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왼쪽)과 이재명 대표. 연합뉴스
“이재명 대표가 혁신위의 혁신안을 수용해도 문제, 수용 안 해도 문제가 될 거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완성된 혁신안을 내놓기도 전에 거듭 논란만 일으키며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자, 혁신위 출범과 구성의 책임을 진 이재명 대표가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혁신위가 오는 20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당내 의결구조 △총선 공천규칙과 관련한 혁신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혁신안 수용 여부를 놓고 당내 주류와 비주류의 치열한 기싸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혁신위는 당 관계자 설문과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10일 대의원의 역할과 권한을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혁신안을 발표하고, 이후 당내 경선에서 세대 간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새 총선 공천규칙의 방향을 제안할 예정이다. 당에 오래 몸담아온 당원이나 보좌진·당직자 등이 맡는 대의원의 권한을 축소하고 당원 권한을 키우자는 것은 당내 강성당원들의 오랜 요구사항인데, 혁신위가 당내 선거나 주요 의결 과정에서 대의원의 권한을 축소하려 하자 비이재명계에선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조응천 의원은 8일 에스비에스(SBS)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혁신위로 ‘손 안 대고 코 풀기’를 하고, 혁신위는 이 대표와 지도부에게 가는 압박을 분산시키는 감압밸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상민 의원은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혁신위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안의 내용을 떠나 이를 수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이 대표에게도 난제다. 무엇보다 김은경 혁신위의 권위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터라 당직자들에게서조차 “혁신위가 혁신의 마중물이 아니라 장애물이 됐다”는 냉소가 나오는 탓이다. 한 재선 의원은 “이 대표가 혁신안을 수용하면 실패한 혁신위와 처음부터 담합한 것으로 비칠 수 있고 당내 비주류에게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이 대표가 혁신안을 거부할 경우도 문제다. 또다른 재선 의원은 “장고 끝에 스스로 지명한 혁신위원장의 혁신안을 불수용할 경우 당이 총체적으로 우스워지고 국민들로부터 비판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초 혁신위는 지난 5월 열린 쇄신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의 요구사항이 아니었지만 최종 결의안에 이 대표의 의지로 ‘혁신기구를 구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스스로 꾸린 혁신위의 덫에 이 대표가 갇혀버렸단 평가가 그래서 나온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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