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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둘다 온대?” “응, 나 지금 너무 떨려” “난 추워서 떨려”

등록 2012-12-11 22:30수정 2012-12-12 15:10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광화문 대첩’,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유세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유세장에 참석한 시민들이 문 후보의 유세를 들으며 환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광화문 대첩’,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유세가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유세장에 참석한 시민들이 문 후보의 유세를 들으며 환호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소설가 손아람 르포 l 문재인 수도권 유세
작가 손아람
작가 손아람
작가 손아람씨가 기자단 버스를 타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유세 현장을 취재했다. 박 후보의 12월2일 강원도 유세에 모두 동행할 예정이었으나 예기치 않던 박 후보 보좌관의 교통사고로 일정은 한나절에 그치고 말았다. 문 후보 취재를 위해선 12월 8일 서울 광화문과 9일 군포 유세 현장을 찾았다.


12월 7일 pm 8:41 한겨레 이태희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한달 간의 강행군으로 취재기자들이 모두 뻗어누워 내일 유세에 아무도 동행할 수 없게 됐다고 한다. 내게 문재인 후보의 유세 일정을 알려준다. 문재인 후보는 오전 8시 부산 범어사를 내방하고 서울 광화문으로 움직인다. 오전 일정을 맞추기 위해 바로 서울역으로 떠난다. 주말이라 KTX는 전석 매진이다. 무궁화호 밤차를 입석으로 잡아탔다. 두 시간 가량 인파 속에 낀 채로 서 있다 녹초가 되었다. 자존심을 접고 짐칸으로 기어들어가 태아처럼 무릎을 끌어앉고 누웠다.

12월 8일 am 4:16 부산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은 아직 운행하지 않는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한다.

7:38 눈을 떴다. 잠시 졸았던 모양이다. 바로 달렸다.

8:41 범어사에 도착했다. 불길한 고요함. 처마골을 따라 눈이 곱게 쌓였고 대나무 숲이 홀로 푸르다. 스님 한 분이 대웅전 앞뜰에서 빗자루로 눈을 쓸어내고 있다. 빗질 소리마저 쌀쌀하게 들린다. 스님께 문재인 후보의 행방을 물으니 대답한다. “막 서울로 떠나셨네.” 발길을 돌린다. 길게 뻗은 내리막의 눈길 위로 막 찍힌 발자국들에서 온기를 느낄 듯 하다. 간단히 식사하고 서울행 기차에 다시 몸을 실었다.

pm 3:00 서울역에 도착했다. 기자단에 합류하는 것과 바로 광화문으로 향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내려야 한다. 서울역 광장에서부터 민주 노총의 집회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바로 광화문에 가기로 결정했다.

3:19 시청 앞 광장에 붉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후 2시 유세 장소가 광화문 광장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어라, 무슨 일이지? 마침 라디오에서 광화문의 박근혜 후보 유세를 생중계한다. 안철수 전후보가 문재인 후보의 유세에 합류한 후 박근혜 후보는 수도권 집중 유세로 전략을 수정했다고 한다.

3:21 광화문 파이낸스 센터 앞에 내렸다. 정류장 앞에서는 민주노점상 전국 연합의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길 건너 광화문 광장은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의 빨간 물결에 뒤덮였다. 가운데 낀 구세군 자선 냄비가 위태로워 보인다. 구세군 냄비 앞으로 거대한 십자가를 등에 진 남자가 골고다 언덕의 예수처럼 비틀거리며 걷는다. 십자가에는 ‘탈북자 북송 반대’라고 써 있다.

3:26 광화문 광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교육감 후보인 문용린과 이수호,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와 문재인의 포스터가 마주보고 힘을 겨룬다. ‘곽노현 무죄’라고 쓰인 피켓이 눈에 띈다. 바로 옆에 나란히 들린 피켓의 입장은 또 다르다. ‘선덕 여왕 이후 천사백년만에 여성 대통령! 남자 말을 믿느니 개말을 믿자.’ 놀랍게도 그 피켓을 든 사람은 남자였다. 오늘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마저 사이가 불편해 보인다.

3:30 광장 입구를 둘러 경찰들이 인간장벽을 만들었다. 엄청난 긴장감이다. 광장의 군중은 대부분 중장년층이다. 모피코트를 입고 선글래스를 착용한 한 무리의 중년여성들이 박근혜를 연호하고 있다. 몇 분 서 있으니 춥다. 핫팩을 오백원에 파는 노점상이 있어 살까 망설였으나 장갑을 믿어보기로 했다.

