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11일(현지시각) 워싱턴디씨 인근 덜레스 공항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11일(현지시각)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한국 국가안보실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도·감청 정황에 관해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고 말한 데 이어 미국의 행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파문을 최소화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국방부 장관이 직접 기밀문건의 날짜까지 특정하며 사안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김 차장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협의차 미국 워싱턴디시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이 문제(도청)는 많은 부분에 제3자가 개입돼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제 제가 말씀드린 (문건 상당수가 위조라는) 사실은 미국이 확인을 해줬고, ‘어떤 것이 어떻다’는 것은 시간을 갖고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 보안 부실과 저자세 외교에 대한 비판이 들끓는 가운데, 미국의 ‘도청’이 악의적이지 않았다고 감싸는 모습이다.
정부와 여당도 가세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모임인 ‘국민공감’ 강연 뒤 기자들과 만나 “상당수 문건이 조작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군 중장 출신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시비에스>(CBS) 라디오에 나와 “문건 자체는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날 기밀문서 유출 사실과 심각성을 인정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2월28일과 3월1일치 보고서가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 출처와 유출 범위를 밝히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김태효 차장은 “양국 국방부 장관이 통화했고, 견해가 일치한다.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고 말했는데, 하루 만에 두 나라가 어떤 부분에서 견해가 일치했는지 의문을 자아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김 차장은 ‘문건 전체 분량이 다 조작됐다는 것이냐’는 물음에 “미국 국방부의 입장도 있고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많은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리가 섣불리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도청 의혹이 일파만파인데 정부는 합리적 문제제기를 틀어막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며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서두르고 대통령실 보안을 강화하는 입법 조처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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