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우리의 삶과 사회에 거대한 충격을 가져왔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위기 가운데에서도 우리 사회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글로벌리서치와 함께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6월 6일부터 엿새에 걸쳐 진행한 온라인 의식조사 결과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66.2%는 우리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27.3%에 그쳤다. 2014년 12월 한겨레신문 신년조사의 똑같은 질문 결과와 비교하면 변화가 두드러진다. 당시 결과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35.8%,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60.5%였다. 정치적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변화의 진폭이 매우 크다.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케이(K)방역에 대한 찬사 속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게 투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재난은 각자도생의 욕망과 공동체적 연대의식이 동시에 표출되는 공간이자, 불안과 희망, 연대와 갈등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격돌하는 공간이다. 우리사회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기대감의 이면에 놓인 불안, 비관 등 구체적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일 때 코로나 이후 우리사회도 좀 더 나은 변화의 길로 갈 수 있다.
희망과 불안의 교차
‘포스트 코로나시대 인식’ 조사에서는 우리사회 만연한 불안이 다층적으로 드러났다. 감염의 위기에 대한 불안, 경제적 위험에 대한 불안은 도처에 가득했다. 85.1%가 코로나19에 내가 감염되는 것이 걱정된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나 또는 내 가족이 해고·휴직·실업 등 고용의 위험에 처하는 것에 대해서는 83%가 걱정된다고 응답했으며 매우 걱정된다는 응답도 2명 중 1명 꼴인 48.4%에 이르렀다. 고용불안의 직격탄은 20대와 30대의 청년층에서 특히 높았고 임시직근로자, 개인소득이 낮을수록, 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연대의 징후들도 나타났다. ‘코로나19에 내가 감염되는 것이 걱정된다’(85.1%) 보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감염되는 것이 더 걱정’(87.3%)이라는 응답이 우세했다. ‘매우 걱정된다’는 응답만 따로 비교하면 각각 36.2%, 48.3%로 차이가 더 커졌다.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적, 공동체적 인식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감염되는 것에 대한 걱정은 20~40대 여성에서 특히 높았다.
불평등한 각자도생 사회로 갈 것인가? 사회안전망이 튼튼한 평등 사회로 갈 것인가?
우리사회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과 기대가 교차했다. 불평등은 더 커지고(65.5%),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집중되어 취약계층에게 더 고통스런 시간이 올 것이며(64.3%) 우리사회가 고용위기와 불평등 심화 등으로 더 힘들어질 것(65.5%)이라는 불안감이 상당했다. 이 불안감을 뚫고 ‘이번 기회에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통해 더 나은 사회로 갈 것’(68.2%)이라는 변화에 대한 희망도 드러났다.
불안을 이기는 희망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신뢰감’의 상승이 열쇗말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와 대한민국 정부를 이전 보다 더 신뢰하게 되었다는 응답은 각각 81.3%, 60.5%에 이르렀다. 그 결과 ‘대한민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능력은 신뢰할만하다’에 응답자의 72.5%가 동의했다. 코로나19 이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더 높아진 것 같다는 데에는 무려 74.6%가 동의했다.
지난 30일 세계 30개 도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발표한 중민재단 한상진 이사장(전 서울대 교수)도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감염병 정보에 있어 이번에 극적인 반전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2015년 메르스 때와 비교하면 2020년에는 시민들이 정부에 압도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여러 경로로 확인된다. 하지만 신뢰가 사회전반의 질적 도약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공적 제도를 넘어 사회 일반으로 향해야 한다. 국가나 제도, 시민사회 등과 같은 추상적 신뢰를 넘어 일상에서 언제든지 부딪힐 수 있는 낯선 사람들에 대한 신뢰, 즉 일상적이면서 구체적인 신뢰가 중요하다.
이번 조사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우리 국민은 확산 방지를 위해 개별적으로 위생관리를 잘 하고 있으며”(75.8%),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은 성숙해 있다”(67.0%)는 데에서 확인되듯이 시민 일반에 대한 신뢰감도 높다. 코로나19로 타인의 안전이 나의 안전인 초연결 생존사회라는 인식이 시민들의 생활 속에 녹아드는듯 하다.
