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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칼럼] 본질 비켜난 인권위 독립 논쟁

등록 2018-05-18 14:23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2002년 11월 20일 한겨레신문 14면 ‘김훈의 거리의 칼럼’

김훈 기자

김훈 기자
김훈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김창국 위원장 등 직원 4명은 대통령의 사전허가 없이 국외출장을 다녀온 다음 날, 청와대로부터 ‘공개경고’를 받았다.

인권위는 즉각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청와대 경고에 반발했다. 국가기관의 수장이 대통령 경고의 부당성을 공개적으로 성토하는 자리는 놀라웠다. 위원회 분노의 핵심은 “독립성을 침해받았다”는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독립성’이야말로 인권위의 독립 근거이며 작동 원리다. 위원회 설립준비 과정에서부터 ‘독립성’은 가장 고통스러운 논란 대상이었다. 경고 부당성을 설명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위원회의 ‘독립성’은 다른 어느 국가기관보다 찬란해 보였다.

그러나 ‘독립성’이라는 이 존엄하고도 신성한 명제가 국가 공권력의 인권침탈 행위를 밝혀내면서 권리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위원장 일행의 국외출장 사전허가 여부를 둘러싸고 돌출되는 사태는 보기에 민망했다.

인권위는 지금까지 적극적인 ‘옹호자’ 역할을 자임한 것이 아니라, 제3자적인 ‘심판자’ 역할에 자족해왔다. 위원회의 ‘독립성’은 기존 법제와 관행과 판례들, 그리고 공권력의 습관적 남용에 맞서는 시련의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허가 없이 국외출장을 갈 수 있는 ‘독립성’은 본질에서 멀리 비켜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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