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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에너지 효율 낮은 집이라 난방비 9만원을 더 냈다

등록 2022-03-21 13:55수정 2022-04-09 16:09

[기후 청년의 런던 견문기⑥]
런던시가 밝힌 런던 기후 리스크 지도. 붉을수록 위험도가 높은 지역을 표시해두고 있다. 런던시 누리집 갈무리
런던시가 밝힌 런던 기후 리스크 지도. 붉을수록 위험도가 높은 지역을 표시해두고 있다. 런던시 누리집 갈무리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극한 기후와 높아진 에너지 가격에 이제는 집과 환경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얼마 전 집을 단기로 빌렸던 친구들이 새로운 집을 구하면서 나름의 기준으로 부동산 매물들을 함께 선별했다. 정해진 예산을 고려해 지상층에 있으면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집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런던시가 제공하는 기후 위험 지도를 보면 런던 중심가는 홍수와 폭염 위험에 크게 노출된 지역이다. 템즈강 하구의 홍수 위험은 높지 않지만 런던의 오래된 배수 시설은 집중성 호우에 매우 취약한 편이다.

지난해 여름 런던은 전철역과 병원이 물에 잠기는 기록적인 폭우로 특히 저층 주택에 사는 사람들과 상점들이 심각한 재산피해를 입었다. 최근 런던 의회 테스크포스(London council taskforce) 보고서는 홍수는 런던이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위험이라고 발표하면서 이번 여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확률이 높다고 경고했다. 또 같은 시기 런던에서는 처음으로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고 열섬 현상으로 주변 지역보다 10℃까지 더 뜨거워지기도 했다. 도심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공원 면적을 늘리고 녹색 지붕을 설치하고 있지만 낡은 건물이 많은 런던은 냉난방에 취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열재, 이중창문과 환기시설이 없다면 높은 난방비를 감당해야 한다. 수도세, 전기세, 가스비 등 관리비가 포함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건물의 에너지효율등급 평가서(EPC, Energy Performance Certificate)를 꼭 확인해야 한다.

런던 주거 지역의 에너지 효율 등급 지도. 녹색일수록 등급이 높은 지역이다. 런던시 누리집 갈무리
런던 주거 지역의 에너지 효율 등급 지도. 녹색일수록 등급이 높은 지역이다. 런던시 누리집 갈무리

에너지 효율등급 평가서는 집을 매매할 때 필수 공개 서류로 가장 효율적인 에이(A)등급에서 비효율적인 지(G)등급으로 분류된다. 등급에 따라서 세입자가 부담해야 하는 연료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는 에이 등급의 집보다 연료비로 한 달에 약 57파운드(한화 약 9만원)를 더 지출하고 있었다. 등급이 높을수록 난방비를 절약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은 집의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 개선은 세입자뿐만 아니라 런던시의 장기적인 목표이다. 건물부문은 런던시 온실가스 배출의 70%를 차지하는 골칫거리로 도시의 넷제로(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대부분의 건물이 에너지 효율 등급 시(C)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 기준, 기존 주택가구들의 에이·비등급 비율은 전체 주택의 4%대에 불과했다. 런던시 정부는 2019년까지 에너지 효율 사업을 전문적으로 무료로 상담해주는 리뉴(RE:NEW) 사업과 공공건물을 대상으로 하는 리핏(RE:FIT) 사업을 운영하고 이외에도 가스보일러를 히트펌프로 교체하고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 많은 런던에서는 기존 건물에 단열재를 추가하고 시설을 교체하는 데에는 기술적 한계도 있지만, 현행 주거 시스템상 사업에 대한 세입자의 권한은 미미하다. 에너지법의 최소 에너지 효율 기준에 따라서 에너지 효율 등급이 에프(F) 이하인 건물의 소유주는 효율 설비에 최대 3500파운드(한화 564만원)를 투자해야 하지만 우리처럼 시·디 등급의 가구는 해당되지 않는다. 집 계약상 세입자는 마음대로 시설을 교체할 수 없고 집 전등을 엘이디(LED)등으로 바꾸는 것 말고는 보통 세를 들어 사는 집에 자비로 큰돈을 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신축 주택 건물의 84%는 에너지 효율이 에이·비등급으로 에너지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지만 매매 가격이 비싼 편이다.

영국서 집을 찾는 과정에선 경제적인 부분만큼이나 주거공간 가까이 다가온 기후변화의 영향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연료가격의 변동성이 크고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환경에서는 좋은 집의 기준이 변화했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부동산 공약은 어떨까. 시민들에게 대폭 공급하는 주택정책에 지속가능한 주거공간에 대한 고민도 반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소현 런던대 대학원생(환경 전공)·유튜브 <기후싸이렌>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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