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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석열의 복덩이, ‘김은경 혁신위’ [아침햇발]

등록 2023-08-08 15:56수정 2023-08-09 02:4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20일 열린 ‘김은경 혁신위’ 첫 회의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은경 위원장.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20일 열린 ‘김은경 혁신위’ 첫 회의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은경 위원장. 연합뉴스

강희철 | 논설위원

처음부터 의아했다. 더불어민주당을 곤경에 빠뜨린 ‘돈봉투 사건’이 “(검찰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수사기관의 사건 조작은 그 자체로 중대 범죄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유튜브에서나 봄직한 음모론을 가벼이 입에 올렸다.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은 첫 등판부터 이렇게 의문부호를 달고 나타났다. 머리보다 입을 앞세운 탓에 며칠 뒤 자신의 말을 도로 주워담는 일이 벌어졌다. “돈봉투 사건은, 자료를 좀 보니 심각한 사건으로 확인됐다.” 정치는 처음도 끝도 말이라는데, 그때의 ‘불쑥 발언’은 시작에 불과했다.

스스로도 “철없다”고 한 특유의 언행은 꾸준히 반복됐다. “자기 계파를 살리려 (정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낙연 전 대표를 ‘직격’한 말이다. 당권파인 ‘친명’(친이재명)도 있는데, 비주류인 ‘친낙’(친이낙연)만 콕 찍어 도마에 올렸다. 당내 초선 의원들을 “코로나 때 딱 그 초선들”이라고 지칭해 구설을 불렀다. “코로나19를 겪은 학생들은 그 전 학생들보다 학력 저하가 심각했다”면서 그런 말을 했으니 구구한 해석의 여지가 없다. 하나같이 차이를 부각시키고 분열을 키운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미래가 짧은 분들” “여명 비례 투표” 발언은 예정된 참사나 다름없다. 요즘 말로 하면 ‘김은경이 김은경한 것’일 뿐이다. 지난달 31일 혁신위 청년 좌담회 때 나온 문제 발언이다.

“둘째 아들이 올해 스물두살인데, 중학생 때 이런 질문을 하더라. ‘왜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냐’고. 평균 연령을 얼마라고 봤을 때 자기(아들)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엄마 나이부터 여명까지로 해서, 비례적으로 투표해야 한다는 것인데, 되게 합리적이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라 현실적 어려움이 있지만, 맞는 말이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 대 1 표대결을 해야 하나. 다만, (당시 아들에게) 합리적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 선거권이 있어서 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떼밀려 마지못해 사과하기 전 사흘간, 김 위원장은 당당했다. “(발언의) 앞뒤를 자르고 맥락 연결을 이상하게 해서 노인 폄하인 것처럼 말씀을 한다.” 과연 그런가. 김 위원장 아들의 주장은, 가령 평균 연령을 80살로 가정할 경우 여생이 30년 남은 50살 유권자에겐 1표, 여생이 60년 남은 20살 청년에겐 2표를 주는 게 합당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런 사고가 “되게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 대 1 표대결을 해야 하나”라며 확신의 대못까지 박았다. 이건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연령별 제한선거’가 맞다는 퇴행적 신념을 드러낸 것이다.

성년이면 재산·신분·성별·교육 정도와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1표’가 주어진다. 헌법에 명시된 ‘보통·평등 선거’의 원칙이다. 민주주의 역사는 선거권의 차별과 제한을 철폐하기 위한 피와 땀과 눈물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 위원장의 무지가 놀랍다. 딱 ‘중학생 아들’ 수준의 상식과 사고를 가진 사람이 국회 다수당의 혁신 책임자라는 사실은 더 놀라운 일이다. 노령층의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했어도 이런 말을 했을까. 덕분에 “60대 이상은 투표 안 해도 괜찮다”(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를 비롯해 세대 갈등을 부추긴 민주당의 흑역사가 줄줄이 소환됐다.

혁신 작업은 지지부진 그 자체다. ‘1호 혁신안’이라는 ‘불체포특권 포기’는 논란의 장기화로 중동무이가 됐다. 김 위원장은 부족한 정치력과 리더십을 분노와 질책으로 메꾸려 했다. “자중지란” “오합지졸 콩가루” 같은 불신의 언어를 남발하며 스스로 권위를 깎고 입지를 좁혔다. “이러다 망한다”는 호통이 통할 것 같으면, 민주당에 혁신위가 필요했겠나. 2호 혁신안으로 ‘꼼수 탈당’ 근절 대책을 논의하자 이번엔 꼼수 탈당의 장본인인 김홍걸 의원이 보란 듯이 복당했다. 혁신위의 ‘유효기한’이 다 됐다는 뜻이다. 혁신위는 이미 ‘리스크’ ‘해체’와 한묶음으로 호명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약고’인 공천룰에 손을 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문가지다.

“가죽을 벗기고 뼈를 깎겠다”던 호언은 허언이 됐다.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표 취임 뒤 요란하게 출범한 ‘장경태 혁신위’가 슬그머니 사라지더니, 두번째 혁신위도 이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복이 참 많아요.” 민주당의 한 중진이 혀를 찼다.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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