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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인류는 연대로 이겨낼 것이다, 기후위기마저도

등록 2022-09-08 09:00수정 2022-09-08 09:30

[조천호의 파란하늘]
호모사피엔스 번성 비결은 기후변화 적응력
자연환경 급변동을 집단지성과 연대로 극복
인류진화 500만년 간 2도 온난화 경험 없어
호모 사피엔스는 급변하는 자연변동성을 연대와 집단지성으로 극복해냈다. 픽사베이
호모 사피엔스는 급변하는 자연변동성을 연대와 집단지성으로 극복해냈다. 픽사베이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인류 조상인 호미닌(hominin)은 20여 종이나 있었다. 다른 호미닌들은 모두 멸종했지만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살아남았다.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호미닌보다 머리가 좋긴 했지만, 몸집이 가장 크지도, 힘이 가장 세지도 않았다.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다고 해도 맨몸으로 야생에 내던져진다면 맹수에 맞설 수 없다. 그런데도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끝까지 살아남아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가?

동물은 자연환경이 바뀌면 유전자 변이를 통해 새로운 서식지에 적응했다. 그렇지 못하면 멸종했다. 하지만 인류의 유전자는 그 어느 종보다 종 안에 차이가 적다. 그럼에도 인류가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다른 종처럼 유전적 적응 때문만이 아니다. 인류는 단일 환경에 특화하기보다는 기후변화에 따른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적응 능력을 키우며 진화했다.

5천만년 전의 전 지구 평균기온은 지금보다 약 15도 더 높았다. 이후 기후가 전반적으로 추워졌다. 이 변화 원인은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에 따른 히말라야산맥의 융기였다. 거대한 산맥의 침식 과정은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기온을 떨어뜨렸다. 약 4천만년 전 남극에 빙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온이 낮아지면서 바다에서 증발이 줄어들어 비가 적게 내려 건조해졌다.

지난 6500만년 동안 지상 기온의 변화. 출처: James Hansen과 Root Routledge의 연구에 기반해 Earle가 그림.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인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들은 모두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일어났다. 지구대 밑에서 맨틀이 올라오면서 양옆으로 대륙을 밀어내다 보니 중간에 있는 땅이 내려앉고 그곳이 거대한 골짜기가 만들어졌다. 이 골짜기는 맨틀이 올라와 이루어졌으므로 고도가 높다. 이 때문에 날씨가 서늘하고 건조한 고원기후가 되었다. 여기에 인도양에서 습기를 머금고 불어오는 공기는 지구대 동쪽 산맥 때문에 막혔다. 지구대의 서쪽 산맥은 중앙아프리카 우림 지역의 습한 공기가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차단했다.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기후는 나무가 빽빽한 열대우림에서 초원인 사바나로 바뀌었다. 밀림에서 얻었던 식량이 초원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생활반경 역시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새로운 자연환경에서 나무에 매달려 살아가던 호미닌은 초원을 두발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약 4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타난 것이다.

약 300만년 전 파나마해협이 닫혀 북미와 남미가 연결되었다. 멕시코만류가 대서양 북쪽으로 올라가 갈 수 있게 되었다. 따뜻한 바닷물에서 수증기 증발이 많아져 북극 부근에 눈이 많이 내렸다. 이로 인해 북극 빙하가 커졌고 약 270만년 전 빙기와 간빙기의 주기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에 들어섰다.

기후가 불안정해져 자연환경도 변화가 커졌다. 호미닌은 질긴 풀, 씨앗, 뿌리를 식량으로 삼아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이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파란트로푸스와 호모 하빌리스로 진화했다. 파란트로푸스는 단단하고 거친 먹거리도 능히 씹을 수 있는 튼튼한 턱과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호모 하빌리스는 뇌가 커졌고 석기를 사용하여 거친 먹거리를 부드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파란트로푸스처럼 자기 몸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똑똑해져 부엌 살림을 차려 문제를 해결하였다. ‘능력 있는 인간’이라는 뜻인 호모 하빌리스는 우리 조상이 된 최초의 호모 속이었다.

호모 하빌리스가 머리가 좋아 연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바로 사냥꾼이 될 수는 없었다. 키가 1m 안팎에 불과했고 몸무게도 45㎏ 정도였다. 사자나 표범이 짐승을 잡아먹고 남긴 찌꺼기 살을 하이에나와 독수리가 휩쓸고 지나간 뒤에나 남겨진 뼈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석기를 이용해 뼈를 부수어 그 안의 골수를 빼먹었다.

호모 속은 갈수록 추워지고 건조해지는 추세에만 적응했던 것이 아니었다. 플라이스토세에 빙기와 간빙기 사이 기온 차가 점차 더 커졌다. 이에 따라 숲, 호수, 사바나, 삼림지대가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는 자연환경의 가변성도 점차 더 커져갔다.

