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코끼리의 사체를 부검하면, 내장에는 비닐 등 플라스틱 이물질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한국방송 제공
지난주말 스리랑카에서 쓰레기매립장을 뒤지는 코끼리를 다룬 한국방송의 <환경스페셜2>의 ‘플라스틱 코끼리’ 편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쓰레기를 뒤지다가 매립지 산에서 무너지듯 죽는 코끼리, 코끼리의 내장에서 줄줄이 나오는 플라스틱 비닐들….
‘쓰레기장 코끼리’는 스리랑카에서 지난한 환경 문제였지만, 세계에 알려진 건 최근 들어서다. 지난해 1월 에이피(AP)통신이
‘지난 8년 동안 쓰레기장에서 20마리 코끼리가 죽었다’고 보도했고, 영화배우 리오나도 디캐프리오가 이 기사를 리트위트하면서 화제가 됐다.
박정훈(48) 한국방송 피디(PD)는 곧장 카메라를 챙겼다. 코로나19로 관광산업이 붕괴한 스리랑카는 국가부도 문턱에 들어가는 와중이었다. 연이은 소요 사태와 대통령 사임으로 취재는 늦어졌고, 8월이 돼서야 그는 스리랑카 동부 암파라 지역의 팔락카두 마을에 도착했다. 쓰레기매립장에는 부패한 쌀밥과 기저귀, 링거병, 주사기 등 쓰레기가 분류되지 않은 채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가 당시를 떠올리며 20일 말했다.
“그래도 ‘야생 코끼리’이니 보기 힘들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오후 3∼4시쯤 매립장을 가보라고 하더군요. 코끼리 수십 마리가 쓰레기산을 헤집고 있었어요."
기묘하고 섬뜩한 풍경이었다. 스리랑카코끼리는 아시아코끼리의 아종으로, 19세기만 해도 2만마리에 가까웠으나 지금은 2100~3000마리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 트럭이 쓰레기를 쏟아붓고 따가운 햇볕이 수그러들면, 코끼리들이 출근하듯 모여든다.
스리랑카 팔락카두 쓰레기매립장 주변에서 쓰러져 죽은 코끼리. 쓰레기매립장의 독성물질과 비닐로 인한 장 폐색 그리고 식중독 등이 죽음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한국방송 제공
코끼리를 본 기쁨도 잠시, 취재팀은 며칠 뒤 그들이 하나둘 쓰러지는 장면을 목도해야 했다.
“한 번은 코끼리가 쓰러졌는데, 일어섰다가 다시 쓰러지고…. 일주일에 두 차례나 부검을 본 적도 있어요.”
2021년 출판된 학술지 <포유류생물학>을 보면, 쓰레기장 코끼리가 야생 코끼리보다 영양 상태가 좋다고 말한다. 반추동물과 달리 코끼리의 위가 단순한 구조여서 비닐로 인한 장 폐색은 드물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박 피디가 현장에서 들은 얘기는 조금 달랐다. 비닐이 쌓여 엉키고 단단해져 영양 흡수를 막기도 하고, 장이 막혀 먹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지난해 8월 학술지 <네이처 컨서베이션>에서는 코끼리 배설물의 3분의 1에서 쓰레기가 발견됐다며, 코끼리 배설물을 통한 독성물질의 생태계 확산을 우려했다.
스리랑카 동부 암파라의 팔락카두의 쓰레기매립장에서 코끼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한국방송 제공
스리랑카에는 이런 노천 쓰레기 매립지 54곳이 있다. 도시 외곽 숲을 밀어내고 만들어져, 코끼리를 불러모은다. 매일 같은 시간 방문하는 코끼리, 다수의 매립장을 쇼핑하듯 도는 코끼리, 번식기를 앞두고 많이 먹고 덩치를 키우려는 수코끼리 등 각자의 패턴과 이유가 있다고 박 피디는 설명했다.
그런데 매립장 주변에 수로를 파고 전기 울타리를 쳐서 코끼리를 막으려고 해도, 코끼리는 어떻게든 길을 찾아낸다고 한다. 그런 행동이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쓰레기장 길이 막힌 코끼리가 마을로 향하면서 사람과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박 피디는 “아직 스리랑카에는 분리 수거하는 문화가 부족하고, 소각 시설은커녕 재활용 센터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코끼리를 부검할 때 쓰는 메스도 다 닳았을 정도"라며 열악한 환경을 아쉬워했다. 유럽연합에서 지원한 근처의 재활용 시설은 운영비가 없어 무용지물이 됐을 지경이다.
‘금강송 숲의 동맹’과 ‘엄천강 수달 선생’ 등 자연 다큐멘터리 수작들을 연출한 그는 ‘환경스페셜 피디’라고 불리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일본강점기 사라진 한반도의 야생동물 그리고 인도의 소와 쓰레기의 관계에 대해서 취재 중이다. 최근 국내의 동물권과 야생보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는데, 외국의 동물에게도 향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스리랑카코끼리라는 지구의 한 종이 사라지고 있어요. 우리도 지평을 넓혀서 코끼리를 도왔으면 좋겠습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