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특집
박근혜의 여성성을 묻는다
박근혜의 여성성을 묻는다
2002년 최보은 당시 <프리미어> 편집장은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박근혜를 사유하자!” “박근혜가 대선에 출마한다면 그를 찍겠다.” 여성주의에 밝은 진보적 언론인인 최 편집장의 발언은 이내 여성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여성 정치 참여의 후진성에 대한 역설적, 반어법적 수사였음에도 그의 주장은 일부 진보적인 남성은 물론 여성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대통령 가시권’에 들지 않는 중견 정치인이었을 뿐이다. 박근혜 후보는 당시 ‘이회창 대세론’에 반발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을 탈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10년 뒤 재연된 ‘여성 대통령’ 논쟁은 이제 가정이 아닌 현실이다. 박근혜 후보는 삼자대결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를 시종일관 압도하고, 야권 단일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도 엎치락뒤치락 따라붙는다. 그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탄생 가능성이 높은 때다.
신사임당 수련원에서 군사훈련 하던 시절
정치인 박근혜가 ‘여성’으로서 사유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여성단체의 수장을 맡은 적은 있었다.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인 1974년 박 후보는 걸스카우트연맹 명예총재에 이어 76년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를 맡았다. 구국여성봉사단은 최태민 목사가 만든 대한구국선교단을 이어받은 단체로 여성을 중심으로 정신개조운동을 벌이는 단체였다. 77년부터 박 후보는 ‘새마음 갖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79년 구국여성봉사단이 펴내고 박근혜 후보가 쓴 <새마음의 길>을 보면, 그의 활동은 ‘전국 자동차노조 새마음 직장봉사대 발대식을 끝마치고 접견장에서 안내양들과 환담’(1978년 11월20일), ‘새마음 중고등학생 연합회 발대식에서 결의 선서하는 학생들과 함께 선서’(1978년 9월11일) 등과 같은 것들이었다.
여공과 버스 안내양, 중·고등학생들에게 그는 충·효·예를 강조했다. 국가와 부모가 같다는 ‘충효일본’을 말했다.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조국의 존귀함이 모두 무한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것이 너무 크고 넓을 때 그 무한함을 잊고 살기가 쉽듯, 조국의 은혜, 부모의 사랑은 간과되기 쉬운 것입니다.”(78년 6월21일 서울시 새마음 중고등학생연합회 발대식)
“하늘이 한 복된 국가를 만들고자 하실 때, 직접 하지 않으시고, 우리 인간을 통해서 하실 것이며… 하늘의 뜻을 우리 마음 안에 모시려고 한다면 우선 우리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모실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77년 6월3일 새마음갖기 부산시 시민궐기대회)
그의 연설에서 국가는 때론 종교처럼 비치기도 한다. 박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전면화한 유신시대 국가가 종교화되는 지점에서 박 후보는 전도사처럼 존재하고 있었다.(당시 새로 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를 거부한 기독교인 학생들이 수사기관에 넘겨지기도 했다.) 그는 구국여성봉사단의 수장으로 강연을 다녔고, 가부장적 국가의 온건하고 인자한 설득자, 즉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1977년 11월24일 <매일경제> 사회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린다. “국내 첫 여성 전용 수련원인 사임당 교육원이 24일 준공됐다… 이 교육원은 ‘선진국민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여성상’을 정립하기 위해 주로 여고생·여교사·여성 지도자를 대상으로 국민정신교육, 여성예절, 현장학습 등 단체 합숙훈련을 실시하게 된다… 이날 준공식에서는 교육원 앞뜰에 세워진 신사임당 동상 제막식도 함께 가졌는데, 현판은 박 대통령의 휘호로 새겨졌다.”
