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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세월호·가습기 참사는 느닷없이 일어나지 않았다”

등록 2022-09-03 12:00수정 2022-09-03 12:26

[한겨레S] 특집
두개의 사회적 참사 보고서가 남긴 교훈

다르면서도 닮은 두 참사에서
책임회피와 무능한 국가 목격
피해자들은 이중의 고통 겪어
“개인 잘못 아닌 사회적 참사”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해경, 해군, 민간선박 등이 세월호 실종자 구조와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해경, 해군, 민간선박 등이 세월호 실종자 구조와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1.

지난 8월3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11주기 행사가 열렸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세상에 알려진 날을 기억하면서 희생자들의 사진과 유품을 전시하고 추모하는 자리였다.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 되어 사망했다고 신고한 사람은 1700명이 넘는다.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썼다는 점을 빼고는 공통점이 없는 남녀노소 각지의 희생자들은 이것이 오랜 세월 일상에서 지속되고 확산된 참사임을 증언해주었다.

마침 그다음날인 9월1일에는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두권의 종합보고서를 발간했다. 2011년 이후 처음으로 국가 조사기관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보고서, 그리고 2018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의 침몰 원인 보고서 이후 두번째로 국가 조사기관에서 내놓는 세월호 참사 보고서가 담겼다. 참사별로 300쪽 정도의 분량에 참사의 원인과 경과를 서술하고 위원회의 권고안을 제시했다.

이번 조사위원회는 두 참사를 합하여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라고도 불린다. ‘사회적 참사’라는 말은 어떤 재난의 원인이 개인의 잘못이나 불운에 있지 않으며, 그 피해 역시 개인이 감당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의지를 담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세월호 참사가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밝히기 위해 오랜 기간 공적 자원을 투여해온 것이 바로 이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3년 반에 걸친 사참위의 조사 결과를 정리하여 두 참사의 종합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았다. 방대한 조사 내용을 짧은 시간에 검토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풀어 쓰는 일은 보람되면서도 힘에 부쳤다.

지난 8월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가습기살균제 희생자 가족들이 고인들의 유품을 전시하며 추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8월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가습기살균제 희생자 가족들이 고인들의 유품을 전시하며 추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

재난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괴로운 것은 대부분의 재난이 사람의 힘으로, 즉 제도와 실천을 통해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조사를 담당한 사람도, 조사 결과를 정리해서 보고서를 쓰는 사람도 몇번이나 부질없는 가정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만일 기업과 연구자들이 물질과 제품의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했다면? 만일 화학물질 심사 당국이 의심스러운 부분을 간과하지 않고 한걸음 더 들어가 살펴보았다면? 만일 세월호의 선박 안전관리가 규정대로 이뤄졌다면? 만일 신속하게 인명을 구조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해경이 있었다면?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생활화학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기업들의 안전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 그리고 이를 심사, 평가, 관리하는 정부 당국의 안이함이 축적된 결과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사회가 위험을 다루는 방식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살균 물질의 안전성을 확인하지 않았으면서도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한 유공(에스케이케미칼)의 1994년 첫 제품 출시 이후 옥시, 애경, 엘지생활건강 등 기업들이 잇따라 제품을 내놓으면서 위험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안전하겠지’, ‘괜찮겠지’라는 믿음이 모래성처럼 쌓이는 동안 곳곳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경고 신호는 포착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모래성의 붕괴를 자기 일로 여기지 않았다. 피해가 널리 알려진 2011년 이후 기업과 정부 모두 책임을 회피하고, 축소하고, 떠넘기려 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피해자는 소외되고 고통받았다.