3:53 문재인 후보의 포스터가 붙은 행사 차량이 등장했다.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모여 차를 둘러싸고 “박근혜! 박근혜!” 를 외친다. 전운이 감돈다. 결국 노란옷과 빨간옷이 멱살을 잡고 우격다짐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아직 박근혜 차량이 철수하지도 않았는데 왜 들어와! 나가!” “뭐라고요?” “떽! 가만 있어! 젊은 사람이!” “문재인 후보는 준비도 하지 말라는 겁니까?” 연단 위에서 박근혜 후보 유세의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곧 문재인 후보의 유세가 있으니 지지자 여러분은 광장을 비워주시길 바랍니다.” 소용이 없다. 결국 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이 투입되고, 문재인 후보 차량이 광장에 겨우 진입한다. 문재인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은 노란 점퍼와 노란 목도리, 그리고 뾰족한 초록 모자를 썼다. 박근혜 후보 운동원의 컨셉이 산타클로스였다면, 문재인 후보 쪽은 피터팬이다. 자비로운 노인과 영원한 젊은이. 우연치고는 절묘한 대비다. 광장이 회춘하듯 빠른 속도로 젊어진다.

문 후보 유세에서는
태극기 든 사람은 없다
대신 노란 바람개비 물결
광장의 인파는 아주 젊다

4:17 너무 추워 핫팩을 사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노점상에게 돌아가서 핫팩을 달라니 천원을 요구한다. “아까는 오백원이었잖아요.” “그럼 아까 사지 그랬어. 자네들은 젊잖아.” 날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로 여기는 모양이다. 천원에 샀다. 문재인 후보 지원 유세 연설자들이 세종문화회관 까페테리아에 모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4:21 까페테리아로 들어갔다. 작곡가 김형석, 영화배우 문성근, 영화감독 김조광수, 정신과 의사 정혜신, 영화제작자 차승재, ‘나는 꼼수다’의 탁현민, 그리고 유정아 시민캠프 대변인의 모습이 보인다. 두 테이블 떨어진 곳에 앉아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엿들어 보기로 했다. 의외로 대선이나 정치 화두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이효리 이야기가 튀어나와 귀를 쫑긋 세웠으나 쓸만한 정보는 없었다.

4:48 그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오늘은 동행기자가 없어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용기를 내 다가가서 취재 중인데 일정표가 있으면 하나만 달라고 부탁한다. 차승재 씨가 내 손에 들린 핫팩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따뜻해 보이는군요.” 핫팩과 일정표를 바꿨다. 천원에 산 셈이다.

4:55 한겨레에서 취재를 위해 문재인 캠프의 부대변인을 연결해 주었다. 문 후보의 동선 정보를 넘겨받았다. 나는 근접 취재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대변인은 문재인 후보가 최대한 많은 사람과 접촉해야 하기에 취재원의 접근을 따로 배려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는 근접 취재 했는데요. 양쪽을 공평하게 묘사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반협박조로 받아쳤다. 부대변인은 “미안하지만 알아서 취재하라”더니 전화를 끊었다.

4:58 박근혜 후보 유세에서는 태극기를 든 사람이 많았는데, 문재인 후보 유세에서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노란 바람개비가 물결을 이루었다. 사회자로 탁현민과 유정아가 연단 위에 올랐다. 탁현민은 “우리가 이겼다!”, 유정아는 “붉은 무리가 사라졌다!”고 외친다. 구호가 이어진다. 문재인은 정권교체 박근혜는 정권교대, ‘박’차고 ‘문안’으로, 나로호는 우주로 박근혜는 토론장으로. 거기에 탁현민은 “물론 우리 문재인 후보도 토론을 썩 잘하진 못했다”고 덧붙인다. 얼마전 3자토론에서 이정희 후보의 기세에 일방적으로 밀린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광장의 인파는 아주 젊다. 탁현민은 인간적으로 자기 부모님은 자기가 책임지자하고 유정아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경찰도 노란 옷을 입었다고 한다. 박근혜 후보 지원유세 발언이 직설적이고 공격적이었다면 문재인 후보 지원 유세 발언은 감성적이고 냉소적이다. 문재인 후보의 선거 로고송을 부를 차례다. 음악가인 김형석은 노래를 부르면 선거법 위반이므로, 건반만 치기로 한다. 박근혜 후보 측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선거법을 회피하는 셈이다. 이어 영화감독 변영주와 배우 김여진이 연단에 오른다. 변영주는 “박근혜는 자신이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뉴타운정책으로 집을 잃은 진짜 불쌍한 친구들과 술마시면서나 그런 이야기를 하십쇼. 하지만 나는 당신의 친구가 아닙니다.”고 웅변조로 연설한다. 격렬한 호응보다는 숙연한 침묵이 광장에 깔린다. 내 옆의 남학생은 말을 뭐 저리 어렵게 하냐며 투덜거렸다.

