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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4일 한겨레신문 14면 ‘김훈의 거리의 칼럼’
김훈 기자
서울 서대문구 신촌 로터리에 대형 백화점들이 들어서자 신촌 재래시장은 문을 닫았다.
대자본이 푸성귀와 생선까지 훑어가니 재래시장은 당할 길이 없었다. 신촌시장뿐 아니라 대형 백화점이 들어선 모든 지역의 재래시장은 몰락 위기에 처해 있다. 중소기업청에 물어보니, 지금 전국 재래시장 점포의 30% 정도가 비어 있다고 한다.
신촌시장 상인들은 흩어졌고, 시장에서 좌판 장사를 하던 영세상인들 중 일부는 이 로터리의 노점상이 되었다.
이대 앞, 연대 앞, 신촌기차역 주변으로 저녁 무렵이면 200여 곳의 노점들이 늘어선다. 대형 백화점들이 들어서자 이 거리의 유동인구는 크게 늘어났고, 노점상들은 이 유동인구를 따라 이 거리로 모여들었다. 재래시장의 몰락이 시장원리라면, 이 거리의 노점상이 밀집하는 현상도 시장원리일 것이다. 이 거리의 노른자위 부분은 월드컵을 앞두고 '노점 금지구역'으로 지정됐고, 구청은 노점상들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몰아가고 있다.
노점상 단속은 거리 질서의 문제라기보다는 강자와 약자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정치문제라야 마땅할 것이다.
대형 백화점들도 거리 쪽으로 좌판을 내밀고 노점상들과 경쟁하고 있다. 그래서 밤의 신촌 로터리는 정글처럼 보인다.
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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