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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착한 문학청년…장래희망은 교수·언론인
김상진 죽음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등록 2012-01-02 20:26수정 2012-01-04 16:12

다양한 민주화운동 단체의 태동기였던 1985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등의 동지들은 등반을 함께 하며 재야세력의 연대를 모색했다. 뒷줄 왼쪽부터 고 김도연, 이부영 전 의원, 김정환 시인, 김종철 전 <한겨레> 논설위원, 정희성 시인, 한 사람 건너 신경림 시인, 앞줄 맨 오른쪽 고 성래운 교수.
다양한 민주화운동 단체의 태동기였던 1985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등의 동지들은 등반을 함께 하며 재야세력의 연대를 모색했다. 뒷줄 왼쪽부터 고 김도연, 이부영 전 의원, 김정환 시인, 김종철 전 <한겨레> 논설위원, 정희성 시인, 한 사람 건너 신경림 시인, 앞줄 맨 오른쪽 고 성래운 교수.
그때 그 사람가장 온순했던 열혈투사 김도연
누군가 말했다. 우리들의 1970년대와 80년대는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내는 부정한 시기였다고.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바로 그때였다. 김도연(1952~93)이야말로 가장 온순했던 인간을 가장 열렬한 투사로 만든 시대의 산물이요 그 전형이었다.

김도연은 모든 착하고 온순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70년대 초 그 격동의 시절을, 대학 4학년까지 아무 탈 없이 견뎌냈다. 그는 문학청년이었고, 장래희망은 대학교수나 언론인이 되는 것이었다. 1년만 잘 넘기면 무사히 졸업할 수 있있던 75년 4월11일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의 죽음은 그의 인생 항로를 바꾸어 놓았다.

‘침묵하는 자여, 심판받으리라. 지하에서 지켜보겠다’는 김상진의 유언은 그를 더이상 침묵 속의 방관자로 놓아두지 않았다. 김도연은 이른바 ‘오둘둘(5·22) 시위’에 가담한다. 유신정권에 가장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75년 5월22일 낮, “모여라” 하는 고함 속에 순식간에 1000여명의 학생이 모여들어 김상진의 장례식은 제문·조시·조사·선언문까지 예정된 절차대로 진행됐다. 그때 집회의 사회를 맡은 것이 바로 김도연이었다. 그는 주모자는 아니었지만 ‘증거’가 명백한 탓에 2년2개월을 감옥에서 복역했다. 관련자 중 최고의 형량이었다.

감옥에서 그는 죽는 날까지 정치적 동지가 되었던 선배 이부영을 만났다. 이후 민중을 위해 약자들 편에 서서 살아가기로 결심한 그는 80년대 내내 민주화운동에 헌신적으로 투신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민중문화운동협의회(민문협),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등을 창립하거나 살림을 도맡아 했다.

90년대 들어 그는 재야의 정치세력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90년 3월 전민련에서 격렬한 논쟁 끝에 정치세력화 결의안이 부결되자 이부영과 함께 전민련을 탈퇴해 민중의 정당 건설을 위한 민주연합추진위원회(민연추)를 결성했다. 이어 통합수권정당추진회의(통추회의) 등을 거쳐 민주당에 입당해 정치인의 길로 나섰다. 민주당의 중앙당 기획조정실장 겸 인천 북구갑지구당 위원장, 중앙당 기관지 <민주광장>의 주간 등으로 맹활약하던 그는 93년 교통사고로 돌연 우리 곁을 떠났다. 41살의 짧은 생이었다.

시대가 그를 투사로 만들지 않았더라면 그는 필경 문학인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재수 끝에 72년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그는 2학년 때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해 세칭 ‘학림문화권’의 일원이 되었다. 황지우·김정환·이성복 등과 함께 그는 일찍부터 문리대 문학을 이끌었다.

81년 동인지 <시와 경제>의 문학평론에 참여함으로써 등단한 그는 활발한 평론으로 80년대 문학운동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자리했다. 84년에 쓴 평론 ‘장르 확산을 위하여’는 “문학에 있어서 일상성과 운동성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80년대 민중문학이 완수할 과제다”라고 선언해 진보적 문학계를 뒤흔든 이른바 ‘장르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김도연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저 유명한 ‘보도지침’ 사건이다. 공동체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던 그는 85년 해직기자들의 모임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에 출판계를 대표해 실행위원으로 선임되었고, 곧이어 민언협 기관지 <말>의 초대 편집국장을 맡아 실무를 총괄했다. 그는 86년 9월 서울대 동기인 민언협 제2대 사무차장 이석원과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와 함께 전두환 정권이 당시 언론을 통제할 목적으로 매일매일 내려보낸 ‘홍보조정지침’(보도지침)을 폭로했다.

내가 김도연을 처음 만난 것은 80년대 초 그가 이부영과 함께 재야 민주화투쟁 단체를 만들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기관지 <민중의 소리> 창간호에 내가 창간사를 쓰기도 했다. 그는 늘 얼굴에 소박한 웃음을 띠면서 뒷전에 있었다. 86년말 나는 이부영을 범인은닉했다는 이유로, 그는 민통련의 간부란 이유로 지명수배된 시절엔 여기저기 함께 돌아다닌 일도 있고 도봉산에 오른 적도 있었다. 눈 쌓인 도봉산에서 내려오다가 우리의 얼굴을 내건 수배 벽보를 보고 다같이 찔끔한 적도 있었다. 그는 언제나 조용했으나, 꼭 있어야 할 데 있었고 거기서 꼭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낸 사람이다. 그는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너무 어이없이 갔다. 그가 만약 살아있다면 적어도 세상은 조금은 더 따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의 웃는 모습이 지금도 그립다. 정리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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