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오 교수
[이명박 정부 1년 평가] 세상살이 자유로워졌나
뿌리부터 흔들리는 민주주의
‘국책연구기관장 사퇴 압박 항의’ 이종오 교수
뿌리부터 흔들리는 민주주의
‘국책연구기관장 사퇴 압박 항의’ 이종오 교수
“법률에 임기가 보장된 국책연구기관장들을 ‘코드가 맞지 않으니 나가라’고 쫓아낸 것은 난폭하고, 70·80년대로 돌아가자는 후진적 발상이다. 법과 규칙을 지키는 게 민주주의의 핵심이 아니냐. (이명박 정부가) 다소 불편하더라도 공직 임기제를 지켜야 했다.”
지난해 4월 국책연구기관장 ‘일괄 사퇴 압박’에 항의해 물러난 이종오 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현 명지대 사회학과 교수·사진)은 “국책연구기관장 몰아내기는 87년 이후 우리 사회가 이룬 민주주의의 성과 가운데 하나인 공직 임기제를 흔든 자극적이고 상징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책연구기관장 일괄 사표 강요에 대해 정부가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스스로는 법에 명시된 공직임기제를 무시한 대표적 ‘이중잣대’로 꼽았다. 이 위원장이 사퇴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 두 달 만인 지난해 4월22일 국무총리실 고위공직자가 이 전 이사장에게 ‘국책연구기관장의 사표를 대신 받아 달라’고 요청한 직후였다. 산하 23개 국책연구기관장의 임면권을 갖고 있던 이 전 이사장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국책연구기관장들의 사표를 독려할 수 없다”며 이사장직 면직을 요청하고 ‘항의 사표’를 냈다.
이 전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와 생각이 다른 국책연구기관장들이 있더라도 법에 정해진 임기까지 기다려주는 ‘점잖은 권위’가 아쉬웠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장의 임기가 3년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 출범 뒤 1~2년 뒤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교체될 텐데, 최소한의 여유와 아량도 없이 축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전 이사장은 “공직 가운데는 국무위원이나 일부 정무적 성격과 배려가 강한 자리가 있다”며 “정권 교체 뒤 이들은 본인의 용단, 주위의 정치적 설득 등 양심과 상식에 따라 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책 연구기관장들은 ‘정권과 운명을 같이할’ 정무적 자리가 아니란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전 이사장은 “이들은 대부분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학자 출신인데, 이전 정권에 임명된 사람이란 이유로 일괄사표 강요는 무리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전 이사장은 특히 환경·교통·국토 분야 등 한반도 대운하 관련 국책연구기관장들의 사표 수리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 ‘전문가의 양심상 한반도 대운하는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던 국책연구기관장들이 모두 교체됐다. 이명박 정부의 선거 공약인 대운하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게 국책연구기관 기능이 아니다.” 국책연구기관장 일괄 물갈이는 정책 연구의 일관성, 객관성, 신뢰성을 훼손하고 정권 교체기마다 국책연구기관의 줄서기를 강요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것이다.
이 전 이사장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이명박 정부의 이런 무리한 역주행 때문에 국민 통합, 사회 통합이 심대하게 파괴됐고, 지역 대립과 분단 대립이 심화됐고 언론 자유도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의를 도출하고, 민주주의 원칙에 기반한 정치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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