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국회 당대표실에서 <연합뉴스>와 2021년 신축년 새해를 맞아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해 첫날 던진 ‘이명박·박근혜 사면 건의’는 묘수일까 패착일까. 정치권에선 지지율 정체에 빠진 이 대표가 ‘통합’이란 화두를 선점하고 정치적 차별화를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의 제안에 여당에서조차 ‘국민의 법감정에 비춰 공감대가 무르익지 않았고, 원칙을 거스른 정치적 계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대표의 1일 ‘사면 건의’ 발언은 여러 상황을 고려한 준비된 행보로 보인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30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찾아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을 제안했고, 신년사에서는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이런 통합론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강력한 수단으로 사면론을 꺼내 든 셈이다.
오는 14일 예정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면 사면론이 거론될 수밖에 없으니, 미리 의제를 선점하겠다는 뜻도 깔린 듯하다. 이 대표는 주변 인사들에게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지 않고 4월 선거를 치르기 쉽지 않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보수층의 가슴에 맺혀 있는 ‘한’을 풀어줘야 상대 진영의 결집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4월 재보궐선거가 다가올수록 사면 논의가 정치적 의도 공방으로 번지기 쉬워 미리 김을 빼는 효과도 노렸을 수 있다.
이 대표가 강조하는 ‘통합형 리더’는 ‘돌파형 리더’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대조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해 기본소득 이슈 등 정책적 의제로 이재명 지사가 지지율 상승세를 타는 사이, 이 대표는 ‘슈퍼 여당’을 이끄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최근 이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세이다 보니, 이재명 지사와 차별화된 통합 이미지로 승부를 보려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문제는 야당이 아닌 민주당 내부와 지지층의 분위기가 냉랭하다는 점이다. 당내 공감대나 국민적 합의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도 없이 ‘왜 뜬금없이 지금이냐’는 당혹스러움이 묻어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국민이 탄핵해서 형이 확정됐는데, 대통령이 국민 의사도 묻지 않고 사면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도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갈지에 집중해야 할 새해 첫날에 첫 메시지로 ‘전직 대통령 사면’을 얘기하는 건 옛날 정치 스타일로 비친다”고 꼬집었다.
정치적 올바름과 별도로, 이 대표 본인에게 유리할지도 불투명하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사면에 필요한 전제 조건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의 정치적 운명을 위해 사면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비친다. 감동을 주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가 청와대와 교감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당장 여권 지지자들을 포함한 국민 여론을 바꿔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이 대표가 지지자들이 싫어할 이슈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자기 색깔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인데, 당내 반발과 지지층 반발을 어떻게 뚫고 나갈지가 앞으로 관전 포인트”라고 짚었다.
김원철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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