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종 국방부 조사본부장(맨 오른쪽)이 19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국군사이버사령부 댓글 의혹 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치 관련 글 1만5천여건
정치인 비방·옹호 2100건 게시
“문재인 국군통수 자격없다”도
대선개입 아니다 판단 ‘모순’
국정원 “사이버사 지원” 불구
“국정원 지시 근거 발견 못해”
윗선 지시·개입 여부도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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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국군통수 자격없다”도
대선개입 아니다 판단 ‘모순’
국정원 “사이버사 지원” 불구
“국정원 지시 근거 발견 못해”
윗선 지시·개입 여부도 부인
“군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 행위는 있었으나 대선에 개입한 것은 없었다.”
백낙종 국방부 조사본부장이 19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 발표장에서 군 사이버사 요원이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겨냥해 “군 통수권자의 자격이 없다”는 댓글을 올린 행위를 두고 한 말이다. 여야의 두 후보 사이에서 군이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 활동을 하긴 했으나, 이것을 대선개입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이다.
조사본부는 이런 행위가 대선개입이 아니라고 판단한 근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치에 개입할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정확하게 판단했다”고 답했다. 조사본부가 수사기관으로서 객관적 사실을 제시하지 않은 채 주관적 판단인 의도와 목적을 내세워 대선개입이 아니라고 확정한 셈이다.
심리전단 요원들의 대선개입은 조사본부가 발표한 내용을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군 사이버사 심리전단의 단장, 요원 등 11명이 받고 있는 혐의는 정치관여, 정치운동 금지 의무 위반, 직권남용, 증거인멸, 증거인멸 교사 등이다. 이들은 총 28만6000여건의 글을 올렸고, 이 가운데 정치 관련 글 1만5000여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옹호·비판하며 2100여건을 올렸다. 정치 관련 글 1만5000여건은 논외로 하더라도 특정 정당·정치인을 옹호·비판한 글 2100여건은 대선 개입 혐의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조사본부는 자신들이 발표한 내용마저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조사본부는 심리전단 요원들의 댓글·트위트글 작성을 지시한 장본인으로 이아무개 심리전단장을 지목하면서도 이 단장을 불구속하는 데 그쳤다. 조사본부는 그 이유로 “증거인멸,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조사본부가 이 단장에게 적용한 혐의 중엔 ‘증거인멸 교사’가 포함돼 있다. 이 단장이 수사 시작 직후 자료 삭제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조사본부는 이 단장에게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적용하면서 불구속의 근거로는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극히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대선이란 엄중한 시기에 정치개입을 지시한 이 단장을 불구속한 배경을 두고서도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이날 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이 단장은 구속기소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 단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방침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조사본부가 이 단장을 불구속한 것은 ‘입막음용’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심리전단 활동의 전모를 알고 있을 이 단장을 구속할 경우 ‘윗선’ 폭로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불구속을 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사본부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 단장 구속은 기정사실로 하고 ‘윗선’을 어느 정도로 할지를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본부는 사이버사의 심리전 주제가 △제주 해군기지 △북방한계선(NLL)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북한 핵·미사일 △김정은 독재 체제 △군 지휘부 군사 대비 태세 등이라고 밝혔다. 군 사이버사는 이 주제들과 관련해 북한의 <로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하고 한국 인터넷상에서 이를 따르는 의견이 있으면, 요원들이 댓글을 올려 작전을 펼쳤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이아무개 심리전단장의 지시에 따라 일부 요원들이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는 글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형사 입건된 10명의 심리전단 요원을 선별한 기준은 모호하다. 조사본부는 “50여건 이상, 정치적인 글을 올린 요원이 기준”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50건 이하의 정치적 글을 올린 요원이나, 조사본부가 정치적인 글로 판단하지 않은 다수의 글을 올린 요원은 제외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본부는 정작 자신들이 밝힌 ‘정치적인 글’의 구체적 기준은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현재 빅데이터 업체의 자료를 넘겨받아 분석 중이어서 삭제된 글 복원 과정에서 입건되는 요원의 수는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건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였던 국정원과의 연관성에 대해 백 본부장은 “국정원에서 지시를 했다는 근거는 수사 과정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고 의혹 일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국정원 쪽은 “2010년부터 ‘국가 심리 정보활동 방향’을 참고하도록 사이버사령부에 지원한 적은 있다. 연단위·월단위 활동 방향이 있으며, 관련 법규에 따라서 생산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한겨레> 11월20일치 1면)
조사본부가 청와대 등 상부 기관의 지시·개입 여부에 대해 “압수수색과 관련자 소환 조사를 통해 입체적으로 확인했으나, 군 내·외부의 대선 개입 지시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은 대목도 석연치 않다.
다만, 조사본부는 이번 발표가 중간 수사결과 발표임을 강조하며 추가 조사가 이어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백 본부장은 “현재 빅데이터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등 천문학적인 자료들을 모아놓은 데이터를 받아서 분석을 할 것이다. 이미 분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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