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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15일 한겨레신문 18면 ‘김훈의 거리의 칼럼’
김훈 기자
12일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집무실과 접견실을 점거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농성이 장기화될 기색이다. 위원회는 “나가라”고 말할 처지도 아니고, 경찰을 부를 수도 없다. 오히려 위원회 직원이 24시간 당번근무를 하며 농성자들의 편의를 돌보고 있다.
장애인들의 분노는 지난 5월 19일 서울지하철 5호선 발산역 리프트에서 전동 스쿠터에 의지한 윤재봉(63)씨가 추락해 숨진 사고로 폭발되었다. 지하철역 리프트 사고는 거듭되어 왔다. 혜화역(1999년 6월), 천호역(1999년 10월), 오이도역(2001년 1월), 고속터미널역(2001년 9월)에서 계속 사고가 났다. 장애인들은 “지금의 리프트는 국가가 장애인의 인권에 관심이 있다는 상징으로 설치된 것”이라고 말했다. 리프트는 서울시청 소관업무지만, 시장실을 쳐들어가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서 인권의 상징인 인권위로 왔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권위의 기능은 억압과 차별의 구조와 법제를 개선하는 데는 별 소득이 없었고, 개별적 사안을 상징적으로 처리해왔다. 이번 장애인들의 농성은 그 상징성에 대한 분노인 것으로 보인다. 인권은 국가이미지를 미화하는 상징이 아니라, 생활이며 실천이어야 할 것이다. 발산역 사고 이후, 서울지하철 리프트의 안전은 보강되지 않고 있다.
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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