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려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방적으로 일본의 요구만 받아안은 채, 국익을 관철해야 할 문제들은 제대로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빈손 외교’ 논란에 휩싸였다. 반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 요구를 포함해 독도 문제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규제 해제, ‘레이더-초계기’ 문제 해결 등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자 “오늘 논의의 주제는 강제징용 문제를 비롯해서 미래 지향적으로 한-일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에 얘기들이 대부분 집중이 됐다. 그것으로 답변을 대신하도록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17일에는 뉘앙스가 달라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본 도쿄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독도 관련해서는 소인수 회담에서도, 확대 회담에서도 전혀 얘기가 없었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된 내용을 전부 다 공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를 내어 “어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든 독도 문제든 논의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기자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논의된 바 없음”이라고 문자로 공지했다.
전날 일본 정부는 정상회담 뒤 당국자가 일본 기자들에게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규제에 대해 기시다 총리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꼭 이를 완화해달라고 발언했다”고 브리핑했다. 위안부 합의 문제 역시 “총리가 한-일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구했다”고 했고, 2018년 해상자위대의 초계기 갈등에 대해서도 “기시다 총리가 우리(일본) 입장에 근거해 발언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한-일 간 현안을 언급하며 “다케시마(독도) 문제도 (현안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특히 회담 뒤 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가 중요시하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께서 강한 지지를 해주셨다”고 ‘성과’를 언급했다.
반면, 윤 대통령이 한인 강제동원이 이뤄진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탱크에 보관 중인 방사성 물질 오염수의 바다 방류 문제 등 폭발력이 큰 양국 쟁점들에 관해 일본 쪽에 어떤 요청을 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전문가들은 “참사 수준의 강제동원 해법 발표에 이은 참담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윤 대통령은 크게 주고 크게 받는 ‘그랜드 바겐’을 말했지만, 피해자와 국민이 기대했던 수준에 전혀 못 미치는 일방적 퍼주기에 그쳐 참담한 심정”이라며 “‘합의’ 이행이 순조롭지 않으면 한-일 관계 파탄의 책임을 우리가 오롯이 지게 됐다”고 말했다.
전직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는 “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일본 정부의) 사과 한번 더 받아 뭐 하냐’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게 현 정부의 빈약한 역사 인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한·미·일 안보협력만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가전략 부재가 한심한 수준의 정상외교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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