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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칼이 된 ‘정보’…국정원, 정치를 찌르다

등록 2013-09-08 21:20수정 2013-09-24 11:04

뉴스분석

몇 달째 정국 전면에 나서
‘대선·정치 개입’ 파문으로 시작
대화록 공개부터 ‘내란 음모’까지

‘검찰총장 신상털기’ 의심도 받아
전문가들 “국정원 개혁 서둘러야”
국가정보원이 정국의 전면에 나서는 일탈적 상황이 몇 달째 계속되면서 ‘정치의 실종’이 장기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정기관의 수장인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생활 관련 소문을 흘린 당사자가 국정원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제기되면서, 공직사회와 정치권에선 “국정원에 찍히지 않도록 몸조심해야 한다”는 기류마저 감지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후진국형 정보정치를 끝내고 의회와 정부 주도의 ‘정상정치’로 복귀하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8일 “내란음모 사건이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자꾸 정치 전면에 나서는 것을 당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국회가)해야 할 일은 많은데 (국정원 문제로) 민주당은 원외로 나가 있고 상임위도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의원들이 답답해한다”고 말했다. 여당 안에서도 국정원이 정국의 전면에 등장해 정치의 역할을 무력화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어선 곤란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건드리면 다친다는 신호로 여길것”

여권의 한 인사도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문제가 ‘국정원발’인지, 혼외 관계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의원들 사이에서도 사생활이 저런 식으로 털리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며 “국정원 개혁이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면 사생활 관련 정보를 쥐고 있다가 특정 시점에 풀어버리는 문제도 거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직자의 도덕성 검증은 필요한 일이지만, 국정원이 의도를 가지고 흘리는 식의 정보정치를 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비판이다.

정부 출범 첫해, ‘음지’에 있어야 할 국정원이 ‘양지’에 나와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국정원은 지난해 말 대선을 앞두고 조직적 여론조작 정황이 포착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국정원은 지난 5월 발견된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으로 정치개입 논란을 부르더니, 대선개입 의혹 국회 국정조사를 앞둔 6월 돌연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공개하면서 정국을 뒤흔들었다. 그 파동이 항간의 기억에서 멀어지자, 이번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들고나왔다. 전·현직 국정원장이 국회 국정조사에 불려나가고 조직의 축소·폐지 등 개혁 요구가 높아지는 수세적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시점이었다. 국정원이 박근혜 정부 출범 반년 동안 사실상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한 셈이다.

야권은 이에 맞서 국회 차원의 국정원 개혁 등을 요구하며 원외투쟁을 이어가고, 9월 정기국회는 개점휴업 상태로 파행을 겪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모든 정치 현안이 국정원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갈등에 가로막힌 상황에서도 국정원에 ‘셀프개혁’만 주문하고는 발을 빼버렸다.

이런 와중에 불거진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 보도는 사정과 정보를 각각 책임진 검찰과 국정원의 조직적 갈등·반목으로 번질 조짐이다. 검찰 내부에선 이번 혼외 자식 보도의 ‘출처’를 국정원으로 의심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혼외 관계로 지목한 사람들의 출국일, 가족관계등록부, 거주지, 아파트 입주자 카드 등 본인이 아니면 입수하기 힘든 자료들을 속속들이 확보한 것은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출입국 기록, 가족관계등록부 등이 기사에 등장하는데 일개 언론사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입수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지 않으냐. 국정원 등이 개입했다는 의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만약 그렇다면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진행되는 상황을 보아가면서 엄중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보도 출처가 국정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를 의심하는 분위기만으로도 공직사회에서 국정원을 건드리면 검찰총장도 다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며 “국정원 국내파트 업무 가운데 하나가 이런 유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다. 국내정보 수집 업무를 폐지하자고 요구하는 정치인들도 (국정원이) 뭘 터뜨릴지 모르니 겁부터 먹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들 국정원을 의심한다. 검찰총장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흔들거나 낙마시킨다면 다른 공직자들은 어떻겠는가. 정말 걱정된다”고 말했다. 검찰총장 혼외관계 보도가 사실상 ‘국정원의 공직자·정치인 겁주기’ 효과로 연결되고 있다는 얘기다. 과거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한 ‘공작정치’를 기억하는 정치권에서는 특정한 의도를 가진 ‘사생활 털기’, ‘정보정치’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사생활 문제는 정치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국정원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검찰과 정치권의 시각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하느냐. 불쾌하고 황당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선 대통령이 야당과 대화에 나서서 정치를 복원하고, 국회 중심의 국정원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음지에 있어야 할 정보기관이 정치의 한복판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사안으로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된 전례가 없다. 결국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국정원 개혁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주문한 셀프개혁이 아니라 정치개입 통로를 근절할 국회 중심의 국정원 개혁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일 김원철 기자 namfic@hani.co.kr

‘뼛속까지 공작’ 국정원, 정치를 삼키다 [성한용의 진단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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