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대선주자 탐구 정세균
정치인 삶의 빛과 그림자
정치인 삶의 빛과 그림자
대기업 임원출신 “민주화 운동에 빚”
정치 입문 뒤에도 대체로 주류
주택임대 전환정책 등 눈길
올초 논문표절 논란에 발목 잡혀 정세균은 이력이 화려하다. 산업자원부 장관(2006~2007년)과 3번의 당 대표(열린우리당 2번, 민주당 1번)를 거치며 4선을 쌓았다. 국민의 정부·참여정부를 거치며 당 정책위의장, 원내대표도 했다. 난하게 당선될 수 있는 전북의 ‘무주·진안·장수·임실’ 지역구를 스스로 버리고, 19대 총선에선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출마해 당선됐다. 정세균은 ‘콘텐츠’가 있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7권의 저서를 대부분 직접 썼다고 한다. ‘분수(噴水)경제론’이라는 용어도 직접 작명했다. 대기업과 부자들이 많은 돈을 벌면, 그 물방울이 아래의 중산층과 서민들에게도 떨어진다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정면으로 비판한 논리다. 정세균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내놓은 정책들도 눈에 띈다. 주택임대 전환정책이 대표적이다. 집값 폭락으로 은행 대출금을 갚을 길이 없어진 이른바 ‘하우스푸어’들을 위해 이들의 집을 정부가 사서 되빌려 준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정세균을 대선주자로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현재 진행중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4일 경남 경선까지 누적 지지율 11.1%로 꼴찌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선 후보 대신 당 대표에 나서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1950년 전북 진안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정세균은 1971년 고려대 법대에 진학한다. 유신헌법에 비판적이던 은사가 고문당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정권에 저항하는 대열에 합류했고, 학보사를 거쳐 1974년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졸업 이후엔 대기업인 쌍용에 입사해 9년간 해외지사에 근무했고, 임원 자리에도 올랐다. 세계를 보는 눈은 얻었지만, 1987년 6월항쟁 등 민주화의 현장에서 떠나있었다. 야권의 거물 정치인들이 대부분 70~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성장하고 도약했던 과정을 그는 거치지 않았다. 지난해 펴낸 <정치에너지 2.0>이란 책에서 그는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몸바쳤던 이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민주화운동 경력이 없고, 대기업 임원 출신이라는 점은 정치색이 모호하다는 평으로 이어졌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동교동 조직의 주축이던 ‘연청’ 회장을 맡는 등 늘 주류에 속했다. 정동영·천정배·신기남 등 그와 동지관계에 있던 이들이 16대 국회에서 ‘정풍 운동’에 나설 때도 그는 뒤쪽에 머물렀다. 그러다보니 정치적 컬러를 분명하게 만들어내지 못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정세균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없다”며 “자신만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현재까지 그의 정치적 한계”라고 평했다.
물론, 정세균에게도 지역과 세력이 있다. 전북지역 의원 10명 중에 4명이 ‘정세균계’로 불린다.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발족한 캠프에는 17명의 현역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전북지역 사정에 밝은 한 민주당 당직자는 “정세균을 전북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정세균의 전북경선 득표율이 그 상황을 대변한다. 득표율이 26.5%로 2위에 올랐지만, 3위인 손학규 후보와의 격차는 3%에 불과했다.
계파정치에 강하다는 평도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정세균은 자기 계파가 아닌 이들과는 많은 교류를 하지 않는다”며 “대신 자기 동아리 관리에는 탁월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 계파공천 논란이 극심했을 때 민주당 내부에서는 “에스케이(SK·정세균 약칭)가 제일 실속을 차렸다“는 말이 거듭 나왔다.
정세균에게 가장 큰 정치적 타격을 준 사건은 2007년 1·2개각 당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하다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간 사건이다. 장관 인사가 난 뒤 만난 기자들에게 “개각 때마다 잠잘 때도 머리맡에 전화통을 두고 기다렸는데, 이번에야 전화가 오더라”며 만족스러워했지만, 당내에서는 당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올 2월 빚어진 논문표절 논란도 정세균의 발목을 잡는다. 새누리당은 4·11총선 직전에 정세균이 2004년 2월 경희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1991년 6월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제출된 이아무개씨의 석사학위 논문의 상당 부분을 베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이 두 논문을 대조한 결과 3개 대목의 17쪽 분량이 똑같았다는 것이다. 정세균은 사석에서 “2004년은 여당 정책위의장을 맡아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잠 자는 시간 줄여가며 쓴 논문이었는데 억울하다”고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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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일 오후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전북 합동연설회에서 단상에 올라 당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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