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직원 “이렇게 많은 분량 처음”
여론재판 위한 의도적 포석 의심
여론재판 위한 의도적 포석 의심
정부가 2일 국회에 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체포동의안에는 이 의원의 ‘범죄사실’과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을 적은 A4 용지 82쪽 분량의 자료가 첨부돼 있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법원에 낸 이 의원의 범죄사실로, 법원의 체포동의 요구를 받은 정부는 선례에 따라 이를 체포동의안에 그대로 덧붙였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2일 “과거에도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이 여러 차례 국회에 접수됐지만 많아야 몇 장 정도였다. 이렇게 두껍게 온 것은 처음 봤다”며 적지 않은 분량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지하혁명조직을 통한 내란음모·선동 혐의로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1986년 ‘국시 발언’을 한 유성환 당시 신한민주당 의원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례가 있지만, 사안 자체가 이번처럼 복잡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불법자금을 받거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체포동의안이 제출됐던 새누리당 정두언·현영희 의원, 무소속 박주선 의원 사건도 범죄 일시와 장소, 수수금액만으로 혐의가 구성되는 간단한 내용들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공안사건은 특정인과 단체가 어떻게 이적 성향을 갖게 됐는지, 그 배경과 역사를 길고 장황하게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특별히 이번 사건의 범죄사실만 의도적으로 길고 자세하게 작성해 국회에 넘긴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 길고 장황한 범죄사실의 나열이 결국 ‘여론재판’의 정점을 찍으려는 국정원의 의도적 포석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도 제기된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아침 국정원이 피의자들의 사무실과 집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직후부터 주요 피의사실과 혐의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상세히 언론에 나왔고, 체포동의안에 그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압수수색 다음날 이번 사건의 핵심 증거물인 ‘이석기 5월 모임’ 녹취록이 언론에 통째로 기사화된 것을 시작으로, 이석기 체포동의안의 국회 제출을 코앞에 둔 2일 아침에도 일부 신문에 체포동의안에 첨부된 핵심 범죄사실이 대부분 보도됐다. 검찰이 기소도 하기 전에 이 의원의 주요 피의사실이 대부분 공개된 셈이다. 검찰 쪽에서도 “우리도 보지 못한 기록들이 언론에 마구 나온다”며 어처구니없다고 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검찰 쪽에서 흘리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지만, 국정원이 수사를 주도하고 검찰은 지휘만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실체와 파장은? [한겨레캐스트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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