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변호사가 9일 한나라당 중앙당사 기자실에서 서울시장후보로 출마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정계 은퇴’ 번복 이유는 “정치적 책임감 때문”일까
“준비되지 않고 비전 없는 사람이 중책을 맡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야당 의원 4년 한 것은 서울시장 감으로 충분한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불출마 선언을) 서울시장 출마에 갖다붙이는 것이야말로 기성 정치권적 시각이 아닌가.”(2004년 1월 ‘국회의원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정치적 책임감 때문이었고, 이번에 다시 나선 것도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책임감 때문이다.”(2006년 4월9일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중)
오세훈 전 의원은 2004년 1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물갈이 공천’과 당 쇄신을 촉구하며 국회의원 불출마와 사실상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2년4개월이 지난 9일 그는 “정치적 책임감 때문에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겠다”며 정계 복귀를 알렸다. 당시 오 전 의원은 “떠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정계은퇴 당시부터 최근까지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서 강하게 부인했다. 그가 2년전 발언을 뒤집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한나라당 정풍운동 주도한 개혁파 의원
‘5·6공 세력 용퇴론’ 주장하다 부메랑 맞다
오세훈 변호사는 정치 입문동기를 “환경관련 입법을 직접 해보려”라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할 때 법을 만들려고 뛰어다니면서 의원들 만나기가 너무 어려웠다. 치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환경 관련 입법을 직접 해보려고 들어왔다.”(2004년 1월6일 <주간한국> 인터뷰중)
오 전 의원은 한나라당의 아성인 강남을에서 당선되었고, 국회의원 기간 동안 개혁적 이미지와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시민단체가 주는 여러 상을 휩쓰는 등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오세훈’은 당내 개혁에 앞장서는 소장파 초선의원의 리더로 더 이름을 날렸다. 그는 남경필·원희룡 의원 등과 함께 당내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를 만들어 대표로 활동했고, 선배 의원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2003년 9월에 한나라당을 발칵 뒤집은 ‘5·6공 세력 용퇴론’이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찬회에서 “음습했던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려면 지난 시대의 소임을 다 한 사람은 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선을 앞둔 한나라당 물갈이 논쟁의 신호탄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한나라당의 수구와 개혁 논쟁은 총선을 앞둔 2003년말 ‘지구당 당무감사 자료유출’로 촉발된 공천 물갈이 파동으로 이어졌고, 오 전 의원은 당내 갈등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는 현역 의원의 기득권인 지구당 위원장직도 내던졌다.
2004년 1월 “정치 그만둔다. 서울시장 감으로 충분하지 않다”
당시 오 전 의원의 ‘5·6공 세력 용퇴론’의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당내 노선투쟁은 주류-비주류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미래연대가 두패로 갈리는 아픔도 겪었다. 결국 그는 17대 총선을 3개월 가량 앞둔 2004년 1월6일 돌연 불출마선언을 했다. 대중적 인기로 보나 강남에서 탄탄한 한나라당의 지지율로 보았을 때 의아한 결정이었다.
그는 당시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정치개혁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던 시대에 오히려 ‘개혁의 상실'을 경험했고, 그 현실에 대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5·6공 세력 용퇴론’이 불출마 선언의 직접적인 계기였음을 숨기지 않았다. “5·6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나도 함께 물러나겠다고 밝혔고, 그 약속을 지켰다. 많은 선배들이 자신의 거취를 돌아볼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불출마 선언은 신선한 충격을 불렀다. 그러나 찬사 속에서 정치적 의도에 대한 궁금증은 식지 않았다. 그의 불출마가 “정계은퇴냐”는 것과 서울시장 출마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는 당시 “정치를 완전히 그만두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만 둔다”고 밝혔다. 서울시장 출마설과 관련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준비되지 않고 비전없는 사람이 중책을 맡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보기에 야당 의원 4년 한 것은 서울시장 감으로 충분한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또 “서울시장 선거가 2년 이상 남았는데 그것을 위해 벌써 그만두는 정치인이 있겠느냐”며 “기성 정치권 시각”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를 한 지) 4년밖에 안됐는데 ‘정계 은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제 나이에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불출마 선언이라고 했다”며 “외국에 나가 5년 정도 환경운동 공부를 하고 싶고, 그 이후 본업인 변호사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11월 “출마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
‘불출마 선언’뒤 ‘오세훈’이라는 이름은 언론에서 찾기 힘들어졌다. 가끔 나오는 뉴스도 정치가 아니라 “철인3종경기를 완주했다”거나 봉사활동에 열심이라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정치에 거리를 두는 것과 상관없이 서울시장 선거를 놓고 한나라당의 유력한 후보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럴 때마다 그는 “불출마”로 화답했다. 맹형규·홍준표 의원 등이 서울시장 출마 뜻을 밝힌 지난해 11월초 오 전 의원은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출마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불출마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며 “ 너무 정치권과 오래 떨어져 있어 큰 선거를 치르려고 준비하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2005년 12월 가수 안치환,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씨 등과 함께 장애인과 함께 15일 여정의 킬리만자로 등반길에 올랐다. 당내 경쟁자들이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 터라 그가 확실히 서울시장에 마음을 접었다고 받아들여졌다. 또 올해 2월에는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휘말릴 수 있는 정수기 광고를 재계약함으로써 ‘서울시장 불출마’라는 그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오세훈은 정치적 책임감 때문에 흔들렸을까?
