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가 15일 오후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검찰 대화록 수사 쟁점은
노무현 왜 삭제 지시?
“1급비밀 분류는 공개 꺼린 것” vs “수정본 지시때 공유 강조” 초본 삭제하면 위법?
“대통령기록물 모든 과정 남겨야” vs “기록물 아닌 미완성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은 1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삭제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고, 이 지시에 따라 실무진이 대화록을 삭제·파쇄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다음 정부와 공유할 뜻을 밝힌 문서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고 대화록과 녹음파일을 국가정보원에 남긴 점 등에 비춰, 굳이 대화록 삭제를 지시할 ‘동기’가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또 검찰은 대화록 ‘초본’을 대통령기록물로 보고 이를 삭제한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초본’을 기록물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 삭제 지시? 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위법한’ 삭제 지시가 사건의 발단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삭제 지시가 있었는지에서부터 여전히 주장이 엇갈린다. 검찰은 조명균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일관되게 ‘노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대화록을 삭제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또 2008년 2월 조 전 비서관이 대화록을 삭제한 뒤 노 전 대통령에게 삭제 사실을 보고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의 변호를 맡은 박성수 변호사는 “9~10월 조사를 받을 때 조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고 했던 지난 1월 진술은 부정확한 기억에 의해 이뤄진 잘못된 진술’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지원에 올려진 전자파일 문서를 삭제하라는 지시는 없었고, 종이로 된 책자 대화록을 청와대에 남기지 말라는 말씀은 하셨던 것 같다’가 진술 요지였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삭제 지시 ‘동기’도 불명확하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보안성’을 고려해 대화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남기지 않고 “국가정보원에서 1급비밀로 관리하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다. 하지만 국정원에서 1급비밀로 관리하면 매우 제한된 사람만 볼 수 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1급비밀로 분류한 건 과잉’이라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통상 2급비밀로 관리해왔다. 하지만 대통령지정기록물도 30년까지 보안이 유지되는 등 접근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 관계자도 “1급비밀과 대통령지정기록물 중 어떤 쪽이 더 접근이 쉬운지는 평면적으로 비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삭제 동기 문제와 관련해, 특히 검찰이 이날 공개한 ‘보고서의견-남북정상녹취록’이란 제목의 문서가 주목된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19일 대화록을 확인한 뒤 ‘처리의견’ 난에 “내용을 한번 더 다듬어 놓자는 뜻에서 재검토로 합니다”라며 재검토 지시를 내린다. 이때 지시 취지를 상세히 밝히는 문서를 첨부했다. ‘보고서의견-남북정상녹취록’이란 제목의 이 문서에서 노 전 대통령은 “앞으로 해당 분야를 다룰 책임자들은 대화 내용과 분위기를 잘 아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회담을 책임질 총리, 경제부총리, 국방장관 등이 공유해야 할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정부가 남북관계 업무에 대화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어서, 고의로 대화록을 없애려 했다는 검찰 설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 초본이 대통령기록물? 노 전 대통령의 삭제 지시가 있었다 해도 삭제된 문서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면 위법이 아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21일 ‘초본’ 대화록을 열람 방식으로 결재했다. 결재권자가 결재까지 한 명백한 대통령기록물”이라며 “삭제된 대화록에는 정상회담 당시 실제 사용된 호칭·명칭·말투 등이 생생하고 정확하게 반영돼 있다. 참여정부 당시 다른 외국 정상과의 대화록은 수정 전후 대화록이 모두 대통령지정기록물로 관리돼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과 노무현재단은 이날 ‘정상회담 대화록 관련 쟁점과 진실’이란 자료를 내어 “삭제된 대화록은 대통령이 오류를 지적하며 수정을 지시했다. 미완성본이다. 다른 국가 정상과의 대화록 최종본과 초본이 함께 기록관으로 이관된 사례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정 이후 과거 문서를 한꺼번에 재분류하면서 생긴 오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검찰이 과거에 ‘초본을 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사례도 제시했다. 이들은 “2010년 9월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상지대 옛 비리재단 복귀 결정을 내릴 때 공식 회의 속기록을 무단 폐기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관계자들에 대한 고발을 각하했다. 속기록의 내용이 훨씬 더 풍부했지만 검찰은 ‘속기록(초본)은 대화록(최종본)의 보조자료이므로 속기록을 공공기록물법상의 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화록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회도 최종본을 제외한 속기록 초안과 수정본은 규정에 따라 폐기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모든 과정과 이력을 기록물로 남기도록 강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수정본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의 결재를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며 실무진이 이를 파쇄한 행위는 처벌 대상에서 뺐다. ■ 수정본은 왜 이관되지 않았나 2008년 2월14일 오전 청와대는 기록물 이관 작업 등을 위해 대통령비서실 일반 사용자들의 이지원 접속을 차단시켰다. 이날 오후 조 전 비서관은 업무혁신비서관실의 협조를 얻어 이지원 시스템에 접속했다. 조 전 비서관은 ‘회의록 수정 보고’라는 제목의 ‘메모보고’를 작성했고, 대화록 수정본 파일을 첨부했다.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해 이지원 시스템에 등재했다. 이지원을 통해 전자문서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는 것은 1월 말까지 가능했다. 2월1일부터 보고하는 문서는 별도의 인쇄물로 넘겨야 했으나 조 전 비서관은 이지원에 메모보고만 하고 별도의 인쇄물을 넘기지 않았다. 조 전 비서관이 이지원에 메모보고를 한 뒤 ‘봉하 이지원’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봉하 이지원에만 수정 대화록이 남게 됐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1급비밀 분류는 공개 꺼린 것” vs “수정본 지시때 공유 강조” 초본 삭제하면 위법?
