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여개 시민단체들이 모여 지난해 8월 개최한 '국민주권 개헌행동 출범선언 기자회견'.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헌법특위)는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 정보기본권(알권리) 신설 등 기본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 초안을 마련했다. 현행 헌법에서 ‘국민’으로 돼 있는 기본권의 주체는 ‘인간’으로 바꾸고 검찰의 영장청구권도 삭제하기로 했다. 헌법특위는 현행 헌법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는다’는 조항에서 더 나아간 ‘생명권’을 개정안에 명시했다.
개정안에 사형제를 폐지한다는 명문 규정은 없지만 생명권 조항이 신설되면 사형제 폐지나 다름없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또 자연재해·전쟁·사고 등의 위험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권도 신설된다. 생명권·안전권 신설은 세월호 참사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등을 겪으며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정보의 접근과 처리 등 정보 이용을 위한 ‘알권리’ 역시 기본권으로 명시된다.
개정 헌법에서는 소수자 우대 조처(어퍼머티브 액션)가 평등권 조항에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실질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 국가가 노력할 의무를 진다”는 선언을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를 시정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장애인과 노인, 아동·청소년을 위한 별도의 기본권도 신설된다.
군인·공무원이 명령 수행 과정에서 상해를 입어도 국가를 상대로 배상 청구를 금지한 헌법 29조2항은 삭제했다. 1967년에 제정된 국가배상법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 조항을 통해 국가는 베트남전에서 죽거나 다친 군인들에게 소액의 보상금만 주고 배상 요구를 틀어막았다. 1971년 대법원은 이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으나 박정희 정권은 재임용 탈락 방식으로 대법관들을 퇴임시켰고 이듬해 유신개헌을 추진하면서 이 독소조항을 아예 헌법에 넣어버렸다. 헌법특위는 군인·공무원에 대한 국가의 억압적 권리를 헌법의 이름으로 정당화한 이 조항을 46년만에 퇴출하기로 했다.
성평등이냐, 양성평등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었던 헌법 36조(“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에서는 ‘양성평등’ 표현을 유지하기로 했다. ‘양성평등’의 폐기는 동성혼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기본권의 주체는 ‘국민’이 아닌 ‘인간’으로 수정된다. 기본권의 주체로 사람과 인간이 경합했으나 최종 선택된 용어는 ‘인간’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만이 아닌,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도 보편적으로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현행 헌법 12조에 규정된 검찰의 영장청구권은 삭제된다.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은 검찰을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만든 핵심 조항으로 꼽혔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및 검·경 수사권 조정과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헌법에서 이 조항이 삭제되면 영장청구 권한을 둘러싼 위헌 논란 없이 검·경 수사권 조정이 가능해진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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