2년4개월간 끄덕 없던 오 전 의원은 1주일 만에 크게 흔들렸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자 이름이 다시 오르내렸고,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도 출마 권유를 위해 그를 찾았다.
그는 9일 기자회견에서 출마 이유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한나라당의 당원으로서 언제까지나 뒤로 물러서 있을 수 없었다”며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정치적 책임감 때문이었고, 이번에 다시 나선 것도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책임감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의 정치상황과 관련해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였던 사람들이 단 한번의 선거로 면죄부를 받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17대 총선을 앞두고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나라당의 쇄신이 필요해 선배들의 용퇴를 위해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한 세력들이 면죄부를 받게 될까 두렵기 때문에” 출마를 결심한 것도, 모두 “정치적 책임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출마 선언 당시 정치적 의도 논란이 일었듯 이번 출마를 놓고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9일 “정계은퇴 당시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 ‘준비도 안 돼 있고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욕심만 갖고 어느 자리에 있는 것은 죄악이며, 10년 20년 뒤라면 모르겠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며 “2년 만인 정치 복귀의 명분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도“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 태도”라거나 “불출마 선언이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장기적 포석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의구심은 오 전 의원이 “정치적 책임감 때문”에 1주일 만에 출마를 결심한 후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선거 정책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나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정책적 부분에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말하겠다. 정치를 쉰 것이 2년 4개월 정도 된다. 그 동안 삶의 화두가 국가경쟁력 강화 연구였다. 지난해 8월에 ‘우리는 실패에서 희망을 본다’는 제목의 책을 대표 집필해 출판했다.”
손해볼 것이 없다 후보도 좋고 백의종군도 좋다
오 전 의원의 출마소식에 여론은 긍정적이다.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맡겨 7·8일 이틀간 실시한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 오 전 의원이 42.4%로 42%인 강 전 장관을 근소한 차이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서울지역 만 19세 성인남녀 500명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P)
여러 정황으로 보자면 오 전 의원은 서울시장을 향한 ‘큰 뜻’이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는 불출마 선언과 동시에 다시 정치에 복귀할 때를 면밀하게 계획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 때를 만났다.
그가 서울시장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다면 꿈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수 있다. 현재의 정당 지지율이나 젊은층의 투표성향으로 볼 때 한나라당 후보의 승리 가능성은 크기 때문이다. 그가 설령 당내 경선에 실패하더라도 손해볼 것은 별로 없다. 그는 “백의종군이라도 선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백의종군하면서 헌신적으로 선거운동을 도우면 자연스럽게 정계복귀를 할 수 있고, 그의 상징성을 감안하면 당 지도부 입성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떠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떠났던’ 뒷모습이 아름다웠던 정치인 오세훈은 2년4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정치권을 떠나면서 내세웠던 명분들이 ‘아름다운 복귀’를 이해시킬 만큼 충분한 설명력을 갖고 있는지는 앞으로 당내 경선과 이후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하나하나 드러날 것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5·6공 세력 용퇴론’ 주장하다 부메랑 맞다
오세훈·안상수·남경필·원희룡 의원(왼쪽부터 차례로) 등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2003년 11월2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구당 위원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정우 기자 woo@hani.co.kr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이 2004년 2월27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운영위원회의에서 굳은표정으로 최병렬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불출마 선언’뒤 ‘오세훈’이라는 이름은 언론에서 찾기 힘들어졌다. 가끔 나오는 뉴스도 정치가 아니라 “철인3종경기를 완주했다”거나 봉사활동에 열심이라는 정도였다. 2004년 6월27일 설악국제철인대회 완주한오세훈 전 의원.
오세훈 변호사가 9일 한나라당 중앙당사 기자실에서 서울시장후보로 출마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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