유신시대 학생들은 정신개조운동 대상이 된다. 국가와 가족은 동일시됐으며, 남학생에게는 이순신이, 여학생에게는 신사임당이라는 역할 모델이 주어진다. 14일 권인숙 명지대 교수(여성학)는 자신 또한 사임당 수련원에서 ‘불쾌한 추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영애(박근혜)가 온다고 하면 난리가 났죠. 1979년이었을 거예요. 전국의 여고생 간부들을 모아서 강원도 주문진의 신사임당 수련원에 입소했어요. 예절 교육이 끝나면 한복을 교련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에 나가 군사훈련을 받았지요. 학생 대대장은 칼을 찼고….”
그럼에도 ‘잠재적 여성 피해자’ 위험 존재
유신시대 학생 동원의 정점에 박근혜가 있었다고 권 교수는 지적한다. 당시 박 후보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수동적 반려자 역할을 넘어 적극적 동원을 주도하는 구실을 맡았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권위주의적 가부장 국가의 대리인이었다.
“1970년대 여성은 가족과 국가에 희생되는 존재였죠. ‘여공’이 되어 가족을 부양했고 결혼 뒤에는 시댁의 요구를 채워야 했죠. 박근혜는 여학생과 여공을 체육관에 동원하는 주체였습니다. 하지만 여성문제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여성주의 연구팀이 퍼스트레이디 시절의 박근혜의 발언과 연설문을 검토한 결과에서도 여성차별, 성평등 등의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대 여성이 직면했던 문제들-저임금과 가정폭력, 교육 기회의 박탈-은 박근혜의 여성운동에서 없었다.
13일 강금실 전 장관은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연 생명과 여성정치 포럼에서 ‘박근혜 여성대통령론’을 비판했다. 진보 성향의 여성 유력 인사에게서 처음으로 나온 직접 비판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발언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여성은 피라미드 권력구조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당하고 있다. 와이에이치(YH) 여공 사건 때 김경숙이 폭력적 상황에서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그때 박근혜는 어디 있었나? 우리는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가 영구집권 꾀하고
유신시대 국가 종교화 시점에
박근혜는 전도사 같은 역할
가부장 국가의 인자한 설득자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한 것 박근혜는 후광형이면서도
몰성인지적인 전형적 지도자
젠더에 대한 인식 부족한 반면
외모 등 여성적 이미지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 물론 이것이 박근혜의 전부는 아니다. 한 진보적 여성단체의 유력 인사는 14일 인터뷰에서 박근혜의 과거만 평가해선 안 된다며, 그의 다중정체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정치에 뛰어들고 난 이후에도 박근혜의 정체성은 계속 형성됩니다. 어쨌든 그는 ‘차떼기당’ 등 위기에서 당을 구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구축했어요. 무조건 박정희 시대의 퍼스트레이디로 규정해선 안 됩니다.” 이 단체에선 박근혜 후보를 묘사하는 언어로 ‘독재자의 딸’이 금칙어가 됐다. 그가 말했다. “첫번째 이유는 연좌제를 적용해선 안 되기 때문이지만, 두번째는 그가 단순히 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유신정권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구국여성봉사단과 새마음운동을 통해 실제로 정치 일선에 나서 여성을 동원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박근혜는 ‘여성’이다. 그 또한 남성 중심적 사회를 활보하는 여성 편견에 노출되어 있고 잠재적 피해자가 될 위험을 안고 산다. 과거 청와대 시절 박 후보의 멘토로 알려진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에 대한 의혹 제기나 2004년 ‘박근혜 패러디’(한 누리꾼이 청와대 누리집에 영화 <해피엔드>의 상반신 일부가 드러난 포스터를 패러디해 올린 사건)에서 볼 수 있듯, 박근혜 또한 ‘여성의 몸’으로 환원되는 측면이 있다.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가 2007년 결혼설을 퍼뜨린 것도 박 후보가 남성 미혼 정치인이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다. 이달 초에는 새누리당의 ‘여성 대통령론’에 대해 정성호 민주당 대변인이 “출산과 보육 및 교육, 장바구니 물가에 대해 고민하는 삶을 살지 않았던 박 후보에게 여성성은 없다”고 맞받아친 적이 있다. 