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인권의 시각에서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를 분석하는 연구를 한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기후변화로 태평양 섬나라에는 난민이 생기고, 유럽에는 온열 질환자가 늘어나며, 빙하 아랫마을은 홍수 위기에 놓인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인간의 ‘불의한’ 행위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후변화를 자연재해처럼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공백으로 남겨졌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인과론’이 과학적 증거로 채워지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인권이 위협받는다’는 생각이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중이다. 동시에 기후변화를 새롭게 사고해야 하는 과제도 생겼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탄소사회의 종말>,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등의 저서를 통해 인권의 관점에서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를 천착하고 있다. 지난 7월15일 그를 인터뷰했다.
―최근에는 독일, 네덜란드 등 환경단체와 시민 등이 국가를 상대로 한 기후소송에서 승소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법원이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기존과 어떠한 점에서 달라진 거죠?
“1980년대부터 시작된 기후소송은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2000건이 넘게 이뤄졌습니다. 이 가운데 4분의 1이 최근 2년 사이에 제기됐고,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의 판결에서 인권침해가 인정됐고요.”
―기후변화는 왜 인권의 문제입니까? 언뜻 잘 다가오지 않습니다.
“현대 인권 체계의 출발점은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입니다. 30조로 된 짧은 문헌인데, 27조까지는 생명권, 법적 기본권, 노동권 등 개별 권리에 관해서 얘기하다가 28조에 굉장히 중요한 조항이 나옵니다. 개별 권리와 자유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국제적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질서를 가질 권리 또한 중요하다고 나옵니다.”
―우리는 보통 인권 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떠올리는데, 좀 다르네요.
“개별 권리와 함께 개별 권리를 보장하게 해주는 질서(체제)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소거된 채 법리적인 접근이 인권의 전부인 것처럼 좁게 보는 오해가 생겼죠. 지금도 99%가 인권을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반반씩 봐야 한다고 봐요. 개별 권리의 구제와 가해자의 단죄도 중요하지만,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면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후변화는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인권을 조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례입니다.”
미국 알래스카의 원주민 마을 쉬스마레프의 한 주택이 해안가 침식으로 인해 쓰러져 있다. 2005년, 12명의 청소년을 대표해 알래스카주의 기후변화 정책에 대항하는 소송이 진행됐다. AP/연합뉴스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타깃으로 여러 나라에서 소송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네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고요.
“인권의 궁극적인 책임 주체는 국가입니다. 국가는 인권과 관련해 존중의 의무, 보호의 의무, 충족의 의무를 져요. 특히 중요한 게 두 번째 보호의 의무입니다. 국가가 인권을 직접 침해하지 않더라도 기업이나 기관, 개인 등의 인권침해를 국가가 막아줄 보호 의무가 있다는 것이죠.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최근의 기후소송에서 국가가 ‘주의 의무’(duty of care)를 다하지 않았다는 판결이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제법을 넓게 해석해서 국가 간 신의성실 관계에서도 주의 의무를 적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불충분한 감축 목표로 기업이나 민간이 시민권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상황을 국가가 묵인, 방조하고 있다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인권을 보는 렌즈가 고정되어 있으면 새로운 인권침해 이야기가 안 먹히지요. 기후변화를 인권의 관점으로 보는 ‘다초점 렌즈’가 필요한 거예요.”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는 모두가 가해자(공범)이자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이 역시 우리가 가진 인권에 대한 선입견, 즉 ‘가해자-피해자의 인과율’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탄소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 존재하는 존재들이죠. 인권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이들, 예를 들면 화석연료를 채취하는 산업, 대량소비를 부추기는 기업 등에 훨씬 더 큰 책임을 추궁할 수 있겠죠. 개인들 특히 서민들은 이런 시스템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극히 적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니 탄소 상품을 생산한다는 주장은 책임 관계를 교묘하게 뒤집는 논리입니다.”
2019년 독일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이 불충분하다며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산업혁명 이후부터 주요 기업들이 온실가스를 배출했지만, 기후변화의 문제점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건 얼마 안 되지 않았습니까? 그들도 몰랐을 수 있습니다.
“필리핀 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기후변화 조사 보고서’가 굉장히 좋은 사례입니다. 세계의 탄소 메이저(과다 온실가스 배출 기업) 47곳의 책임을 물어달라고 진정한 사건이었는데, 7년의 연구 끝에 지난 5월 발표됐습니다. 특히 중요한 부분은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기업들이) 기후변화의 악영향을 알고 있으면서, 관련 영리활동을 되레 확대했다고 지적했어요. 적어도 인권 논리로 보면, 1960~70년대부터는 인권 가해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기라 볼 수 있어요. 그때 정도부터는 기업도 인지했으니까요.”
―비교적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미세먼지나 다른 환경소송과 달리 기후소송은 지구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니까 오염의 원인자를 특정하기 힘듭니다. 이를테면, 폭염 등의 피해를 보았다고 했을 때, 온실가스 증가가 누구에 의한 것인지, 언제 배출한 건지 지목할 수 없잖아요.
“최근에는 귀책 연구(attribution science)가 활발합니다. 얼마나 책임 있는지 과학적으로 잡아내는 거예요. 한 페루 농부가 독일의 거대 에너지 기업 아르베에(RWE)에 홍수예방비용을 부담하라는 소송을 낸 게 있어요. 아르베에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토대로 책임 비율을 산정해, 홍수예방 비용의 0.47%인 2만 유로(약 2700만원)를 부담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점, 책임 비율을 명확하게 제시한 점 등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소송이에요. 기후변화 소송은 ‘국제적인 과거사 청산 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죠.”
20주차 태아 포함 62명의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아기 기후소송단’이 지난 6월13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에 명시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40%’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최근 들어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소송의 승소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극소수이고, 성공률이 아주 낮은 편이죠. 그래서 회의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차원도 있습니다. 지난 6월 국내에서도 태아가 기후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며 헌법소원이 제기됐죠. 당장 승소하지 않더라도 대중과 미디어의 프레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미래지향적인 결정도 극히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