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최근 원자력 발전을 녹색금융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확인됐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해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원자력계의 주장을 배척한 결정이어서 곧 확정될 유럽연합(EU)과 한국의 녹색산업 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도 영향을 끼칠 지 주목된다.
영국 재무부는 지난달 30일 확정한 그린 파이낸싱 프레임워크(녹색 금융 체계)에서 “많은 지속가능 투자자들이 원자력에 대한 배제 기준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영국 정부는 그에 따라 원자력 관련 지출에 자금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재무부는 “원자력은 태양열 및 풍력 발전, 탄소 포집 및 저장과 함께 영국 저탄소 에너지 믹스의 핵심 부분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도 녹색 금융 지원 배제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영국의 입장은 원전 산업계에 정부 지원 없이 스스로 생존하라는 것으로 대형 원전 건설이 여의치 않자 소형모듈원자로(SMR)로 새로운 르네상스를 꿈꾸던 원전업계에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영국 정부는 원전사업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립서비스는 하면서도 원전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정책은 전혀 추진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영국 정부 결정으로 대형 원전이든 소형모듈원자로든 정부의 자금지원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영국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대부분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녹색 투자자들이 원전을 이미 적절한 투자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는 상황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원자력 이외에 이외에 화석 연료와 에탄올 연료 차량, 화석연료 이용과 개발, 25㎿ 이상의 대규모 수력 발전 등도 녹색금융 지원 제외 대상으로 명시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수력 발전도 대규모일 경우 제외한 것은 생물 서식지에 대한 잠재적 위험을 고려한 결정이다.
유럽연합은 지난 3월 원자력을 친환경 에너지에서 제외한 택소노미 초안을 공개했으나, 산하 공동조사센터(JRC)가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본 분석 보고서를 제출해 검토를 진행 중이다. 원전 발전 비중이 높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동유럽 국가들은 원전을 친환경에너지로 분류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최근 독일·덴마크·스페인 등 5개국이 공동으로 원자력을 택소노미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한 위원은 “원전의 시조격인 웨스팅하우스와 아레바가 사실상 부도가 나서 사모펀드에 인수되거나 국유화된 것은 원전이 이제 금융의 논리로 움직일 수 있는 상업성을 완전히 상실한 에너지원이 됐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며 “독일까지 나선 이상 유럽연합도 영국의 선례를 따라갈 것으로 보여,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시키려던 원전업계의 꿈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케이-택소노미)를 작성 중인 환경부는 원자력 발전을 녹색산업에서 제외한 초안을 내놓고 각계 의견을 수렴 중이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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