당시 진보·보수 여성단체 모두는 이 발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다양한 층위의 여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여성을 결혼한 아줌마로 일반화하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진보·보수 막론하고 여성단체들 침묵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세계 여성정치 지형에서 어떤 의미를 띠게 될까? 적어도 동북아시아에서는 여성 최초의 최고 지도자가 탄생하게 된다. 한국정치학회의 정미애 박사(여성분과위원장)는 아버지나 남편의 죽음, 정치적 탄압 등을 계기로 정치의 길을 걷게 된 ‘후광형’과 스스로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자수성가형’으로 여성지도자를 나누는 흥미로운 분석을 시도했다. 또한 사회적 성(젠더)에 대한 인지도, 여성정책과 리더십 등을 분석해 이들을 ‘성인지적 리더’와 그렇지 않은 ‘몰성인지적 리더’로 분류했다. 정 박사의 분류를 보면, 아시아에선 후광형 여성지도자가 많고 대부분 몰성인지적이다.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과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가 이에 해당한다. 두 지도자는 여성주의적 정책에 무관심하지만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을 구사한다. 반면 서구에서는 자수성가형이 주류인 가운데 성인지적 지도자와 몰성인지적 지도자가 혼재한다. 프랑스의 2007년 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이 자수성가형 성인지적 지도자라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자수성가형 몰성인지적 지도자다. 그럼 박근혜 후보는 어떨까? 그는 후광형이면서도 몰성인지적인 전형적인 아시아 여성지도자다. 메가와티, 수치와 이런 점에서 비슷하지만 남성적이라고 통칭되는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구사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또 다르다. 박 후보의 소속 정당인 새누리당이 여성정책에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온데다 그 또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가부장적 국가체제와 결별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정 박사는 “박 후보는 젠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반면 외모 등 여성적인 이미지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라며 “남성 리더십을 가졌고 성인지적 관점도 결여됐지만 언제나 스커트를 입고 다녔던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의 한국여성단체연합이나 보수 성향의 여성단체협의회는 과거 대선에서도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박근혜 여성 대통령론에 대해서 말하는 것조차 꺼리는 게 요즈음 분위기다. 반여성성을 비판하기에는 1990년대부터 독자적으로 구축한 ‘성공한 정치인’의 이미지가, 여성대통령으로서 지지하기에는 ‘가부장제 대리인’으로서의 박 후보의 과거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성계에서 박근혜 여성대통령론은 비평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10년이 지나도록 ‘여성 정치인 박근혜’를 사유하지 않은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해명 없이 대선에 임박해 여성 대통령을 부르짖는 박근혜 자신 때문이기도 하다. 남종영 이유진 기자 fandg@hani.co.kr
1978년 6월1일 서울 구로공단의 한국수출산업공단(현 한국산업단지공단) 운동장에서 열린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에서 당시 박근혜 구국여성봉사단 총재가 여성 노동자(여공)들의 사열을 하고 있다. <새마음의 길>
유신시대 국가 종교화 시점에
박근혜는 전도사 같은 역할
가부장 국가의 인자한 설득자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한 것 박근혜는 후광형이면서도
몰성인지적인 전형적 지도자
젠더에 대한 인식 부족한 반면
외모 등 여성적 이미지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 물론 이것이 박근혜의 전부는 아니다. 한 진보적 여성단체의 유력 인사는 14일 인터뷰에서 박근혜의 과거만 평가해선 안 된다며, 그의 다중정체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정치에 뛰어들고 난 이후에도 박근혜의 정체성은 계속 형성됩니다. 어쨌든 그는 ‘차떼기당’ 등 위기에서 당을 구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구축했어요. 무조건 박정희 시대의 퍼스트레이디로 규정해선 안 됩니다.” 이 단체에선 박근혜 후보를 묘사하는 언어로 ‘독재자의 딸’이 금칙어가 됐다. 