“대통령기록물 모든 과정 남겨야” vs “기록물 아닌 미완성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폐기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은 1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삭제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고, 이 지시에 따라 실무진이 대화록을 삭제·파쇄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다음 정부와 공유할 뜻을 밝힌 문서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고 대화록과 녹음파일을 국가정보원에 남긴 점 등에 비춰, 굳이 대화록 삭제를 지시할 ‘동기’가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또 검찰은 대화록 ‘초본’을 대통령기록물로 보고 이를 삭제한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초본’을 기록물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 삭제 지시? 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위법한’ 삭제 지시가 사건의 발단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삭제 지시가 있었는지에서부터 여전히 주장이 엇갈린다. 검찰은 조명균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일관되게 ‘노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대화록을 삭제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또 2008년 2월 조 전 비서관이 대화록을 삭제한 뒤 노 전 대통령에게 삭제 사실을 보고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의 변호를 맡은 박성수 변호사는 “9~10월 조사를 받을 때 조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고 했던 지난 1월 진술은 부정확한 기억에 의해 이뤄진 잘못된 진술’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지원에 올려진 전자파일 문서를 삭제하라는 지시는 없었고, 종이로 된 책자 대화록을 청와대에 남기지 말라는 말씀은 하셨던 것 같다’가 진술 요지였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삭제 지시 ‘동기’도 불명확하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보안성’을 고려해 대화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남기지 않고 “국가정보원에서 1급비밀로 관리하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다. 하지만 국정원에서 1급비밀로 관리하면 매우 제한된 사람만 볼 수 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1급비밀로 분류한 건 과잉’이라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통상 2급비밀로 관리해왔다. 하지만 대통령지정기록물도 30년까지 보안이 유지되는 등 접근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 관계자도 “1급비밀과 대통령지정기록물 중 어떤 쪽이 더 접근이 쉬운지는 평면적으로 비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삭제 동기 문제와 관련해, 특히 검찰이 이날 공개한 ‘보고서의견-남북정상녹취록’이란 제목의 문서가 주목된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19일 대화록을 확인한 뒤 ‘처리의견’ 난에 “내용을 한번 더 다듬어 놓자는 뜻에서 재검토로 합니다”라며 재검토 지시를 내린다. 이때 지시 취지를 상세히 밝히는 문서를 첨부했다. ‘보고서의견-남북정상녹취록’이란 제목의 이 문서에서 노 전 대통령은 “앞으로 해당 분야를 다룰 책임자들은 대화 내용과 분위기를 잘 아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회담을 책임질 총리, 경제부총리, 국방장관 등이 공유해야 할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정부가 남북관계 업무에 대화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어서, 고의로 대화록을 없애려 했다는 검찰 설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 초본이 대통령기록물? 노 전 대통령의 삭제 지시가 있었다 해도 삭제된 문서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면 위법이 아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21일 ‘초본’ 대화록을 열람 방식으로 결재했다. 결재권자가 결재까지 한 명백한 대통령기록물”이라며 “삭제된 대화록에는 정상회담 당시 실제 사용된 호칭·명칭·말투 등이 생생하고 정확하게 반영돼 있다. 참여정부 당시 다른 외국 정상과의 대화록은 수정 전후 대화록이 모두 대통령지정기록물로 관리돼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과 노무현재단은 이날 ‘정상회담 대화록 관련 쟁점과 진실’이란 자료를 내어 “삭제된 대화록은 대통령이 오류를 지적하며 수정을 지시했다. 미완성본이다. 다른 국가 정상과의 대화록 최종본과 초본이 함께 기록관으로 이관된 사례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정 이후 과거 문서를 한꺼번에 재분류하면서 생긴 오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검찰이 과거에 ‘초본을 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사례도 제시했다. 이들은 “2010년 9월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상지대 옛 비리재단 복귀 결정을 내릴 때 공식 회의 속기록을 무단 폐기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관계자들에 대한 고발을 각하했다. 속기록의 내용이 훨씬 더 풍부했지만 검찰은 ‘속기록(초본)은 대화록(최종본)의 보조자료이므로 속기록을 공공기록물법상의 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화록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회도 최종본을 제외한 속기록 초안과 수정본은 규정에 따라 폐기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모든 과정과 이력을 기록물로 남기도록 강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수정본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의 결재를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며 실무진이 이를 파쇄한 행위는 처벌 대상에서 뺐다. ■ 수정본은 왜 이관되지 않았나 2008년 2월14일 오전 청와대는 기록물 이관 작업 등을 위해 대통령비서실 일반 사용자들의 이지원 접속을 차단시켰다. 이날 오후 조 전 비서관은 업무혁신비서관실의 협조를 얻어 이지원 시스템에 접속했다. 조 전 비서관은 ‘회의록 수정 보고’라는 제목의 ‘메모보고’를 작성했고, 대화록 수정본 파일을 첨부했다.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해 이지원 시스템에 등재했다. 이지원을 통해 전자문서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는 것은 1월 말까지 가능했다. 2월1일부터 보고하는 문서는 별도의 인쇄물로 넘겨야 했으나 조 전 비서관은 이지원에 메모보고만 하고 별도의 인쇄물을 넘기지 않았다. 조 전 비서관이 이지원에 메모보고를 한 뒤 ‘봉하 이지원’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봉하 이지원에만 수정 대화록이 남게 됐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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