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현지시각) 그리스 아테네 인근 빌리아 마을에서 소방헬기가 산불을 끄기 위해 물을 투하하고 있다. 그리스 사진작가 Alkis Konstantinidis 인스타그램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겪은 그리스 과학자들이 폭염에 태풍처럼 이름을 붙이고 등급을 매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스는 올해 6월 이후 두 차례의 이례적으로 길고 강한 폭염을 겪었다. 특히 두 번째 폭염은 거의 3주일 동안 지속됐다. 지난주에는 기온 상승으로 아테네시 근교에서 산불이 발생해 수도 북서부 지역을 강타했다.
코스타스 라구바르도스 국립아테네천문대 연구실장은 “극한 폭염을 과소평가했다. 20∼30년 뒤 일상이 될 폭염을 잠깐 맛본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기상에 이름을 붙였을 때 정부 당국과 시민들 모두 닥쳐올 위험기상에 대한 준비를 더 잘할 것이라고 믿는다. 폭염은 소리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침묵의 살인자’이다”라고 <업저버>에 말했다.
그리스만 최근 몇 달 사이 극심한 폭염과 산불에 시달린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시라쿠사에서는 지난 11일 유럽 지역에서 가장 높은 48.8도가 기록됐다. 하지만 아테네는 여러 연구에서 기후위기 핵심 지역 가운데 가장 무더운 유럽 대도시로, 지구온난화 피해를 가장 크게 받을 곳으로 꼽혔다. 지난 3일에는 북부 그리스에서 관측 사상 최고인 47.1도가 관측됐다.
초대형 산불들은 최근 몇 주 동안 광범위한 지역을 불태워 가옥들이 전소되고 수많은 이재민을 낳았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소홀한 산불 대응에 사과하면서 “전례없는 날씨가 온 나라를 화약통으로 만들어 일주일 만에 600여곳에서 불이 났다”고 말했다.
지난주 그리스 아테네 인근 마르카티 마을에서 소방관이 산불을 끄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4년 전 그리스 기상학자들은 겨울 폭풍과 인명·재산 피해를 낳는 다른 위험기상 현상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라구바르도스는 “폭염 등급화가 더 까다롭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폭염을 등급화하려면 온도 분포뿐만 아니라 인구 밀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염은 폭풍보다 강도나 지속시간을 예측하기가 더 쉽다는 측면도 있다. 그리스 과학자들은 40도가 넘는 기온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면 이름을 붙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름은 그리스 신화와 역사에 등장하는 남녀 인물을 번갈아가며 붙이는 폭풍 명명식을 폭염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