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혁신위원회 첫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영남 다선 의원들의 수도권 출마 등 희생론을 연일 언급하자 당내가 술렁이고 있다. 여당에서는 당내 인사들이 말하기 꺼리는 주제를 인 위원장이 공론화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 실효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 위원장은 2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경남·경북에 있는 참신한 사람들이 서울로 와서, 어려운 데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도와줘야 한다는 뜻이 총선 출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인 위원장은 ‘참신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제로는 인지도 높은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다선 의원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조선일보는 인 위원장이 “괜찮은 스타 의원들이 있으면 어려운 곳, 서울로 오는 게 상식 아닌가”라며 “주호영(대구 수성갑)도 김기현(울산 남을)도 스타”라고 말했다고 지난 28일 보도했다. 인 위원장은 한겨레에 “(언론에) 특정한 사람 이름을 거명한 적 없다. 오늘도 내일도 안 할 것”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혁신위원장이 공천 룰이나 특정인 공천 여부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여지는 넓지 않다. 하지만 연말까지가 임기인 인 위원장이 총선 승리를 위한 혁신을 명분으로 여론을 등에 업고 ‘정부·여당 유명 인사들의 험지 출마’나 ‘영남 현역 교체’ 분위기를 띄우며 압박을 지속해나갈 수는 있다.
인 위원장 발언에 당내에서는 ‘기득권 포기와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영남은 새로운 사람이 항상 출마를 대기하고 있고, 공천받으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니까 ‘영남 다선의 현 지역구 불출마’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갑에서 3선을 한 하태경 의원이 지난 7일 “수도권 출마”를 선언한 지 3주가 지나도록 추가 선언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에는 “김기현 대표가 험지 출마 결단을 해줘야 더 큰 정치인이 될 수 있다”(수도권 의원) 등의 의견이 물밑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김 대표가 지난 3·8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직후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헌신과 희생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한 점을 들어, 김 대표의 결단 여부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김 대표나 주호영 의원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영남 다선 희생론’에는 당사자들의 반발 외에도 걸림돌이 적지 않다. 한 재선 의원은 “영남에서 다선됐다고 그냥 수도권에 넣으면 당선이 되겠냐”며 “수도권이 경로당이냐.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참신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이 이 같은 주장을 얼마나 뚝심 있게 밀어붙일지도 관전 포인트다. 인 위원장은 티브이(TV)조선과 한 통화에서 “당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고 지난 24일 보도된 뒤 논란이 일자 ‘농담’이라고 해명하며 진화에 나선 바 있다. 인 위원장은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있는 서울 서대문에 출마하거나 비례대표로 출마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만큼 ‘선수’로 뛸 수도 있는 인 위원장이 얼마나 눈치 보지 않고 당을 수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인 위원장은 공천 룰에도 손을 댈 것인지 묻는 한겨레의 질문에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좋은 기초를 만들어서 룰이 잘 정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나는 선대위원장이 아니고 혁신위원장”이라고 말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보는지’ 묻자 “윤 대통령이나 당 대표의 행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엄격히 월권”이라며 “대통령과는 일부러 안 만나고 있다. 지시를 받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모양새가 안 좋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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