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24일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400여개 단체로 구성된 ‘9월 기후정의행동’이 주최한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서울 세종대로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은 더디기만 합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를 감축하기로 한 약속’도 점점 멀어지고, 코로나19 덕택에 줄인 온실가스 배출량마저 반환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회 예산정책처는 매년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보고서를 냅니다. 국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조감하는 좋은 참고 자료로 이용되죠.
지난달 25일 발간된 ‘2023년 경제 현안 분석’에선 물가∙재정∙인구 등 7개 현안 가운데 하나로 기후∙에너지 위기가 꼽혔습니다. 6일 통계 자료를 중심으로 하나씩 살펴봤어요. 원문은
예산정책처 누리집에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연도별 온실가스 감축 성과 및 전망_2021년까지 배출량은 실적치, 2022년 배출량은 예산정책처의 전망치다. 단위는 백만t(이산화탄소환산량). 출처: 국회 예산정책처
2020년 문재인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입니다. 이번 정부에서도 이 기조는 변함없어요.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년 4.2%를 줄여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봐선 성적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예산정책처는 “2022년까지 배출량이 연평균 1.6%만 감소한 것으로 예상한다”며 “남은 기간의 연평균 감축률을 5.4%로 높여야” ‘2030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2018년) 이후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에너지소비량, 국내총생산(GDP) 추이_2018년을 100으로 봤을 때, 각 연도의 증감률(%)을 의미한다. 단위는 %. 출처: 국회 예산정책처, 에너지통계월보
‘2018년이 정점이다. 앞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간 정부는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8년에 정점을 찍었다고 밝혀왔어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듬해인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대비 9.8%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때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진 덕이었죠.
하지만, 코로나19가 회복세를 보인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 다시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2022년 통계에서도 전년 대비 0.4%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꾸물꾸물 꿈틀거리는 온실가스 배출량… 이대로 가다간 ‘2018년 정점론’이 거짓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에요!
주요 나라의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률_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정리했다. 왼쪽 단위는 백만t(이산화탄소환산량), 목표달성률 단위는 %. 출처: 국회 예산정책처
다른 나라 성적표와 비교해볼까요?
2020년 기준 영국은 2030년 감축목표의 72.3%를 달성했습니다. 유럽연합은 62.7%, 일본은 39.8%, 미국은 38.1%를 달성했어요.
그런데, 한국의 달성률은 27.4%로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게다가 2021년 이후 배출량이 상승하고 있어, 2030년 목표 달성까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일차에너지 중 재생에너지 비중_단위는 %. 출처: 경제협력개발기구, 국회 예산정책처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권입니다.
2020년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은 2.3%로, 상대적으로 에너지 전환이 늦은 일본(6.3%)의 3분의 1 수준이죠. 주요 20개국(G20) 중에선 사우디아라비아(0.03%), 러시아(2.9%) 다음으로 꼴찌에서 3위입니다. 음… 산유국을 겨우 제쳤네요. 석유가 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게으름 피울 이유가 있나요?
주요 나라의 2020년 에너지원별 전원 구성_아래 수치는 수력발전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단위는 %. 출처: 일본 경제산업성, 국회 예산정책처
재생에너지에 수력을 포함하면, 캐나다는 총 발전량의 66.3%가 무탄소 전원입니다. 이탈리아(39.7%), 독일(35.3%), 영국(33.5%), 중국(25.5%)도 무탄소 전원 비중이 꽤 높아요. 반면, 한국은 7.4%에 지나지 않습니다.
원자력발전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미미하기 때문에 유럽연합과 한국 등은 녹색분류체계(그린택소노미)에서 원전을 ‘저탄소 전원’으로 규정하고 있죠. 재생에너지와 수력 그리고 원전까지 저탄소 전원으로 보면, 캐나다∙스페인∙영국∙프랑스에서 저탄소 전원 비중은 이미 총 발전량의 절반을 넘습니다. 한국은요? 34.6%입니다.
주요 20개국(G20) 국가의 제조업 비중과 에너지집약도_점선은 G20 중간값. 출처: 세계은행, 국회 예산정책처
그럼, 한국은 어떡해야 할까요?
예산정책처는 먼저 한국이 에너지집약도와 탄소집약도가 높은 나라라는 점을 유념하라고 합니다.
에너지집약도는 ‘국내총생산(GDP)당 에너지소비량’을 뜻하는 지표죠. 한국은 5.6으로, 미국 4.51, 일본 3.3, 독일 2.76보다 높습니다.
탄소집약도는 에너지원별 공급 비율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수준을 보여줍니다. 높을수록 저탄소 에너지원 사용이 적다는 거예요. 한국의 탄소집약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미국과 함께 가장 높은 편입니다.
한국에서 두 수치가 높은 이유는 산업 구조상 제조업 비중이 높고, 재생에너지 보급이 더디기 때문입니다. 예산정책처는 “한국의 탄소중립 이행 경로는 에너지집약도가 낮은 나라 중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의 성장 경로를 추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예로 독일과 일본을 들었습니다. 특히, 독일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데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35%대에 달해 에너지 전환에 성공한 나라죠.
예산정책처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서두르는 한편 국내 에너지·자원 분야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고, 녹색채권 등 금융 투자를 늘리자고 제안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0년 기술수준 평가 결과를 보면, 한국은 에너지·자원 분야 평가지수가 80.2로, 유럽연합(98.2)은 물론 중국(81.6)보다도 낮아요. 지난해 녹색채권 발행액도 약 14조8000억원으로, 전체 채권 발행잔액의 1% 미만인 형편입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