이와 비슷한 무능과 무책임은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와 수습 현장에도 만연했다. 종합보고서는 세월호의 선장, 선원, 해경 지휘부와 현장 출동 세력을 지목하면서 그들의 “무책임은 조직적이었고 임무 방기는 집단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선장과 선원들은 조타실에 모여 해경을 보내달라고 연락했을 뿐 승객을 대피시켜야 하는 자신들의 의무는 망각했다. 해경은 세월호의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지도 않은 채 눈에 보이는 승객만을 구조했다. 해경 지휘부는 선내에 승객들이 다수 있다는 정보를 파악해 현장에 전달하고 구조를 지휘하는 임무를 하지 않았다. 모두가 각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동안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던 승객들은 물에 잠겼다.

3.

두 참사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위험을 막고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무능하고 소극적이지만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를 괴롭히는 데에는 유능하고 적극적인 국가였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문제로 규정했던 정부의 방관적 태도는 이미 화학물질로 신체가 파괴된 피해자들을 더 오랫동안 괴롭게 했다. 기업의 방어 전략과 정부의 책임 회피로 인해 피해자가 피해자로 인정받는 것에도 긴 싸움이 필요했다. 아직도 많은 피해자가 그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에 책임을 물으려는 시도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고,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 경찰을 통해 법적으로 허용된 권한을 넘어 유가족을 사찰했다. 사회 전체가 겪고 있는 비극을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 정부는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도 최선을 다해 방해했다. 진상 규명의 과정이 참사를 더 길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사참위 종합보고서는 두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이 각각 이중의 고통을 겪었음을 보여준다. 최초의 고통은 생활화학제품과 여객선 침몰로 인해 발생했지만 그다음 고통은 참사에 대응하고 피해자를 지원해야 하는 책무를 방기한 정부 때문에 생겨났다.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는 두 참사를 연결하는 것은 결국 피해자들의 고통을 인정하고 치유와 회복을 위해 나설 의지와 역량이 없었던 한국 정부였다. 두 참사는 서로 다르면서도 닮아 있었다.

4.

사참위 종합보고서 집필의 가장 큰 난관은 세월호 침몰 원인 조사 결과를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사참위의 침몰 원인 조사는 세월호라는 배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 침몰하게 되었다는 선조위의 조사 내용(내인설)을 하나씩 부정하고, 세월호가 사고 당일 갑작스러운 외부 충격 때문에 침몰했을 가능성(외력설)을 조금씩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잠수함’이라는 단어는 조사 기간 막바지에야 정식으로 등장했지만, 사참위의 침몰 원인 조사가 처음부터 내인설을 기각하고 외력설을 지지하는 쪽으로 설계됐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세월호가 잠수함 등의 외부 물체와 충돌했다는 증거를 찾으려 했던 사참위의 조사는 위원회 밖의 전문가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조사 활동 종료를 불과 몇달 남겨두고 사참위의 검토 요청을 받은 대한조선학회는 학회 산하 해양안전위원회의 논의를 거처 사참위 조사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공식 의견서를 보냈다. 해양안전위원회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사참위 전원위원회에 직접 출석해서 사참위의 침몰 원인 분석의 문제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잠수함 충돌 가능성을 단호하게 기각하는 대한조선학회의 검토 의견은 사참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사참위 조사관들과 대한조선학회 대표단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면서 회의는 마냥 길어졌고 조사보고서 의결은 수차례 연기됐다.

사참위의 의뢰를 받아 세월호 모형 시험을 실시한 네덜란드 마린 연구소의 최종보고서도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모형 시험은 (세월호의) 과도한 횡경사가 외력의 작용을 도입할 필요 없이 내적 요인에 의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결론을 담은 마린의 최종보고서는 5월 하순에 도착했지만, 사참위 위원들은 6월10일 조사 활동 종료 직전까지도 이에 대해 제대로 토론하지 않았다. 마린 보고서의 본문은 모두 28쪽이었다.

사참위는 대한조선학회와 마린의 견해를 침몰 원인에 대한 위원회 공식 결론에 직접 반영하는 대신 종합보고서에서 외부 의견으로 ‘소개’하기로 결정했다. 사참위 조사 내용을 설명한 다음 외부 전문 기관의 견해를 여러쪽에 걸쳐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판단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사참위 위원들이 합의하여 도출한 공식 입장은 “사참위 조사 결과가 외력 충돌 외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으며 외력이 침몰의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애매모호한 문장을 해독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았다.

