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⑭여성 정치할당제
여당 시도지사 후보 모두 남성
기초단체장·지방의회도 압도적
전세계 여성의원 비율 23.4%
한국은 17%로 116등 그쳐
여성할당제 100여개국 도입
“자격 없는 여성 진출” 반대도
스웨덴 지방의회 분석 결과
“할당제 도입 뒤 의원 자질 높아져”
⑭여성 정치할당제
여당 시도지사 후보 모두 남성
기초단체장·지방의회도 압도적
전세계 여성의원 비율 23.4%
한국은 17%로 116등 그쳐
여성할당제 100여개국 도입
“자격 없는 여성 진출” 반대도
스웨덴 지방의회 분석 결과
“할당제 도입 뒤 의원 자질 높아져”
이번 지방선거는 여야 간의 팽팽한 접전이라기보다는 다소 일방적인 양상을 띠어 전체적으로 관심이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평등과 관련된 사항 두 가지는 제법 화제가 됐습니다.
첫째는 시도지사 후보 열일곱명 전원이 50대 이상 남성으로 구성된 집권여당의 공천 지도였습니다.(두번째 사항은 글 말미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발표되자 여러 여성단체들은 “더불어민주당은 남성과만 더불어 갈 것이냐”고 강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주요 정당들도 모습은 많이 다르지 않아서 광역자치단체장 여성 후보가 자유한국당은 세종특별자치시 한명, 정의당은 부산광역시 한명뿐이었고, 바른미래당 역시 한명의 여성 후보도 없었습니다.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지역구 의원 후보도 압도적 다수가 남성이었습니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낮은 것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유엔에 의하면 2017년 1월1일 기준으로 여성 정치인은 국가 수반 중 5.7%, 장관 중 18.2%였습니다. 국회(단일 의회 및 양원제의 하원)의 의원은 23.4%가 여성이었는데 1995년 11.3%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지만 증가 속도는 매우 느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림1>에서 보시는 것처럼 여성의 국회 진출은 국가별로도 편차가 커서, 북유럽 국가들이 41.7%로 가장 높았고, 아시아와 아랍 지역은 각각 19.6%와 18.9%로 낮은 편이었습니다. 한국은 유감스럽게도 17%로 매우 낮아서 전체 193개국 중 116등이었습니다. 주요 국가 중 우리보다 여성 의원 비율이 낮은 국가는 러시아(15.8%)와 일본(9.3%) 정도였습니다.
여성정치할당제 도입 효과
여성의 정치 참여를 높이려는 노력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여성정치할당제입니다. 국가별로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의회의 여성 비율을 높이기 위해 일정 비율의 후보자 또는 당선자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제도입니다. 여성할당제는 1970년대 북유럽에서 처음 도입된 후 확산되어 지금은 100여개국에 도입됐습니다. 한국은 2000년 정당법에 국회와 광역의회 비례대표 중 여성의 비율을 30% 이상으로 할 것을 권고하는 규정이 도입된 후, 지금은 비례대표 50%와 남녀 후보를 홀짝으로 교차시키는 제도(교호순번제), 여성후보추천 보조금 등으로 확대 발전했습니다.
여성할당제는 직접적으로 여성의 정치 진출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여성 의원 비율이 5.9%에서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13%로 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 효과는 전세계적으로도 발견됩니다. 미국 밴더빌트대학의 정치학자 어맨다 클레이턴과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정치학자 페르 세테르베리 교수는 1995~2012년 사이에 여성정치할당제를 도입한 65개국 사례를 통하여 여성 의원 비율을 추적했습니다. (‘할당제 충격: 세계의 성별 정치할당제와 정부 지출 변화’, <저널 오브 폴리틱스>, 2018) <그림2>를 보면 여성정치할당제가 도입된 직후에 여성 비율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그 효과가 지속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별할당제가 여성 의원 비율을 높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또는 우려도 상당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선거에서 여성을 체계적으로 남성에 비해 우대하는 것은 기회의 균등, 능력주의 및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것입니다. 할당제 도입에 의해 자격을 갖춘 남성 정치인이 의회에 진출하지 못하고, 자격 없는 ‘그저 그런’(mediocre) 여성 정치인이 선출되는 것에 대한 걱정입니다. 이것은 사실 선거 이외에 기업 이사회, 교수 선임, 학생 선발 등 각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적극적 조치를 도입할 때면 항상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특히 선거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이런 우려를 쉽게 일축할 수는 없습니다.
