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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1일 한겨레신문 14면 ‘김훈의 거리의 칼럼’
김훈 기자
공을 몰고 달리는 공격수가 상대편의 골문에 육박할 때 경기장은 용광로처럼 달아오른다. 그 아우성 속에서 심판이 오프사이드를 선언하면 순간 게임은 중단되고 함성은 적막으로 가라앉는다.
30일 월드컵 전야제에서 낭송한 귄터 그라스의 축시는 놀랍게도 단지 4줄이다.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앞에 서 있었고/그러나 심판은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로 끝나는 그의 시는 아우성을 단칼로 끊어내는 오프사이드의 적막을 확산시킨다. 그 적막은 싸움의 의미를 돌이켜보게 하는 사유의 자리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적막의 힘에 의해 경기장의 열기는 더욱 달아오른다.
오프사이드는 상대편 최종 수비수가 1명도 없을 때, 공격수가 공을 앞으로 내지르는 발길질을 반칙으로 규정한다. 축구는 공을 차넣는 것으로 승부를 가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오프사이드는 축구의 원칙과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오프사이드는 무인지경을 공격하는 행위를 벌한다. 치사한 승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관중들은 열광의 순간에 오프사이드를 선언하는 심판을 저주한다. 그러나 폭발하던 열기가 일시에 빠져나가는 오프사이드의 적막은 축구의 아름다움이다. 그 적막은 더 크고 더 힘든 싸움을 예비하고 있다. 이 세계의 수많은 공격수들이 또다시 오프사이드 앞에서 무너지게 될 것이다.
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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