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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신 못 쓰는 영석씨는 로봇과 ‘같이’ 걷는다, 재미있게

등록 2023-05-20 12:00수정 2023-05-20 23:17

[한겨레S] 신희선의 로봇 비평
외골격 로봇과 자율성
근로복지공단 재활공학연구소에서 케이로봇을 착용하고 보행 훈련을 하는 조영석씨. 신희선 제공
근로복지공단 재활공학연구소에서 케이로봇을 착용하고 보행 훈련을 하는 조영석씨. 신희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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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와 가슴을 곧게 펴고 시선은 앞을 향한다. 몸에 힘을 빼고 두 팔은 가볍게 떨어뜨린다. 오른쪽 발바닥에 힘을 준 상태에서 왼쪽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바닥에서 발을 뗀다. 골반을 살짝 틀면서 왼발을 앞으로 내디딘다. 발꿈치, 발바닥, 발가락 순으로 착지. 동시에 오른쪽 다리를 앞으로 뻗는다. 왼발에 힘을 준 상태로 오른발 착지. 다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평소 의식하지 않지만 우리는 걷기 위해 몸의 다양한 부위를 연쇄적으로 사용한다. 관절과 근육 중 어느 한 부위라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매끄럽게 걷기 어렵다. 걷는 것은 신체 여러 부위의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 전신을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행위다. 유아기부터 수억회의 반복 학습과 경험을 통해 우리는 걷는 방법을 체화한다. 별다른 지름길은 없다.

인천 부평구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재활공학연구소에는 걷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익히러 오는 장애인들로 매일 북적인다. 조영석씨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22년 전 일터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척수가 손상돼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됐다. 연구소 의료융합연구팀에서 개발한 착용형 외골격 로봇인 케이로봇(KOREC-ROBOT)으로 보행 훈련을 하기 위해 그는 집에서부터 왕복 2시간이 걸리는 이곳에 일주일에 세번 방문한다.

보행 보조 ‘케이로봇’…속도·보폭 감지해 사람 의도 파악

케이로봇과 같은 외골격 로봇은 보행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장애인이 걸을 수 있도록 보조하는 로봇이다. 다른 로봇과 달리 사람이 직접 착용하기에 ‘웨어러블 로봇’이라고도 한다. 최근에는 재활치료 현장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일정한 보폭과 속도의 ‘정확한 걸음’과 ‘올바른 자세’로 보행 훈련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존의 물리치료와 구별되는 큰 이점이다. 휠체어 생활을 하는 장애인이 주변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두 발로 서서 걷는 극적인 모습은 저하되거나 없어진 감각이 되살아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자아내기도 한다. 스스로 걸을 수 없는 다리와 스스로 걸을 수 있는 로봇의 구도는 첨단의 기술로 점철된 외골격 로봇에 기대를 갖게 한다.

재활공학연구소에서의 보행 훈련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넓은 평상에 로봇을 앉혀 놓으면 조씨가 휠체어에서 내려 로봇 위에 앉는다. 케이로봇은 골반부터 발까지 이어지는 기본 뼈대, 각종 센서와 제어기, 구동기로 이뤄져 있는데, 착용자는 스트랩을 허리·종아리·발에 감싸서 로봇을 몸에 고정할 수 있다. 로봇 착용을 마친 그가 임상전문가인 최혁재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몸을 일으킨 뒤 기다란 평행봉의 지지대를 잡는다. 최 연구원이 태블릿을 켜고 보행 훈련 프로그램을 실행하자 로봇이 ‘치이잉’ 하고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혼자서 평행봉 사이를 여러번 왕복한 뒤 훈련을 마친다.

그동안 다양한 재활치료를 경험했지만, 조씨는 요즘 하고 있는 로봇 보행 훈련이 단연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다. 훈련이 재미있다는 게 무슨 말일까? 케이로봇은 다른 재활 도구와 무엇이 다른 걸까? 로봇에 달린 구동기는 착용자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앞으로 이동시키는데, 이때 착용자의 발이 지면에 닿으면서 생성되는 다양한 정보가 로봇의 센서를 통해 수집된다. 신발 안창에 부착된 족저압 센서는 지면 반발력을 측정해 착용자의 보행 진행 단계를 파악한다. 외골격에 부착된 가속도 센서는 동작 정보를 획득해 착용자가 얼마나 빠르게 걷고자 하는지, 어느 만큼의 보폭으로 걸으려고 하는지 등을 감지한다. 로봇은 이 정보를 종합해 착용자의 의도를 감지하고, 곧바로 다음 걸음을 수행하는 데 활용한다. 그러니 케이로봇은 독립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작동하는 완전자율 로봇이 아니라, 착용자의 개입에 따라 움직임이 결정되는 ‘반자율’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조씨가 케이로봇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케이로봇 모습. 착용자의 허리·종아리·발을 감싸 함께 움직인다. 신희선 제공
케이로봇 모습. 착용자의 허리·종아리·발을 감싸 함께 움직인다. 신희선 제공

‘완전자율 로봇’의 함정

물론 재미가 로봇 보행 훈련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반자율’ 로봇을 통한 재활은 착용자의 신체가 로봇에 개입할 수 있는 상태여야 가능하다. 착용하는 사람의 성향도 중요하다. 평소 휠체어에 익숙해진 장애인은 로봇을 착용하고 걷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로봇을 이용한 보행 훈련을 거부한다. 로봇에 의지한 채 걸어야 한다면 어차피 독립보행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며 처음부터 단념하기도 한다. 물리치료사가 직접 다리를 잡고 하체의 관절을 풀어주는 고전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로봇을 입고 뚜벅뚜벅 걷는다’는 첨단 기술이 약속하는 미래보다, 나의 몸을 교정하고 치료하는 것보다, 여기 현재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더 중요하다. 정답은 없다. 한가지 확실한 건, 현실의 장애인들에게 최첨단 기술이 항상 최선의 기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걸을 때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몸을 쓰는 행위와 걷는 경험이다. 케이로봇은 미리 설정된 동작을 구현해 착용자의 다리를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고, 착용자에게 로봇의 다음 작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율을 허용한다. 걸음을 만드는 주도권은 온전히 로봇에 있지도, 착용자에게 있지도 않다. 로봇과 인간은 결합하여 ‘한몸’처럼 움직이지만, 동시에 각각 반절의 자율을 나눠 갖고 서로가 움직이는 방식에 관여하는 상호적 관계에 놓여 있다. 조씨의 말을 빌리면 이런 경험과 감각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만약 조씨가 로봇이 생성하는 걸음에 자신의 몸을 무조건 맞춰야 한다면 그에게 로봇 재활은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을까? 외골격 로봇이 완전 자율을 약속할 때, 인간은 로봇을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과학기술학 연구자

국내 1호 로봇비평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로봇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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