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검찰과 감사원,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 사정, 정보 기관을 국정운영의 첨병으로 동원하는 상황이 일상화하고 있다. 전 정부와 야당, 노동조합, 시민단체, 사교육계 등을 끊임없이 부도덕한 집단으로 낙인찍고, 축출 대상에 올리면서 ‘사정 만능주의식 통치’를 이어가는 것이다. 급기야 윤 대통령은 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며 문재인 정부를 “반국가세력”이라고까지 공격했다. 사정기관을 핵심적 통치수단으로 활용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시민들의 정치 혐오와 피로감을 키워 정치 실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심화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윤 대통령 지시, 여당 엄호, 사정기관은 실행’ 패턴 고착화
‘윤 대통령의 척결·엄단 지시→국민의힘의 확대·재생산→검찰·경찰·감사원·국세청·국정원의 수사·조사·감사’.
지난 1년2개월 동안 정형화한 윤석열 정부 ‘사정 만능주의’의 실행 패턴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부 정책이나 방침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단체나 개인을 사법 처리의 대상으로 낙인찍었다. 설득하고 대화하기보다는 이들을 바로 “지대추구 세력” “이권 카르텔”로 몰아붙인 뒤 이를 정책 추진의 동력으로 삼았다. 교육개혁과 관련해 지난달 윤 대통령의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발언’ 뒤 대통령실과 여권이 일제히 대형 사교육 업체들을 ‘이권 카르텔 집단’이라고 공격하고, 곧이어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들어간 게 대표적이다. ‘증오’와 ‘낙인찍기’를 ‘개혁’의 연료로 삼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2021년 6월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부터 세차례나 ‘이권 카르텔’을 언급하며 타파의 대상으로 지칭했다. 집권 뒤에도 윤 대통령은 교육·연금·노동 3대 개혁의 구체적인 추진 계획을 국민에게 설명하기보다는, ‘기득권 카르텔’ 탓에 정부의 개혁이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건설현장 폭력행위를 “건폭”이라고 지칭하며 노동조합을 폭력배에 견줬다. 경찰은 윤 대통령의 방침에 따라 갈취·폭력 등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 단속에 착수했다. 경찰은 지난달 25일 1484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이 가운데 132명이 구속됐다고 단속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찰의 영장 남발이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6월까지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47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실제 영장이 발부된 사람은 절반이 안 되는 23명에 그쳤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경찰의 과잉 대응을 부른 셈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7일 국무회의에서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보조금을 취하는 행태가 있다면 묵과할 수 없는 행위”라며 “혈세가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민간단체의 국고보조금을 겨냥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 직후인 지난 1월 국무조정실은 29개 부처별로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사업 감사를 시작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지난 6월4일 감사 결과를 직접 발표하며 부정행위가 적발된 단체를 형사고발하거나 수사 의뢰하겠다고 말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일 “윤석열 정부는 교육개혁을 해도 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에 대한 감사와 학원 수사가 먼저이고, 노동개혁을 해도 노조에 대한 감사와 압박이 우선이다. 시민사회 개혁 또한 시민단체에 대한 감사나 수사를 앞세운다”며 “모든 종류의 개혁에서 감사와 수사라는 수단에 의존하고 있다. ‘합법적 억압’이 너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 만능주의 접근은 외교·안보 정책 뒤집기에도 활용됐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문재인 정부 시절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북한 어민 북송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서훈·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진용 책임자들을 검찰 수사선상에 올렸다. 최근에는 환경부가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승인하자,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이를 ‘고의 지연시켰다’며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검사 스타일 통치…정치적 해법 못 찾았다는 의미”
사정에 의존하는 정치는 검찰에만 몸담아온 윤 대통령의 관성이 국정운영에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총장에서 국가 최고통치자로 직행한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경험을 답습하는 경로 의존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전 부처의 검찰화”라고 했다. 이 교수는 “개혁이 필요하면 검사를 파견해 수사·감사를 해서 ‘나쁜 놈’을 찾아내 문제만 도려내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검찰을 동원해 죄인 다루듯 처리하는 게 윤 대통령의 직업적 습관이다 보니 전 부처의 인사, 조직, 운영이 모두 검찰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윤석열 정권은 응보적 정의관에 따라서 악당을 잡아서 처벌하는 게 정의라는 식으로 자기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사정 만능 통치는 정부가 추구하는 국정과제가 선명하지 않은데다, 여소야대에서 입법으로 성과를 낼 가능성의 희박한 상황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 모두 모호하거나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야당, 노조, 민간의 부조리나 비리를 들춰내는 데 더욱 주력한다는 것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지향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5년 동안 뭘 할지 세팅이 잘 안됐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말했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이) 정치적 해법을 못 찾아서 더욱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정 만능 통치’는 곧 윤 대통령이 정치에 실패했음을 뜻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통치 방식은 국민과 정권 모두에 해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진욱 교수는 “장단기적으로 지지층을 확보하고, 노조나 시민단체를 낙인찍어 총선에서 승리하는 이득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며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국 정치가 실종되면서 혐오와 무관심을 키우는 악순환의 고리로 빠지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른바 ‘네거티브 국정운영’이 장기화하면 국민 피로도가 높아지고, 윤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도 제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영지
yj@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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