5:30 문재인 후보가 도착하는 세종문화회관 뒷편 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보 경호 임무를 맡은 듯한 경찰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 담뱃불이 붙지 않을 정도로 기온이 낮다. 영하 13도라 한다. 집합하라는 경찰 무전이 들어왔다. “기다려보쇼. 추워서 못 가겠다.” 지휘관이 응답하고, 모두 낄낄거린다. 다시 집합하라는 명령이 돌아온다. “얼어서 몸이 안 움직인다니까!” 지휘관은 그렇게 대답하고 무리를 통솔해 자리를 떴다.

6:05 문재인 후보가 오지 않는다. 너무 춥다. 손이 얼어 펜을 쥘 수조차 없다. 잠시 세종문화회관 화장실로 뛰어가 핸드드라이어에 손을 녹인다. 나와 보니 경찰이 안보인다. 그새 후보가 도착한 모양이다. 방향을 바꿔 광화문 광장으로 뛰어갔다.

“맞습니까”라는 의문형 어미로
문 후보는 청중의 동의를 이끈다
그가 안철수와 함께 나타나자
사람들은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6:10 광화문 광장부터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까지 인파가 가득 찼다. 몇 만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뚫고 지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인파 맨 뒷편에 붙어 발끝을 든다. 문재인 후보가 연단에 올라와 심상정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연설을 시작한다. 태도부터 내용까지 박근혜 후보와 대조적이다. 집권 정당의 박근혜 후보가 과거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미래상을 주로 제시한 반면, 야당의 문재인 후보는 과거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날을 세운다. 박근혜 후보의 문장은 ‘하겠습니다’라는 약속형 어미로 자주 끝났고, 문재인 후보의 문장은 ‘맞습니까?’라는 의문형 어미로 청중의 동의를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두드러졌다. 박근혜 후보의 목소리는 온화한 구슬림에 가까웠고, 문재인 후보의 목소리에는 단호한 결의가 도사렸다. 문재인 후보는 숫자와 통계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사용했는데 대중 연설로서는 조금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배심 앞에 선 변호사가 웅변하는 느낌을 주었다. 추위로 연설 중인 문재인 후보의 코에서 콧물이 흘렀다. 후보는 웃으며 콧물을 닦아냈고 유정아 시민캠프 대변인이 목도리를 둘러주기도 했다. 연설을 끝낸 문재인 후보는 연단 아래 군중의 틈으로 홀연 단신 내려갔다. 후보는 사람들 손을 하나씩 잡으며 어마어마한 인파 속을 용감하게 거닐었다. 잔잔한 음악이 깔렸다. 감동을 노린 연출이었겠지만 보기에는 아찔한 느낌을 주었다.

6:36 문재인 후보가 떠났다. 젊은 지지층이 많아서인지 바로 해산하지 않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시간이 이어진다. 대형 콘서트장에 온듯 하다. 나는 바로 버스를 잡아타고 돌아왔다. 문재인 후보는 토론회 준비로 유세 일정이 더 없다는 소식이다. 후보에 근접하지 못해 취재 분량이 충분할지 잠시 걱정했지만, 더 급한 일이 닥쳐 금세 잊어버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죽은듯이 쓰러져 잠들었다. 이틀째 제대로 잠을 못 잤다.

12월 9일 am 10:46 열다섯 시간을 자고 전화벨 소리에 깼다. 안철수 전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긴급 공동유세 일정이 잡혔다고 한다. 어제 근접 취재를 못했으므로 출동하기로 했다. 씻지도 못하고 택시를 잡아 민주당 당사 앞으로 갔다.

11:42 민주당사는 영등포 청과물 시장 앞에 있었다. 경찰 버스가 대기하고 있고 기자단 버스가 곧 도착했다. 한겨레의 석진환 기자를 만나 버스에 올라탔다. 박근혜 후보 유세 취재 때와는 달리 기자는 거의 남자였고, 연령층은 30대 후반 이상이 주를 이뤘다. 기자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김외현 기자가 말한 ‘여당 출입 기자 외모가 더 낫다’는 속설이 마냥 속설은 아닌듯 싶었다. 심지어 내 옆 자리에 앉은 백발이 성성한 노기자는 문재인 후보의 아버지뻘 쯤 되보인다. 수도권 일보 유한태 논설위원이다. “중요한 때라 직접 발로 뛰어요.” 어제는 오후 내내 광화문 현장을 취재했다고 한다. 연세도 있으신데 춥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임종하는 줄 알았다고 대답하였다.

pm 12:32 버스가 출발했다.

