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는 단순한 자연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신체에 차별없이 침투하지만, 사회적 신분과 계급에 따라 그에 따른 피해는 불평등하게 전개된다. 존 머터 미국 컬럼버스대 교수(지구물리학)가 저서 <재난불평등>에 적었듯 “재난은 자연적이지만, 재난 이전과 이후의 상황은 순전히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글로벌리서치와 함께 진행한 ‘포스트 코로나 관련 인식조사’ 결과는 이런 재난불평등의 실체를 드러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 사태 이후 소득이 감소했다는 응답은 전체의 49.5%에 달했다. 이어 변화없다 48.1%, 증가했다 2.4% 순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감염증 확산으로 인한 경기 침체라는 사회적 비용을 소득 감소라는 고통으로 짊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특히 월평균 가구소득이 200만원 미만이라고 답한 저소득층 응답자 가운데 소득이 줄었다는 응답자 비율이 51%에 달했다. 이에 비해 가구소득 600만원 이상 고소득층 가운데 소득이 줄었다는 응답자는 42.2%에 그쳤다. 감염증 확산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소득 수준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다는 뜻이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일수록 소득 감소를 경험하는 비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보험 미가입자 가운데 55.4%가 소득 감소를 경험한 반면, 고용보험 가입자 가운데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한 비율은 42.9%에 그쳤다. 또 상용직 노동자는 42.5%만 소득이 줄었다고 답했지만, 임시직 노동자인 경우 63.9%가 소득이 줄었다.
여기에는 일자리 감소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이 지난 10일 발표한 5월 고용동향을 보면, 임시·일용직 취업자 수는 전년보다 65만3천명 줄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9월(-59만2천명)보다 감소 폭이 컸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도 20만명 줄었다. 한국 노동시장의 대표적인 취약계층인 비정규직과 자영업자의 일자리 사정이 ‘역대급’ 타격을 받은 셈이다. 안정적인 일자리인 상용노동자가 39만명 증가해 회복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더구나 ‘사회적 거리두기’ 등 영향으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휴업 등이 이어지면서 일시 휴직자도 3개월째 100만명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일시 휴직자가 3개월 연속 100만명을 넘긴 것은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99년 이후로 처음이다. 휴업 기간이 장기화되면 실직 단계로 넘어가게 되고, 여기서 구직활동마저 포기하게 되면 실업자로도 포착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로 이어지게 된다. 고용을 전제로 한 기존 사회안전망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셈이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임시일용직 등 불안정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고용을 유지하더라도 소득이 크게 감소했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고용보험 등 고용 관계를 전제로 하는 기존 사회안전망의 강화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유의미한 기여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하는 다층적인 소득보장정책 수립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의 1차적 위험인 감염의 공포 역시 계층에 따라 불공평하게 분배됐다. 아이티(IT) 기업 종사자를 중심으로 한 상위층 노동자들은 재택근무 등 언택트 노동을 통해 감염 경로에서 이탈할 수 있었다. 반면 이들의 원격 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가능케 한 저소득층 노동자들은 감염병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대규모 물류센터, 콜센터에서의 집단 감염 사태가 대표적이다.
또 코로나 사태 초기 요양시설 집단 감염이 보여주듯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이 사실상 전담해 왔던 돌봄 등 대면 서비스업의 위험성도 드러났다. 이에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경제학)는 감염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자 계급을 ‘디 이센셜즈’(the essencials)라고 따로 분류하기도 했다. 의료·요양·물류·치안 등 재난 상황을 대처하는 핵심 노동자 계층이 오히려 감염의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재난에 따른 위험과 사회적 비용이 기존 산업 사회의 계급적 위계 뿐만 아니라, 다층적인 축선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배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를 매우 세심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이와 같은 ‘재난의 불평등’을 체감하고 있었다. 64.5%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취약계층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답했고, 65.5%가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19 이후 고용위기와 불평등 심화 등으로 지금보다 삶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예측한 응답자 또한 65.5%에 이르렀다.
불평등의 심화를 극복하려면 사회통합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복원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재난적 상황은 개인의 생명과 삶의 터전에 심대한 타격을 미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갈등 상황이 극단까지 치달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채종헌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은 “현재 코로나 사태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안정망 강화에 머물러 있지만, 향후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묻는 상황까지 갈등이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재난의 고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결국 공동체의 회복을 중심에 둔 공공성의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6~11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실시됐다. 패널을 이용한 온라인 조사로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포인트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