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8월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오래전 일이지만 2016년 4·13 20대 총선 결과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선거 전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가 너무 크게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선거 직전인 2016년 4월 둘째 주 한국갤럽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 37%, 더불어민주당 20%, 국민의당 17%, 정의당 7%였습니다. 그때까지 새누리당은 늘 압도적 1위였습니다. 이 정도 격차라면 새누리당이 과반이나 1당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이었습니다. 선거구별 여론조사도 틀린 곳이 너무 많았습니다. 신문에 ‘엉터리 여론조사’라는 기사 제목이 뽑혔습니다. 여론조사 회사 대표가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여론조사가 틀린 가장 큰 이유는 2010년에 시작된 모바일 혁명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사용률은 2009년 2~3% 수준에서 2010년 14%, 2011년 43%, 2012년 67%, 2013년 74%, 2014년 80%, 2015년 86%, 2016년 90%로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지금은 97%가 넘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 정확한 여론조사는 안심번호로만 가능합니다. 안심번호는 여론조사 회사가 조사에 필요한 성별, 연령별, 지역별 휴대전화 번호를 이동통신사에 요청해서 받는 가상의 일회용 전화번호입니다. 개인정보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2016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여론조사 회사는 안심번호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엉터리 여론조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반면에 정당은 안심번호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은 안심번호 여론조사를 근거로 새누리당 의석이 과반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당 지도부에 보고했습니다. 당 지도부는 이를 믿지 않았다가 선거 결과에 경악했습니다.
2017년 2월 공직선거법이 개정돼 여론조사 회사도 선거 여론조사에서 안심번호를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후 치러진 2017년 5·9 대선, 2018년 6·13 지방선거 등 전국 선거에서는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가 대체로 일치했습니다.
2020년 4·15 21대 총선 직전인 4월 셋째 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41%, 미래통합당 25%였습니다. 그런데도 미래통합당과 보수 성향 정치 평론가들은 “그럴 리가 없다”며 야당의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163석과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17석을 합쳐서 180석, 미래통합당 84석과 비례 위성정당 미래한국당 19석을 합쳐서 103석이었습니다. 여론조사 정당 지지도가 선거 결과로 고스란히 이어진 것입니다.
2022년 3·9 대선 여론조사의 정확도는 논란이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선거 전 여론조사 지지도 격차와 비교하면 실제 득표율 격차가 워낙 적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승패가 뒤바뀌지는 않았습니다. 2022년 6·1 지방선거도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가 대체로 일치했습니다.
그렇다면 2024년 4·10 총선은 어떻게 될까요? 더불어민주당이 이길까요, 국민의힘이 이길까요?
14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7월 2주차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3%, 더불어민주당 32%로 박빙이었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2022년 7월 이후 두 정당 지지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흐름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총선을 치른다면 어느 정당이 이길지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민주당 정당 지지도가
경합하는 현상은 민주당에 불리하다고 봐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와 같이 살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는 2022년 7월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추월하는 이른바 ‘데드 크로스’가 이뤄진 이후 지금까지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도 정당 지지도가 엇비슷하다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을 찍었다가 떨어져 나온 표를 민주당이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월1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직무 평가는 1주일 전에 비해 긍정이 38%에서 32%로, 부정이 54%에서 57%로 급속히 나빠졌습니다. 하지만 정당 지지도는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둘째, 정권심판론과도 견줘서 봐야 합니다. 지난 7월7일 발표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내년 총선에서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38%였습니다.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50%였습니다.
그런데도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3%, 민주당 32%였습니다. 무당층이 무려 31%였습니다. 정권심판론에 동의하지만, 민주당은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층이 꽤 두텁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민주당의 위기입니다.
여론조사 수치로 파악할 수 있는 ‘정량조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내용을 들여다보는 ‘정성조사’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민주당이 비틀대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로 민주당의 민심 기반이 무너진 뒤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2022년 6월1일 지방선거에서 전국 투표율은 50.9%였지만 광주는 37.7%로 최하위였습니다. 광주가 전국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선출된 2022년 8월28일 전당대회에서도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대표의 화려한 득표율(77.77%) 이면에는 권리당원 선거인단의 낮은 투표율(37.09%)이라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이때도 광주·전남·전북 투표율이 낮았습니다.
호남은 여전히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 그러나 견고함은 과거보다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호남 민심에 밝은 민주당 원로는 “호남에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지지가 조금씩 빠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누가 잘못한 것일까요? 가장 큰 책임은 이 대표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당은 지난해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새로고침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유권자 분석을 통해 대선에서 왜 패배했는지 원인을 깊이 있게 분석했습니다. ‘이기는 민주당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미래비전 보고서도 제출했습니다. 꽤 수준 높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와 당선 이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느라 급급했습니다. 야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정당한 대여 공세마저 ‘사법 리스크 방어용’이라는 정부 여당의 물타기 프레임에 휘말려 번번이 힘을 잃었습니다.
송영길 전 대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 의혹까지 터졌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이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민주당은 가치와 비전 싸움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에게 밀리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자유’를 외치며 거칠게 공격해 들어오는데, 이 대표의 민주당은 ‘왜 민주당이어야 하는가’라는 근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여전히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세 싸움에서도 밀리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7월6일 청년정책조정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했습니다.
“제가 경험 없이 정치에 뛰어들어서 정말 10개월 만에 대권을 거머쥐게 됐는데, 다 여러분 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윤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할 것이고, 총선에서 승리하면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야당과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호재든 악재든 정국 주도권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장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주당은 싸움판이 벌어지면 반사적으로 뛰어들어 허공에 주먹을 휘두를 뿐입니다.
최근 ‘후쿠시마 정국’과 ‘양평 정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우리 국민의 80% 이상이 반대하지만, 민주당 지지도는 오르지 않습니다. 정부 여당의 ‘과학 대 괴담’ 프레임 때문입니다.
양평 의혹은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당사자입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의 공격이 잘 먹히지 않습니다. 원희룡 장관과 국민의힘의 억지가 일정 부분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입니다. 기가 막히지만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민주당이 제대로 싸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민주당의 내년 총선 상대는 윤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게 민심, 가치, 비전, 기세 등 모든 싸움에서 다 밀리는 모양새입니다. 아무래도 너무 거친 상대를 만난 것 같습니다.
이대로면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봐야 합니다. 민주당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