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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진보당 자기쇄신 못한 이유…고비마다 매파가 압도

등록 2012-05-28 20:19수정 2012-06-13 08:23

[뉴스쏙] 경선부정 파문 왜 더 꼬였나

5월2일 당 내부 조사보고서 발표를 시작으로 정치권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던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사태가 한 달 가까이 흘렀다. 29일로 19대 국회 개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외부의 거센 비판에 따른 당 내부 쇄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 달 동안 과연 진보당 내부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석기·김재연 당선자는 출당이 되더라도 의원직이 유지된다. 당에 사퇴서를 낸 윤금순 당선자도 사퇴를 거부한 조윤숙 후보가 출당되기 전까지는 국회의원 신분이다. 비례대표 6명을 포함해 지난 총선 때 당선된 13명 모두 일단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반면 유권자들은 한 달 동안 통합진보당의 진통을 지켜봤을 뿐 눈에 보이는 ‘쇄신책’이나 그 결과물을 받아보지 못했다. 통합진보당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보수언론과 검찰이 끼어들 빌미마저 줬다.

사태가 여기까지 흘러온 데에는 당 운영을 책임졌던 당권파들의 ‘버티기’와 정치적 오판 탓이 크다. 당 안팎에서는 초반에 당권파의 핵심인 이석기 당선자가 선제적으로 사퇴를 했더라면 상황이 이렇게 악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정 개인과 정파의 책임을 넘어 우리 진보정당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진보정당이 기성정당에 비해 타협과 절충, 양보와 역지사지 등 내부의 이견을 조율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 내부에서 쇄신책에 타협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국면마다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운 ‘강경 매파’가 중재안을 모색했던 ‘온건 비둘기파’를 눌렀다. ‘내가 옳고 당신이 틀렸다’는 유아독존의 논리 앞에 각 정파의 비둘기파는 소수로 고립됐다.

당권파 매파들
진상보고서 부실 확인 뒤 초강경 모드로 돌아서

비당권 비둘기파
진상조사 뒤 당원투표 중재안 냈다가 좌절

5월2일 진상조사 보고서가 발표될 즈음, 참여당 출신 인사들이 모여 사태 해결책을 논의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참여계는 사태의 해법으로 ‘비례대표 경쟁부문 총사퇴’ 방침을 정했다. 비례의석 1석을 반납하는 초강수였다. 유시민·천호선·권태홍 등 참여당 출신 핵심 인사들이 대부분 이에 동의했지만, 당시 비례대표 후보로 나섰던 노항래 당 정책위의장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대표단이 총사퇴를 하는 만큼, 경쟁부문 전원 사퇴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여당 출신들은 이후 사태 수습 과정에서도 줄곧 강경론을 주도했다. 당 통합 이후 치른 총선에서 당권파에 철저히 소외돼 당선자를 1명(강동원, 전북 남원·순창)밖에 내지 못했다는 상실감이 이런 강경론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5월4~5일로 이어진 당 전국운영위원회 파행도 양쪽 강경파의 입김을 키운 측면이 있다. 이날 이정희 대표는 “진상조사위가 당원을 모함하고 모욕 줄 권한은 없다”며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당권파 내부 매파들이 진상조사 보고서의 부실함을 확인한 뒤 ‘초강경 모드’로 돌아선 것이다. 전날까지도 당권파 내부에선 ‘경쟁부문 비례대표 전원 사퇴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당시 당권파 쪽 한 국회의원 당선자는 “진상을 제대로 드러낸 뒤 적어도 대선 때까지는 비당권파에게 당권을 넘기고 떠나는 ‘조직적 퇴각’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국운영위 이후 이런 비둘기파의 의견은 설 자리를 잃었다.