그가 말했다. “첫번째 이유는 연좌제를 적용해선 안 되기 때문이지만, 두번째는 그가 단순히 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유신정권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구국여성봉사단과 새마음운동을 통해 실제로 정치 일선에 나서 여성을 동원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박근혜는 ‘여성’이다. 그 또한 남성 중심적 사회를 활보하는 여성 편견에 노출되어 있고 잠재적 피해자가 될 위험을 안고 산다. 과거 청와대 시절 박 후보의 멘토로 알려진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에 대한 의혹 제기나 2004년 ‘박근혜 패러디’(한 누리꾼이 청와대 누리집에 영화 <해피엔드>의 상반신 일부가 드러난 포스터를 패러디해 올린 사건)에서 볼 수 있듯, 박근혜 또한 ‘여성의 몸’으로 환원되는 측면이 있다. 허경영 민주공화당 총재가 2007년 결혼설을 퍼뜨린 것도 박 후보가 남성 미혼 정치인이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다. 이달 초에는 새누리당의 ‘여성 대통령론’에 대해 정성호 민주당 대변인이 “출산과 보육 및 교육, 장바구니 물가에 대해 고민하는 삶을 살지 않았던 박 후보에게 여성성은 없다”고 맞받아친 적이 있다. 당시 진보·보수 여성단체 모두는 이 발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다양한 층위의 여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여성을 결혼한 아줌마로 일반화하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진보·보수 막론하고 여성단체들 침묵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세계 여성정치 지형에서 어떤 의미를 띠게 될까? 적어도 동북아시아에서는 여성 최초의 최고 지도자가 탄생하게 된다. 한국정치학회의 정미애 박사(여성분과위원장)는 아버지나 남편의 죽음, 정치적 탄압 등을 계기로 정치의 길을 걷게 된 ‘후광형’과 스스로 정치적 권력을 획득한 ‘자수성가형’으로 여성지도자를 나누는 흥미로운 분석을 시도했다. 또한 사회적 성(젠더)에 대한 인지도, 여성정책과 리더십 등을 분석해 이들을 ‘성인지적 리더’와 그렇지 않은 ‘몰성인지적 리더’로 분류했다. 정 박사의 분류를 보면, 아시아에선 후광형 여성지도자가 많고 대부분 몰성인지적이다.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대통령과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가 이에 해당한다. 두 지도자는 여성주의적 정책에 무관심하지만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을 구사한다. 반면 서구에서는 자수성가형이 주류인 가운데 성인지적 지도자와 몰성인지적 지도자가 혼재한다. 프랑스의 2007년 사회당 대선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이 자수성가형 성인지적 지도자라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자수성가형 몰성인지적 지도자다. 그럼 박근혜 후보는 어떨까? 그는 후광형이면서도 몰성인지적인 전형적인 아시아 여성지도자다. 메가와티, 수치와 이런 점에서 비슷하지만 남성적이라고 통칭되는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구사한다는 점에서 이들과 또 다르다. 박 후보의 소속 정당인 새누리당이 여성정책에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온데다 그 또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가부장적 국가체제와 결별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정 박사는 “박 후보는 젠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반면 외모 등 여성적인 이미지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라며 “남성 리더십을 가졌고 성인지적 관점도 결여됐지만 언제나 스커트를 입고 다녔던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의 한국여성단체연합이나 보수 성향의 여성단체협의회는 과거 대선에서도 특정 후보를 공개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박근혜 여성 대통령론에 대해서 말하는 것조차 꺼리는 게 요즈음 분위기다. 반여성성을 비판하기에는 1990년대부터 독자적으로 구축한 ‘성공한 정치인’의 이미지가, 여성대통령으로서 지지하기에는 ‘가부장제 대리인’으로서의 박 후보의 과거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성계에서 박근혜 여성대통령론은 비평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10년이 지나도록 ‘여성 정치인 박근혜’를 사유하지 않은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해명 없이 대선에 임박해 여성 대통령을 부르짖는 박근혜 자신 때문이기도 하다. 남종영 이유진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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