하지만 신뢰가 여전히 추상적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공적제도는 물론 사회 일반에 대한 신뢰, 기대감도 진보와 보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 여부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난다는 점도 분명하다. ‘정파적으로 형성된 신뢰’라는 한계가 뚜렷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방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후 한국인들이 좀 더 권위주의적으로 이동하는 징후가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상진 이사장은 “시민참여형 공동체에 매개되지 않고 개인과 국가가 직접적으로 만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자칫 국가주의로 흐를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노동규범·생활양식의 변화도 나타나지만 성장·경제 성과 중시 경향도 높아져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의 대다수는 ‘일상생활이 변할 것’(91.1%)이며, ‘세계질서도 변할 것’(91.9%)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과 같은 팬데믹은 종식되지 않고 앞으로 주기적으로 올 것이다”는 의견에도 81.5%가 동의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코로나19로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어떻게 감염병과 공존을 모색하며 살아갈 것인가가 이미 보통 시민들의 삶에서 중요한 화두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치와 생활양식이 변하는 조짐도 나타났다. 기후위기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이전 보다 증가했다’는 응답이 67.4%였고 ‘이전과 별 차이없다’ 30%, ‘이전보다 작아졌다’ 2.6%였다. 하지만 집단별로 차이가 상당해 30~50대 여성, 진보층에서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
노동규범이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도 상당했다. ‘단순한 감기 등 아플 경우, 회사나 학교에 나가지 않고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설문에서는 동의한다는 응답이 73.2%에 이르렀다. 상병수당(사회보험 등을 통해 업무 외 질병과 부상으로 아픈 노동자에게 주는 현금성 급여)의 도입 등 제도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기존의 삶, 생활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사회, 노동 규범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구체화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집단별 격차도 확연하다. 한편에서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과 삶의 양식의 변화 가능성 등이 뚜렷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면서 오히려 성장·물질주의 중시 등의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삶의 질에 주목하고 삶의 양식의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간 간극이 커질 위험성도 적잖다.
이번 조사 결과를 살펴본 한 사회학자는 “재난 이후 시민들의 가치, 삶의 양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전망이 적잖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물질적 성공 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며, 내가 사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제법 높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오히려 삶의 질 보다 경제적 성취, 연대와 협력 보다 경쟁과 자율 등의 가치가 이전 보다 더 높아졌다. 팬데믹을 계기로 삶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성찰할 여유가 있는 집단도 있지만 삶의 위기에 내몰리면서 ‘생존 자체’가 더 절실해진 집단도 있다.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당장의 생존이 중요한 이들에게 삶의 질, 환경 등에 대한 성찰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냉정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고 착찹함을 토로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전망에 대해 유(U)자형, 엘(L)자형, 브이(V)자형 회복 등 논의가 분분한 가운데 최근에는 케이(K)자형 회복 전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거대 아이티 기업이나 재택근무가 가능한 전문가 그룹은 급속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오히려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소규모 서비스업, 대면노동자, 빈곤층 등은 소득감소와 경제위기가 더 심화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정도 적잖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전망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조사’는 이 경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적잖음을 시사한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이번 재난에 잘 대응하면 오히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갈 수도 있다고 낙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불평등은 극적으로 약화되면서 역사상 유례없는 ’대압착’ 시대가 펼쳐졌다. 반면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불평등 심화 속 각자도생 사회로 퇴행했다. 결국 재난 속에서 어떤 대전환을 합의하고 이뤄내느냐의 문제다. 그 어느때보다 정치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
조사 어떻게 했나
’포스트 코로나시대’ 인식 조사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펜데믹 재난이 가져온 변화를 다각도로 살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 시민들의 의식 , 가치변화 , 법과 제도에 대한 평가 등의 설문을 기획하다보니 문항만 100개 가까이 되었다 . 전화조사로는 방대한 조사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면접조사는 코로나 19로 대면 접촉을 꺼리는 분위기에서 시도하기 어려웠다 . 온라인 조사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
온라인 조사는 상대적으로 많은 질문을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의식이나 가치 변화 , 정책 , 제도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는 조사에 많이 활용된다 . 하지만 제한된 패널을 대상으로 조사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패널수가 적을 경우 패널구성의 편향성이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 글로벌리서치는 100만명 이상의 패널을 보유한 조사전문기관이며 서울시 등 정부 , 공기업 등의 의뢰로 웹조사를 수행한 경험이 풍부하다 . 다만 온라인 조사의 특성상 70대 이상 고연령층은 접근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1년에 3~4회의 기획조사를 수행할 예정이며 포스트코로나 시대 인식조사는 첫 번째 조사다 . 조사보고서와 데이터는 관심있는 연구자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곧 공개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