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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안착 중이던 다회용기, 환경부가 일회용처럼 버렸다

등록 2023-11-24 08:00수정 2023-11-24 21:16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철회 파문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소비자기후행동 등 ‘1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 규탄 전국공동행동’ 참여 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부가 지난 7일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등에 관한 일회용품 규제를 철회한 것을 비판하며 환경부가 환경을 파괴하는 일회용품 쓰레기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소비자기후행동 등 ‘1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 규탄 전국공동행동’ 참여 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부가 지난 7일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등에 관한 일회용품 규제를 철회한 것을 비판하며 환경부가 환경을 파괴하는 일회용품 쓰레기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 업체 ‘트래쉬버스터즈’의 경기도 안양 세척공장에는 매일 13만개의 다회용컵이 들어온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6시와 오후 4시, 1톤 트럭 10대가 두차례 수도권 일대의 크고 작은 카페와 기업의 사내 카페 및 탕비실 등에서 수거한 컵을 세척장에 쏟아낸다. 1주일이면 65만개, 전주 시민 전체가 컵 하나씩 쓸 수 있는 규모다.

“이렇게 (일회용 종이컵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있고 시장도 있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구조인데, 정작 지원해야 할 환경부만 우왕좌왕하고 있네요.” 곽재원 트래쉬버스터즈 대표는 지난 20일 한겨레와 만나 환경부의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처 철회를 두고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환경부의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처 철회는 계도기간 종료(11월24일)를 보름여 앞두고 ‘느닷없이’ 이뤄졌다. 이런저런 소문이 돌긴 했지만, 다회용기 업계 쪽에선 아예 규제를 없애버릴 줄은 몰랐다는 분위기다. “규제 철회 발표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일부 지방자치단체 관계 부서 담당자들이 카페 등을 돌며 ‘곧 계도기간이 끝난다’고 홍보하고 다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특히 일회용 종이컵을 대체하고 있는 다회용기 업체 관계자들에게 ‘사전’에 이렇다 할 의견 조회조차 하지 않았다. 환경부 쪽은 종이 빨대 업체가 ‘줄도산 위기’를 호소하며 들고일어나자 그제야 다회용기 업체들에 만나자고 연락해왔다. 그렇게 잡힌 첫 만남이 오는 28일로 예정돼 있다. 정책 철회 3주 만이다. 이동훈 한국재사용순환경제협회 사무국장은 “정책 발표 전에 업계를 만났으면 모두 반대하고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에 논의만 했어도 이런 후폭풍을 몰고 올 조처를 발표할 엄두를 내진 못했을 것이란 취지다. 

세척 작업 중인 다회용컵. 트래쉬버스터즈 제공
세척 작업 중인 다회용컵. 트래쉬버스터즈 제공

그린피스에 따르면 국내에서 연간 쓰고 버려지는 종이컵은 37억개로, 매년 종이컵 사용으로 인해 16만7240톤의 탄소가 배출된다. 자동차 6만2천대가 배출하는 탄소량과 맞먹는 양이다. 환경부는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보다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지원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규제 없이 자율과 지원으로만 다회용 산업을 육성한다거나 일회용품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은 허상”이라고 말했다.

다회용기 업계 쪽에선 환경부가 이런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무턱대고 정책을 철회했다고 비판한다. 환경부는 규제 철회 당시 “매장에서 다회용컵을 세척할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거나 세척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부담이 늘어난다는 고충을 토로한다”는 이유를 밝혔지만, 이미 이 부담을 덜어줄 시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부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다회용컵 수거·세척 서비스를 실시하는 ‘그린업’의 오민경 대표는 “당장은 다회용컵 사용 단가가 20% 정도 비싼 것처럼 보이지만, 종이컵을 2개 겹쳐 사용하거나 홀더나 뚜껑까지 포함할 경우 비용 차이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존에 환경부가 각 지자체를 통해 실시해온 ‘다회용기 시범사업’ 등을 더 강화·확대하면 업계도 살고 친환경 정책도 유지할 수 있는데, 환경부가 제도를 철회하는 손쉬운 선택을 했다고 비판했다.

사실, 다회용기 업체 쪽은 환경부의 이런 ‘날벼락’ 행정이 낯설지 않다는 분위기다. 이미 지난해 6월 시행 예정이었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6개월간 미뤘다가, 정작 때가 돼선 세종과 제주에서 시범 시행하기로 정책을 변경한 바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 대회 참여자들이 다회용컵을 사용하고 있다. 그린업 제공
마라톤 대회 참여자들이 다회용컵을 사용하고 있다. 그린업 제공

다회용기 업체 관계자들은 정부의 이런 조처가 일회용 종이컵과 ‘헤어질 결심’을 한 시장 분위기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곽 대표는 “지난해 일회용컵 보증금제 연기 때만 해도 100여개 카페로부터 계획 철회 문의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계약을 하자는 신규 고객이 20곳이나 대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주요 고객인 기업들을 보면,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일회용품을 적게 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실제로 (다회용기 사용 이후)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줄어드는 걸 경험하고 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겠다는 고객들은 없다. 이런 시민들의 생각과 환경부의 방향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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