‘자격 없는’ 여성들이 선출된다는 우려
그런데 런던정경대학의 경제학자 티머시 베슬리 교수 팀은 스웨덴의 여성할당제 효과 분석을 통하여 흥미로운 반론을 제시했습니다. (‘성별 할당과 그저 그런 남성의 위기’,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 2017) 스웨덴 지방선거는 전원을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는데, 1993년 스웨덴 사민당은 자발적으로 남녀를 50%로 할당해 교호순번제로 공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당연히 당내에서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부딪혔는데, 모든 남성이 동일하게 반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민당 여성위원회는 탁월하지 못한 남성 정치인들이 주로 반대한다고 생각해 이를 ‘그저 그런 정치인들의 위기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스웨덴 사민당의 여성할당제 도입으로 지방의회에서 사민당 여성 의원들의 비율은 대략 10%포인트 정도 상승하게 되는데,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여성할당제 도입 이후 의원들의 자질이 하락할 것을 걱정했던 것과 반대로 의원들의 능력이 오히려 상승한 것입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분석한 것일까요? 우선 의원들의 자질을 측정하는 지표로, 동일지역·동일학력·동일연령·동일직업에 종사하는 후보들의 상대적 소득을 비교해 소득이 높을수록 자질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스웨덴 지방의회 의원들은 대부분 의원 이외의 별도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소득이 공개돼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할당제 도입 이전에 각 지역별 여성 의원의 비율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거의 전원이 남성이었던 지역도 있고, 대략 절반 정도 여성이 이미 진출한 지역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성할당제 도입 효과를 지역별로 비교할 수 있었던 것이죠.
당선자들을 자질에 따라 능력 있는(competent) 후보와 그저 그런 후보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당선자 중 능력 있는 의원의 비율을 여성할당제가 도입되기 직전인 1991년에 비교한 상대값이 <그림3>에 표시돼 있습니다. 이것을 보시면 여성할당제 도입 후에 의원들의 자질은 대체로 그전에 비해 상승했고, 최소한 그 이전에 비해 하락하지는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들의 분석에 의하면 남성 정치인들의 경우 자질 향상이 뚜렷해서, 할당제로 인해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평균 10%포인트 상승함에 따라 남성 의원들의 자질이 3%포인트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물론 이 논문만으로 여성할당제가 전반적으로 정치인의 자질을 높인 것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치인의 자질을 측정하는 지표를 더 정교화하고, 스웨덴 이외의 여러 나라에서 각국별로 여성할당제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성할당제가 의원 자질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가 별로 없었던 상황에서 선입견과 반대되는 효과가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한국, 제도는 도입됐지만…
이번 한국의 지방선거에서 화제가 되었던 두번째 사항을 말씀드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페미니스트 여성 후보의 포스터 사진에 대해 한 인권변호사가 “1920년대 이른바 계몽주의 모더니즘 여성 삘이 나는 아주 더러운 사진을 본다. 개시건방진. 나도 찢어 버리고 싶은 벽보다”라는 평을 페이스북에 올려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다행히 이 변호사가 사과문을 페이스북에 올렸지만, 서울시내 여러 곳에서 페미니스트 후보의 포스터가 훼손됐다고 합니다.
영국 퀸메리대학과 버밍엄대학의 정치학자인 피터 앨런과 데이비드 커츠의 연구에 의하면, ‘남성이 여성보다 정치지도자로 더 적합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비율이 한국의 경우 45%에 불과해서 연구 대상인 48개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37등이었습니다. (‘성별할당제는 여성 정치지도자에 대한 지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웨스턴 유러피언 폴리틱스>, 2018) 심지어 교호순번제 규정을 교묘하게 피하기 위해서 일부 정당에서는 당선 이후 사퇴를 약속받고 여성 후보를 공천 명단에 올린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여러 사회문화적 특성들 때문에, 한국은 여성할당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의 정치 참여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할당제의 제도적 도입에 안주하지 말고, 각 정당은 최선의 여성 후보를 찾아서 공천하려고 노력하고, 학자들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여성할당제의 여러 효과를 실증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방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다른 선택 기준과 함께 각 정당이 성 격차 해소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꼼꼼히 살펴봐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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