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연구원이 북태평양 아열대 환류 지역에서 수집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조사하고 있다. 스미소니언환경연구센터 제공
국제 해양환경단체 오션 컨서번시(Ocean Conservancy)에 따르면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바다에는 1억5천만톤 이상의 플라스틱이 떠다닌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날 때마다 800만톤이 추가된다. 이는 1분마다 쓰레기 수거차 한 대 분량의 플라스틱을 바다에 버리는 것과 같다.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 쓰레기 가운데 일부는 대양을 순환하는 해류를 따라 이동하면서 쓰레기섬(Garbage Patch)을 형성한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북태평양 아열대 환류가 만든 쓰레기섬 ‘거대 태평양 쓰레기 지대’(Great Pacific Garbage Patch)이다.
하와이에서 북동쪽으로 1600㎞ 떨어져 있는 이 쓰레기섬의 크기는 무려 160만㎢에 이른다. 한국 국토 면적의 16배다. 과학자들은 7만9천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이곳에 몰려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북태평양 환류가 만들어낸 3개의 쓰레기섬. 스미소니언 연구진이 분석한 것은 규모가 가장 큰 아열대 환류지역(가운데)의 쓰레기섬이다. 미 해양대기청(NOAA) 제공
동일본 쓰나미 잔해물에서 300여종 생물 발견
그런데 점점 커지고 있는 이 쓰레기섬이 해양생물의 새로운 서식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스미소니언환경연구센터(SERC) 연구진은 일부 플라스틱을 분석한 결과 40종 이상의 연근해·원양 생물이 뒤섞여 새로운 해양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조사한 플라스틱 조각의 절반 이상에 연근해 종들이 살고 있는 걸 발견했다. 대부분 동아시아 연근해에서 번성하는 종이었다.
논문 제1저자인 린제이 하람 연구원은 “부유하는 플라스틱이 연근해 생물종의 지리적 경계를 우리가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곳까지 크게 확장하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이 뗏목 역할을 한 셈이다. 연구진은 이를 ‘신원양 공동체’(neopelagic community)라고 명명했다. 달리 말하면, 쓰레기섬을 터전으로 삼아 부유하는 일종의 ‘뗏목생태계’라 할 수 있다.
연구진이 먼 바다의 쓰레기섬에 연근해 생물의 새로운 생태계가 생겼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몇년 후, 쓰나미 잔해물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6000km 이상 떨어진 미국 서해 연안에서 약 300종의 연근해 생물을 발견하고나서였다.
쓰레기섬에 서식하는 신원양 공동체의 사례. a·b·c는 원양 생물종, d·e·f는 연안 생물종.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연구진은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 단체인 오션 보이지 연구소(Ocean Voyages Institute)와 함께 지난해 북태평양 아열대 환류에서 부표, 낚시도구, 칫솔 등 103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집했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일부 시료를 뽑아 분석한 결과 말미잘, 불가사리, 홍합, 따개비, 새우 등의 연근해 무척추 동물과 해초류가 플라스틱 쓰레기에 붙어 살며 번식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지어 플라스틱 안에 갇힌 연근해 물고기도 있었다.
이와 함께 거위목따개비, 이끼동물 등 쓰레기섬 환경에 적응한 원양 생물도 발견됐다. 흥미로운 건 이곳에 둥지를 튼 토착 원양 생물의 종류는 연근해 생물종보다 다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미소니언해양연구센터 수석과학자 그레그 루이즈는 “지금까지 먼 바다의 환경과 영양은 연안 생물이 살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며 “새로운 발견은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플라스틱이 이들의 서식지 역할을 하고 있었고,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생존에 필요한 먹이도 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플라스틱 부유물에 함께 서식하는 연안 생물종 히드라와 원양 생물종 삿갓조개, 게. 스미소니언 환경연구센터 제공
이번 발견은 과학자들에게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겨 줬다. ‘쓰레기를 타고 먼 바다로 흘러들어온 연안 생물은 해양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여기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쓰레기에 묻어 이곳까지 흘러온 연근해 생물은 오랜 기간 독립적으로 유지돼 온 이 원양 생태계에 교란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식 장소와 먹이를 놓고 연근해 생물과 원양 생물 사이에 생존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침입종 문제다. 먼 바다에 형성된 연안 생물종 서식지가 해류를 따라 부유하며 어느 순간 다른 해안지대의 생태계를 덮칠 수 있다.
현재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양을 보면 앞으로 연근해 생물종의 원양 서식지는 계속해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연구진은 2050년까지 플라스틱 쓰레기 총량이 250억톤을 웃돌 것이라는 전망치를 참고 데이터로 제시했다. 기후변화에 따라 폭풍 등 기상재해가 잦아지면 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육지에서 바다로 쏟아져 들어올 수 있다.
쓰레기섬이 만드는 새로운 해양 생태계가 지속가능할지, 또는 북태평양 아열대 환류 너머까지 확장해갈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일으킬 수 있는 이 생태계 교란 문제가 오랫동안 간과돼 왔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방대한 플라스틱 해양 쓰레기가 머지 않아 바다와 육지의 기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워싱턴주정부의 해양생태학자 헨리 카슨은 ‘포브스’에 “먼 바다 한가운데의 플라스틱 뗏목에서 뒤섞여 번성하는 여러 생물은 그 자체로 공동체”라며 “새로운 서식지에 공존하는 원양종과 연안종 사이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정말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