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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30일 한겨레신문 14면 ‘김훈의 거리의 칼럼’
김훈 기자
월드컵이 끝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월드컵 기간 중에 움츠러들었던 집회와 시위들이 다시 폭염의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영광을 절규하며 전국을 뒤흔들던 그 응원구호의 리듬이 이제 시위장마다 번져가고 있다. 외국인노동자 25만 명은 내년 3월 31일로 강제추방을 앞두고 있다. 지난 28일 종묘광장에 모인 외국인노동자들은 ‘대~한민국’의 리듬에 맞춰 ‘추~방철폐’를 외쳤다. 미얀마 노동자들의 민속풍물패가 ‘쾅쾅~쾅 쾅쾅’ 리듬을 맞추며 선도해 나갔다. 저마다 제나라의 민속타악기를 두드리며 ‘대~한민국’의 리듬에 맞춰서 ‘추~방철폐’를 외쳤다. 여러 나라의 악기들이 그 뒤를 합주로 따라갔다. 스리랑카,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티베트, 중국 노동자들이 그 리듬에 맞춰 함성을 질렀다.
이보다 며칠 전 서울 사직공원에 모였던 마늘재배 농민들도 ‘대~한민국’의 리듬에 맞춰 ‘개~방철폐’를 외쳤다. 박수로 ‘짝짝~짝 짝짝’ 리듬도 잡아나갔다. 그 리듬은 한 달 전의 함성과 똑같은 리듬이었지만, 그 리듬이 겨누는 방향은 정반대였다. 같은 리듬이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허술함을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리듬은 이 시대를 향한 통렬한 야유로서 더욱 번져나갈 기세다. 월드컵이 저 혼자서 우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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