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당 대표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대표 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후 국회 소통관 브리핑룸 단상에 선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조금 떨렸다. 마스크를 썼지만 긴장된 표정을 다 감추지는 못했다.
“송영길 당 대표는 어제 명단을 받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민주당이 변화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동료의원들의 억울한 항변이 눈에 선하지만, 선당후사의 입장에서 수용해줄 것을 당 지도부는 요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당이 왜 의원 모두의 동의를 받아 전수조사에 임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12명 의원 명단을 말하지 않고 단상에서 내려갔다. 동료 의원들의 이름을 차마 입에 올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치인에게 정당은 단순한 소속 집단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정당은 가치와 노선을 공유하는 결사체다. 이유가 무엇이든 탈당은 치욕일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탈당하는 경우에도 정치인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런 이유다.
정치를 오래 한 송영길 대표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지난 2일 대국민 보고회에서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의 무혐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탈당조치 등 엄격한 집행을 하겠다”고 미리 쐐기를 박았다. 왜 그랬을까?
송영길 대표는 취임 뒤 한 달 동안 민심을 청취했다. 결론은 민주당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 위중하다는 것이었다. ‘내로남불과 언행 불일치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누가 대선 후보가 돼도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부동산 정책의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도 투기 의혹에 대한 단호한 조처를 불가피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투기 의혹에 대한 조처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면 송영길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리더십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만으로 12명 전원에게 당을 나가라는 조처가 무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8일 비공개 긴급 최고위원회에서도 일부 그런 반론이 나왔다. 그러나 최고위원 다수는 “12명 전원 예외 없이 탈당 권유하는 것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다”고 의견을 모았다. 부동산 때문에 싸늘하게 돌아선 민심을 조금이라도 되돌리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송영길 대표는 최고위원회 직후인 이날 오후 <와이티엔>(YTN)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원칙적으로 대상자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도 없이 여러 가지로 부실하고 경미한 사항이 많고 중복된 사항도 많은데, 이걸 가지도 탈당 권유가 맞냐는 논란이 많았다. 저희로선 국민 앞에 그 절차조차도 소명 절차도 집권당의 외피를 벗고 똑같은 차원에서 조사받고 해명을 깨끗이 받고 오길 바라는 차원에서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
그는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당 대표는 그야말로 ’극한직업’이다. 특히 여당 대표는 대통령과 대선 주자들 양쪽 모두의 눈치를 살피며 온갖 궂은일을 처리해야 한다. 영광은 대선 후보의 몫이고, 욕은 당 대표의 몫이다. 그렇게 해도 정권 재창출은 가시밭길이다. 송 대표에게 고난의 행군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성한용 선임기자,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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