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는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 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찍은 사진을 지난해 7월12일 공개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했으나 귀순 의사에 진정성이 없다고 보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통일부 제공
“정치권에서 이렇게 정쟁으로 만들고, 언론에서 이렇게 자세하게 다루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지난 4월.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시 불거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국가안보실 도·감청 의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외교·안보를 정치공세 소재로 삼는 나라가 없다”는 이 관계자의 주장을 먼저 허문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북한 어민 북송 사건을 전 정부의 대북 굴종 정책의 산물로 여기고 뒤집기에 나섰다.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은 “(북한 어민) 북송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국정원은 같은 해 7월 “그동안 자체 조사를 해왔다”며 서훈 전 국정원장을 고발했다. 통일부는 북한 어민 판문점 북송 당시 사진과 동영상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며 여론몰이에 나섰고, 대통령실은 “반인도적·반인륜적 범죄행위”라며 사실상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검찰은 지난 2월 서훈 전 원장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 패턴도 비슷하다. 정권 교체 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서해 공무원 피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국정원은 같은 해 7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고발했다. 검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고, 국정원은 임의제출 방식으로 자료 제공에 협조했다. 감사원도 그해 10월 박 전 원장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 5개 기관 20명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요청하며 지원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박 전 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을 기소했다.
최근엔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문제가 전 정부 인사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로 번질 조짐을 보인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7일 “성주 사드기지 환경영향평가 결과 발표를 왜 5년 동안 질질 끌며 뭉갠 건지, 누가 뭉갠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환경영향평가 지연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필요할 경우 검찰 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정책을 다룬 경험자들은 “전임 정부 외교·안보 라인이 판단하고 대통령이 승인한 외교·안보 결정을 번복하고 공직자를 구속하는 것은 대외 신뢰를 허무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외교·안보 정책과 남북관계 문제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이를 국내 정쟁화하고, 뒤집는 것은 상호 신뢰에 치명타를 가한다는 것이다.
30년가량 외교관을 지낸 인사는 “북송 사건과 서해 사건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전직 고위 당국자들을 처벌하려고 하는데,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외교·안보 사안을 사후에 잣대를 바꿔 처벌하면 공직 사회가 몸을 사려 일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균 전 수도방위사령관도 “윤석열 정부가 외교·안보 사안을 거칠고 위험한 방식으로 국내 정치에 끌어와 진보와 보수를 갈라치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국민 분열과 안보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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