1:05 유세 현장인 산본 신도시에 도착했다. 산본 중심상가 광장에 약 300여명이 모여 있었다. 생각보다 적은 숫자였으나 곧 빠른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선거운동원들이 광장에서 산본역사의 구름다리까지 나란히 서서 개선행렬 같은 경로를 만들어냈다. 안철수 전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동선 정보를 받아 도착지점으로 달려갔다.

1:59 남녀 한 쌍이 내 옆에 섰다. 남자가 투덜댄다. “그냥 가자.” 여자가 대꾸한다. “너 혼자가.” “오늘 둘다 온대?” “응. 나 지금 너무 떨려.” “그러냐. 난 추워서 떨려.”

2:03 경광등을 킨 수행 차량이 도착했다. 모두 검은색이다. 의전차량은 그랜저와 오피러스이고, 역시 밴이 섞였다. 안철수 전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동시에 내려서 구름다리로 올라온다.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쏟아낸다. 안철수 전후보는 남색 점퍼 위에 흰색 목도리를 둘렀다. 문재인 후보는 검은색 점퍼 위에 녹색 목도리를 둘렀다. 안철수 전후보는 목도리를 옷깃 안으로 단단하게 감아 길게 뺐고, 문재인 후보는 목도리 매듭을 짧고 정교하게 묶었다. 목도리를 일곱 개 가진 애호가인 나로서도 문재인 후보의 매듭은 처음 보는 형태라 그 방법이 궁금했다. 할머니 한 사람이 구름 다리 아래로 거슬러 내려가려고 하자 경호원이 막아선다. “가시면 안됩니다.” 할머니는 역정을 낸다. “왜 오늘 다들 나를 막어. 이유라도 알자.” 경호원이 말꼬리를 흐린다. “지금 안철수, 문재인 후보가 올라오셔서...” 할머니는 “그래? 알았어. 진작 말해 주지.” 하더니 순순히 뒤돌아 간다. 안철수, 문재인 후보 근처를 둘러싼 사람들은 질문 있다는 듯이 한 손을 높이 처든다. 손 끝에는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이 들렸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공간에 사람이 있었다. 고층건물 창문도 고개를 내민 사람들로 빽빽히 찼다. 커피숍, 고기집, 심지어 은행까지. 도심은 업무마비 상태다. 과연 이 인파를 뚫고 지나가는 게 가능할까 싶다. 후보가 구름다리를 건너가자 사람들이 밀려난다. “떨어지겠어요! 밀지 마세요!” 위태로운 외침. 누군가 문재인 후보의 품에 꽃다발을 안긴다. 문재인 후보는 꽃다발을 측근에 넘긴다. 꽃다발은 바다위 뗏목처럼 머리 위에서 머리 위로 넘겨져 멀리 떨어진 수행원에게로 전해진다. 떨어진 꽃잎이 머리 위로 흩날린다. 후보는 인파 사이로 150여미터를 약 14분 동안 천천히 걸어갔다.

2:17 안철수 전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간이 연단 위로 올라가 손을 붙잡아 올린다. “문재인! 문재인!” 하는 연호 사이로 안철수를 부르는 목소리가 섞인다. 누군가 “안철수 대통령!”이라 외쳤다가 야유를 받기도 한다. 문재인 후보는 마이크 없이 연설한다. 5미터 안쪽에 있는데도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입모양을 읽어 후보의 문장이 끝날 때마다 환호를 보낸다. 두 사람이 내려가고 정식 연단에 사회자가 올랐다. “두 분은 가셨습니다. 연단과 마이크를 쓰지 않는 건 안철수 전후보의 뜻이었으니 존중해주셨으면 합니다.” 사회자는 연단에 김진표, 원혜영, 이학영 의원을 올렸다. 의원들이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지원 유세 발언을 시작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흥미를 잃고 제 갈 길을 갔다. 인파가 모래처럼 흩어지고 언제 꽉 찼냐는 듯이 텅 빈 광장에 서서 한겨레 석진환 기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따로 가겠습니다. 안녕히.” 역시 답신은 돌아오지 않았다.


손아람 작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했고, 힙합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에서 랩퍼로 활동했다. 자전적 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 용산참사 사건 법정을 다룬 소설 <소수의견>을 썼고,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전태일’이란 이름을 가진 전국의 노동자들을 찾아 인터뷰하고 전태일의 삶과 비교 조명하는 글을 <너는 나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에 실었다. 소설가이자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중이다.

■ 손아람 작가의 박근혜 후보 강원 유세 동행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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