사회적 학습 통해 동료간·세대간 정보 전파

이런 자연환경에서 호모 속은 사회적 학습이라는 집단 지성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다. 먹을 것이 풍부하고 따뜻하게 잘 곳을 찾아내면 자기 홀로 누리지 않고 동료에게 알려 주었다. 이 정보는 모아져 더 좋은 정보를 쌓아 갈 수 있었다. 즉 인류는 연대를 통해 자신 능력보다 더 큰 무언가를 이루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인류 연대는 동료뿐 아니라 세대 간에도 이루어졌다. 각 세대가 앞서 축적된 정보를 물려받지 못하고 모든 걸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면 인류는 문명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는 다른 동물에 비해 어린 시절이 길다. 커진 뇌에 축적된 정보와 사회적 관계를 채우기 위해 아이에게 배울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했다.

어린 시절이 길어져 어머니는 동료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없었다. 공동체에서 아이를 돌보았고 이러한 협동이 사회적 지능을 더 발달시켰다. 곧 함께 돌봄으로 더 똑똑해질 수 있었다. 마침내 200만년 전 먹이사슬의 최고 위치에 오른 호모 에렉투스가 지구상에 등장했다.

18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를 벗어나 아시아와 유럽에 진출하였다. 약 140만년 전에는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사냥거리가 풍족하지만 눈과 얼음의 혹독한 겨울이 맹위를 떨치는 유라시아 북쪽으로도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500만 년 동안 지상기온과 인류 두개골 부피의 변화. 출처: 기온은 Wikimedia(Five Myr Climate Change). 두개골 부피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약 100만 년 전 빙기와 간빙기의 주기가 자전축 주기인 4만1천년에서 공전궤도 주기인 10만년으로 바뀌었다. 주기가 길어졌을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가 더 심해졌고 특히 빙기에 더 큰 추위에 떨어야 했다. 호모 속은 이 혹독한 자연환경 변화로 인한 다양한 압력을 다재다능함으로 극복했다. 호모 속의 뇌가 극적으로 커졌고 이를 통해 집단지성이 크게 확장되고 축적될 수 있었다. 언어 표현력과 추상성이 커져 지식, 생각, 계획을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집단 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조지프 헨릭이 쓴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우리가 영리한 것은 맞지만, 그 이유는 우리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어서도 아니고 우리 자신이 거인이어서도 아니다. 우리는 난쟁이들로 세워진 커다란 피라미드의 어깨 위에 서 있다.”

인류가 성공한 비밀은 개개인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난쟁이가 서로를 쌓아 올라가게 할 수 있는 연대에 있었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도약의 힘이 되었다. 마침내 20만년 전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이들은 약 7만년 전부터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구상 거의 모든 기후 조건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ᅠ

인류는 알맞은 좋은 자연환경에서 오늘날 우리로 진화하지 않았다. 추워지고 변화가 극심해지는 기후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이때 인류 직계 조상의 호모 속이 아닌 다른 속들은 특정 자연환경에 알맞게 특화되어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새로운 기후변화로 직면하게 되는 새 자연조건에서 생존 능력을 떨어뜨렸다.

우월한 신체 호미닌, 각자도생하다 멸종

호모 하빌리스와 함께 지구상에 출현했던 파라트로프 속은 당시 자연환경에 맞는 우월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각자도생했다. 결국 기후변화가 더 커지지 시작한 100만년 전에 멸종했다. 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호모 하빌리스와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호모 속의 뇌는 점점 더 커졌다. 좋아지는 머리는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욱더 연대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함께 분투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로 진화했다.

인류가 출현하고 진화하였던 지난 500만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바로 이전보다 2도 이상 따뜻해 본 적이 없다. 오늘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난 270만년 중 그 어느 때보다 높으며 지난 6600만년 중 그 어느 시점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이번 세기 중반 기온상승이 2도를 넘게 될 것이다. 이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연환경에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미지의 위험에서 우리 문명은 적응할 수 없다. 문명은 약 1만2천년 전부터 시작한 안정한 기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인구 80억명을 먹일 수 있는 농업이 가능한 유일한 기후조건이다. 호모 속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기후가 이렇게 안정적인 때는 없었다. 오늘날 인류는 이 기후에 극단적으로 특화된 문명을 구축해 왔다. 그러는 동안 인류는 부잣집 도련님 생활에 취해 집 밖 변화무쌍한 환경에서도 살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특정한 자연환경에 특화된 호미닌은 모두 멸종한 것처럼 기후변화가 일어나면 우리 문명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모든 종 가운데 가장 지적인 인류가 자신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지구환경을 스스로 파괴하려고 한다.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회복 불가능한 위험이므로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인류의 진화처럼 우리의 연대가 기후위기를 막아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오는 9월24일 기후정의행동에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 사이먼 L. 루이스 외 지음, 김아림 옮김, 2020

<사피엔스의 멸망> 토비 오드 지음, 하인해 옮김, 2021

<세상의 모든 과학> 이준호 지음, 2017

<오리진> 루이스 다트넬, 이충호 옮김, 2020

<옥스퍼드 세계사>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외 지음, 이재만 옮김, 2020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 나유신 옮김, 2009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 조지프 헨릭 지음, 주명진.이병권 옮김, 2019

What Does It Mean to Be Human? Climate effects on human evolution.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Last updated July 7, 2022.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cch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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