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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2003 체제’를 혁파하라

등록 2014-08-03 20:38수정 2014-08-04 10:39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기고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보수는 전략을, 진보는 논리를 중시한다. 있는 것을 지키고자 하면 어떻게 지킬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현실을 바꾸고자 할 때엔 그 대안의 미래를 논리적으로 따져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비록 후지기는 하지만 보수다운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전혀 진보답지 않다. 민주화처럼 선명한 시대담론, 즉 어떤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주장(argument)이 없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등도 선거구호나 하나의 정책일 뿐 미래비전의 큰 틀에서 전략적으로 풀어내는 정치기획은 없다. 그러니 반대만을 외치게 되는 데 그조차도 치밀하지 못하고 허술하다. 참 지질한 정당이다.

반대 위한 반대…그나마 허술

반사이익에 기대는 반대 노선은 약하다. 첫째, 집권세력의 실정이 ‘묻지마 거부’ 정서를 낳을 정도로 큰 경우가 거의 없다. 민주정부 10년의 결과로 얻은 불신때문에 현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이 응징으로 나타나기도 쉽지 않다. 둘째, 고정 지지층의 규모에서 열세인 정치지형이다. 투표의지가 강하고 충성심도 높은 고정 지지층에서 현재의 여당은 야당을 압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유권자 덩어리로서 영남과 보수의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 취하고 있는 ‘반반(반대-반사이익) 노선’은 2등 지키기의 소수파 전략이다.

‘반반 노선’을 지탱하는 다른 요인은 낡고 취약한 리더십이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서로 다른 비전과 구상을 내걸고 당원과 시민의 여망을 조직화해내는 ‘밑으로부터의’ 리더십 경쟁이 사라진지 오래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은 김원기·이해찬 등 친노그룹과 정동영·천정배·김한길·신기남·정세균 등 소장그룹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당은 이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노선·정책·전략도 그대로다. 비유하면 ‘03년 체제’라 할 수 있다.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치열한 고민과 갈등 끝에 ‘03년 체제’를 만들어냈지만 선거 승패, 정당 지지율 등에서 심각한 한계를 노출했다. 10여년 지속되고 있는 이 체제는 2004년 총선과 2010년 지방선거 승리 외엔 각각 두 번의 총선·대선에서 참 무던히도 졌다. ‘03년 체제’는 2007년 대선 패배, 늦어도 2008년 총선패배 후 혁파됐어야 했다. 그 때 새로운 노선과 정책,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하는 일대 혁신이 이뤄졌어야 했다. 그게 물리적 이치 아니던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로움이 낡음을 대체하려는 치열한 시도, 세대교체는 없었다. 당내 486이 반성할 대목이다. 단지 운이 없어서 졌다는 식의 질서있는 수습을 반복했다. 익숙한 인물이 번갈아 나서고, 식상한 대응을 반복하면서 무능을 키웠다. 지도부 퇴진-비대위 구성-전당대회의 수습 공식은 수차례 반복됐지만 반짝 상승 외에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친노 대 비노의 퇴행적 갈등구도는 굳건하게 유지됐다. 친노 대 비노의 진영 대결은 돌부처도 돌아앉게 할 정도의 꼴사나운 행태를 비호하는 숙주였고, 새 인물의 등장을 막는 창살이었다. 딱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반대와 단일화만을 외치는 ‘그 나물’에 낡은 인물의 ‘그 밥’으로 차려진 밥상을 과연 어느 국민이 맛있게 먹을까? 민주정부 10년이 정권을 내주는 것으로 끝났으면 성찰과 변화, 즉 새로운 시대담론과 그에 부응하는 인물과 전략을 제시하는 건 상식이다. 당의 성장지체, 발달장애의 실례가 2002년 대선 전략을 그대로 베껴 치른 2012년 대선이다.

고통스럽겠지만 죽어야 산다

새정치연합은 죽어야 산다. 구세주가 나와 당을 정비하는 게 아니라 대중적 열망으로 당의 앙시앙레짐(구체제)을 허물고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변혁’(great transformation)이 답이다. 다른 나라의 패배한 정당처럼 긴 시간의 고통스런 혼돈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질서가 탄생된다. 이 과정에서는 대권 후보들을 비롯해 차세대 주자들이 각자 새로운 노선과 전략의 깃발을 들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이 경쟁은 국회의원 등 당의 상층부를 대상으로 하는 이합집산이 아니라 당원 대중과 시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재편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계파주의도 극복되고, 기율이 바로 선 강한 정당이 세워진다. 지금 필요한 건 조속한 질서 회복이 아니다. 혼돈의 조직화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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