사참위 위원들은 침몰 원인을 서술하는 종합보고서 제2장에 선조위의 내인설, 즉 출항 당시부터 세월호라는 선박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들어가는 것을 꺼렸다. 우리가 사참위에 제출한 2장 초고의 첫 문장은 “세월호 참사는 느닷없이 일어나지 않았다”였다. 세월호 침몰의 배경에 여러 요인이 쌓여 있었음을 지적하는 이 평범한 문장을 두고 사참위 위원들은 내인설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면서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세월호는 승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상태로 출항했다”라는 문장을 새로 써서 제출했고, 이것이 종합보고서 편찬자문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2장의 첫 문장이 되었다. 새로 쓴 문장도 세월호라는 선박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왜 수정이 필요했는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침몰 원인 규명 작업이 내인설에서 공학적인 검증이 어려운 부분만을 부각시키고 외부 물체 충돌 가능성을 탐구하는 쪽으로 쏠리면서 세월호 참사를 낳은 구조적 원인은 조사 기획 단계부터 배제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조사가 위험한 제품이 시장에 나오게 된 경위에 집중한 반면, 세월호 도입, 증개축, 운항 과정 등은 이미 충분히 조사되었다며 아예 조사 과제로 설정하지 않았다. 사참위 이전에 실시된 조사 결과를 정리하고 인용해서라도 종합보고서에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담아야 한다는 유가족 일부와 보고서 필진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해진해운의 부실한 화물 관리와 운항 관행 등 오래 누적된 문제들이 결국 2014년 4월16일 세월호를 침몰에 이르게 했다는 간략한 서술은 침몰 원인을 다루는 2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종합보고서의 결론인 7장으로 옮겨졌다.

5.

사참위 종합보고서는 두 참사의 모든 것을 기록했는가? 그렇지 않다. 참사 피해자들은 이 보고서에서 충분한 위로와 존중을 느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사참위 종합보고서가 나온 것은 잘된 일인가? 그렇다. 여러 제약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우리는 공동체에 닥친 거대한 비극을 조사함으로써 배울 것을 배우고 고칠 것을 고치는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다. 참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을 사회 전체의 공적 책무로 삼게 된 것이다. 사참위 종합보고서의 역사적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참사를 다룬 두개의 보고서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문장이 딱 하나 있다. “기업과 정부의 책임은 너무나 크고 분명하여 이 책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세월호보고서 317쪽, 가습기살균제보고서 286쪽)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을 이렇게 선언함으로써 사참위 보고서는 지금껏 손쉽게 피해자를 비난해왔던 관행을 끊어내고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에, 다음 참사의 예방과 대응에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사참위는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가 개인의 잘못이나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인 원인과 책임이 분명한 ‘사회적 참사’임을 확인한 것이다.

‘사회적 참사’는 또한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의 책임도 함께 불러일으킨다. 조사위원회는 보고서 발간과 동시에 해산하지만, 그 보고서를 도서관 구석에 묵혀두지 않고 이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사용하는 것은 참사 피해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에게 남은 책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종합보고서 결론의 마지막 구절은 모든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우리 모두의 다짐이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기업과 정부가 당신을 위험에 빠뜨렸고, 책임을 회피했고, 정의를 지연시켰습니다. 그 잘못을 바로잡을 책임도 기업과 정부에 있습니다. 그 회복 과정에 모두 함께하겠습니다.”

※공동기고 필자 명단: 사참위 종합보고서 집필위원 전치형(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이두갑(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유상운(한밭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오철우(한밭대 인문교양학부 강사), 박상은(충북대 사회학과 박사과정/플랫폼C 운영위원), 오민애(법무법인 율립 변호사) + 보조집필인 강미량(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김성은(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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