 수 있는 생태계의 약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