폭력사태가 발생한 5월12일 중앙위원회 전날 밤에도 ‘고비’가 있었다. 당시 당권파를 비롯해 비주류인 참여계, 인천연합, 울산연합, 진보신당계 등 5자가 모여 중앙위 파행을 막기 위한 협상을 했다. ‘정확한 진상조사 이후 당원총투표’ 형식으로 출구전략을 마련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아갔고, 진보신당계로서 중앙위 의장을 맡기로 돼 있는 심상정 대표도 각 정파가 그렇게 합의한다면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중재안에 대해 참여계 출신을 비롯한 비당권파의 강경파들이 “적당한 봉합으로 비치면 국민이 수긍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막판에 무산됐다. 당시 강경한 입장이었던 한 인사는 “이참에 (당권파의 패권주의를) 뿌리뽑느냐 마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에 봉합이나 중재는 곧 당권파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는 과정에서부터 국회 개원을 앞둔 현재까지도 양쪽의 매파가 논의를 주도하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강기갑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출범 전부터 양쪽의 중재를 시도하려는 대표적인 비둘기파였다. ‘당원투표 50%, 여론조사 50%’로 비례후보 거취를 결정하자는 중재안을 내기도 했고, 비대위의 핵심인 집행위원장 인선 때도 당권파 쪽의 참여와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재연 당선자의 거취 문제다. 강 위원장은 애초부터 ‘이석기 당선자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더라도, 청년비례 후보인 김재연 당선자는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대위 내부 강경파들이 청년비례인 김 당선자를 사퇴 대상인 ‘경쟁 부문’으로 분류했을 때도 강 위원장은 다른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청년비례 경우 사실은 경선비례 후보가 아니었고, 전략비례 후보였다. 김 당선자가 거기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고, 저희들도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양쪽의 매파 모두 ‘이석기·김재연’을 한 묶음으로 보고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있어, 강 위원장이 염두에 뒀던 중재안은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당권파 내부에선 이상규 당선자가 “국민의 눈높이에서 해결해야 한다. 한 발짝씩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5월9일 당권파 지역구 당선자들이 ‘진상조사 보고서를 폐기하라’고 주장한 기자회견문에 이름을 올리지 않기도 했다. 또 강기갑 비대위원장과 협상 창구로서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당선자 간담회에서도 민심의 흐름을 봐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강 위원장과 이 당선자의 이런 시도들은 당권파 쪽 매파의 ‘선 진상조사 뒤 비례대표 거취 결정’ 주장과, 비대위 매파의 ‘경쟁부문 사퇴 거부 당선자 출당’ 주장에 막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두 세력을 중재하기 위해 당내에서 부산·울산·경남 세력이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마찬가지로 역부족이었다. 지난 22일 이 지역 당원 100명이 출당·제명 절차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어 ‘전 당원 여론조사’라는 해법을 제안했지만, 양쪽 모두 이를 비중있게 고려하지 않았다. 부·울·경 지역의 한 인사는 “당권파는 이미 정치적 타살을 당했다. 퇴로도 안 열어주고 출당시키겠다는 것은 정말 분란으로 가자는 이야기”라며 “진보정당에서 한 세력이 다른 세력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중재안을 낸 취지를 설명했다. 당권파 내부에서도 이의엽 전 정책위 의장 같은 이들은 “비례대표 거취 문제는 해결이 가능하다”며 협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는 “비대위가 당을 조기에 정상화하고 검찰 수사에 공동대응하겠다는 부분만 확실히 합의되면, 비례대표 당선자 거취 문제는 얼마든지 정리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상황을 극단으로 끌고 가려는 양쪽 매파들의 시각은 같은 당원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의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당권파 쪽 매파들은 이번 사태를 ‘조직보호 투쟁’의 성격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당권파 쪽 한 인사는 “이석기·김재연 당선자가 사퇴하는 것은 수구세력에 항복하는 것이다. 사퇴해도 보수언론과 검찰은 다음 승계자를 노릴 것”이라며 “경선부정 사건을 계기로 색깔론을 씌웠는데, 우리가 항복하면 그다음엔 돈 문제나 조직사건을 터트려 진보진영 전체를 궤멸시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당권파 쪽의 매파들은 여론에 기대어 확실한 당내 주도권을 쥐려는 구상이 있는 것 같다. 비당권파 쪽 한 인사는 “강 대 강으로 가야 한다. 중재를 시도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행태일 뿐, 타협하면 원한과 감정이 쌓여 나중에 결국 파국이 또 올 것”이라며 “이 기회에 확실히 밀어붙여야 진보정치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뒤에도 밀실 운동권 시절의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이들과, 자신들이 아니면 진보정치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한 정당 안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석진환 조혜정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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