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고래 떼. 위키미디어커머스(NOAA 제공, Kristin Laidre 촬영)
북극을 상징하는 ‘바다의 유니콘’ 일각고래한테 새로운 ‘천적’이 생겼다.
덴마크 코펜하겐대와 그린란드천연자원연구소 연구팀은 21일 “일각고래가 20∼30㎞ 떨어진 선박과 물리탐사용 탄성파 발신기(에어건)의 소음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바다얼음이 녹으면서 늘어난 인간 활동이 북극의 소음을 더욱 크게 만들어 일각고래의 미래가 우려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연구팀 논문은 영국 왕립학회가 발간하는 <바이올로지 레터스> 최근호에 실렸다.(DOI :
10.1098/rsbl.2021.0220)
위성 신호기가 부착된 일각고래. 코펜하겐대 제공(Carsten Egevang 촬영)
광활한 북극해는 수천년 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 일각고래와 다른 해양 포유류들은 이곳에서 아무런 방해 없이 지내왔다. 일각고래는 수컷의 나선모양 엄니(상아) 때문에 바다의 유니콘이라 불린다. 최대 3m까지 자라는 엄니는 사슴 뿔이나 공작 꼬리처럼 이차성징이다. 현재 북극권에 7만~8만 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바다얼음이 녹으면서 북극에 인간의 출현이 잦아졌다. 그 결과 지질조사 등을 위한 물리탐사나 해저광물 개발을 위한 발파, 항구 개발과 유람선 등 인간활동에서 소음 발생이 많아지고 있다.
탄성파 발생기를 달고 운항하는 선박. 코펜하겐대 제공(Eva Garde 촬영)
꽤 먼 거리에서 발생한 소음이 직접 위해를 가할 정도로 큰 것은 아니지만 비록 몇 ㎞ 떨어진 곳에서의 소음도 일각고래한테는 활동에 방해가 되고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연구팀은 일각고래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이런 사실들을 밝혀냈다.
일각고래들은 얼음으로 덮여 접근하기 쉽지 않은 북극권에 서식하기 때문에 연구하기가 쉽지 않다. 연구팀은 일각고래 무리에 관찰 태그를 달고, 피오르(협곡)에 배를 띄워 선박 엔진 소리와 석유탐사용 탄성파에 노출되도록 했다.
북극해를 헤엄치는 일각고래들. 코펜하겐대 제공(Carsten Egevang 촬영)
논문 저자인 그린란드천연자원연구소 생물학자 오티 테르보는 “일각고래들의 반응을 보면 두려움에 싸이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래들은 먹이를 찾을 때 필요한 소리를 내지도 않고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하지도 않은 채 해안 쪽으로 헤엄쳐 올라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행동은 포식고래한테 위협을 받았을 때 나타난다. 소음이 계속되면 일각고래들이 먹이 활동을 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 고래들이 배에서 도망칠 때 평상시와 달리 꼬리를 많이 흔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고래들이 비축해놓은 에너지가 고갈될 위험에 놓인다는 것을 뜻한다. 고래들은 수백미터 아래로 잠수했다 먹이를 찾거나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쪽으로 솟구쳐 올라와야 해 항상적으로 에너지를 보존해야 한다.
일각고래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둠 속에서 지낸다. 북극이 일년 중 반은 어둡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일각고래가 빛이 없는 수심 1800m 깊이에서 사냥을 하기 때문이다. 일각고래들이 평생 소리에 의존해 생활하는 이유다. 이들 고래는 박쥐처럼 초음파를 사용한다. 특히
사냥을 할 때는 ‘따따따’ 하고 클릭음을 낸다.
수잔느 디틀레브센 코펜하겐대 수학과 교수는 “일각고래들은 20~30㎞ 멀리 떨어진 소음에도 반응해 클릭음 내기를 멈춘다. 어떤 경우에는 소음원이 40㎞ 떨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소음이 고래들한테 영향을 미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디틀레브센 교수팀은 수중 마이크, 위성항법장치(GPS), 가속도계, 심박동측정기 등 여러 관측 도구들을 이용해 수집한 막대한 양의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바다에서 선박 소음이 배경음보다 작아 우리 장비들로는 측정할 수 없을 때도 고래들은 그 소리를 감지하고 다른 소리와 구별할 수 있었다. 이런 소음이 어느 정도 고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오티 테르보는 “항구가 건설되고 선박이 정기 운항해 장기간 소음에 노출되면 고래들이 먹이활동에 오랜 기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럴 경우 고래들이 생리적 변화를 겪고 건강에 악영향을 받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